<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료 라이라이! 료 라이라이!"
“료 라이라이! [료래래(遼來來)]”
= “장료가 온다!”, “장료가 나타났다!”
위나라의 땅 중, 오나라가 먹고 싶어서 아주 안달난 곳이 2곳 있었는데,
바로 ‘회남’과 ‘서주’이다.
회남은 인구도 많고 농사도 매우 잘 되어 중원을 대표하는 곡창지대로,

꿀물리에 원술이 이 회남땅 한 곳만을 가지고 있던 녀석임에도
황제국을 선포하는 패기를 부렸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다.
물론 그러곤 바로 멸망 ㅋ
그리고 서주는 ‘서주대효도’이후로 위나라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은 곳으로,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기꺼이 오나라의 백성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었다.

아무튼 이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땅들이 바로 오나라 코앞에 떡~ 하니 있었으니,

오나라가 이 땅들을 먹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였는데,
문제는 서주든 회남이든 이 땅들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합비(合肥)’라는 곳이었다.

형주가 없던 시절의 오나라는 위나라를 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위에 보이는 ①, ②번이 전부였는데,
건업에서 광릉으로 가는 ②번 길은 습지와 진창으로 이어진 길로,
여기를 그냥 단독으로 돌파하는 건 매우 위험한 짓이었다.
고로 ②번 길을 쓰기 위해선 ①번 길로 가는 게 반드시 선행돼야 했으니,
오나라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냥 ①번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이 ①번 길이 바로 ‘합비’로 가는 길이다.(노란 박스)
헌데 문제는 위나라도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유복이라는 사람을 합비로 보내 오나라의 침공을 대비하게 하였다.

재밌는건, 유복이 부임했을 때의 합비는 무주공산의 상태였기에,
이미 도적들에게 탈탈 털리고 버려져서 완전 폐허나 다름없었다.
유복은 임명을 받고 혼자의 몸으로 말을 타고 합비의 빈 성으로 가서 주의 관소(관청)를 세우고,
주변 도적들을 위로하여 그들을 안정시켰고 그 후로 도적들은 계속 (유복에게) 공물을 보내었다.
몇 년간 유복이 은혜와 교화를 대대적으로 시행하자, 백성들은 그의 정책을 좋아하였으며
밖으로 떠돌던 백성들 중에서 강과 산을 넘어 귀순하는 자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유복은 학교를 세웠으며 둔전을 넓히고 여러 제방을 건축하니, 관리와 백성들이 계속 늘어났다.
또 성벽과 보루를 높게 만들고, 나무와 돌을 많이 쌓으며,
풀 수천만 더미를 엮고, 물고기 기름 수천 석을 저장하여 전쟁을 대비하였다.
- < 삼국지 위서 > 유복전 -
이 당시 조조군은 원소군과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하고 있었을 시기라(서기 200년),
유복은 정말 아무 지원없이 단기필마로 왔음에도, 합비 재건을 멋지게 성공한다.
그리고 이걸 반드시 저지해야했던 오나라는, 이때 아주 절묘하게도 손책이 죽고
이제 막 권좌를 물려받은 손권이 내부를 안정시키는데 여념이 없던 터라,
합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손권이 좀 여유가 생겨서 고갤 들어봤을 땐, 이미 합비에 거대한 성이 생겨버렸으니,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호시탐탐 합비를 차지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게 된다.
그리고 서기 215년,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손권에게 찾아오게 된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며 국가를 일구고, 조조는 한중으로 진격하며,
역사적 숙명의 라이벌인 유비와 조조가 한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
손권이 이 분위기와 기회를 못 읽어낼 바보는 아니었다.

조조가 서쪽 한중에서 발이 묶여, 동부 전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였으니,

(취한 척 노숙을 볼모로 삼아 오나라군의 포위를 빠져나오는 관우[단도부회])
당시 촉나라와 형주 문제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하여 일촉즉발의 상황(익양대치)이었음에도,
손권은 유비와 빠르게 화친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10만의 군사를 몰아 합비로 빠르게 들이닥치니,
합비는 풍전등화요, 곧 오나라의 손아귀에 합비가 떨어질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헌데, 누가 알았겠는가?
합비에 괴물이 하나 있었을 줄은...

오나라의 10만 군사가 합비를 포위했을 당시, 합비는 단 7천명의 병사만이 있었다
위나라의 대부분의 병력은 서부전선에 투입됐으니, 지원군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조조는 이런 오나라의 빈집털이 시도를 예상하고
장료에게 ‘비책’을 남겨놨었는데...
조조는 장료를 악진, 이전 등과 함께 7천 여 명을 이끌고 합비에 주둔케 했다.
그리고 호군(護軍) 설제를 통해 교서를 보내 주었는데,
“적이 도착하면 뜯어보라.”고 서신의 겉봉에 적혀 있었다.
이 후 갑작스럽게 손권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장료 등은 함께 서신을 뜯어보았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약 손권이 오면 장료와 이전은 출전하고, 악진은 수비하고, 설제는 싸움에 참여하지 말라.”
제장들이 모두 의심스러워 했다.
- < 삼국지 위서 > 장료전 -
이게 무슨 비책이란 말인가...
거의 ‘코끼리를 냉장고의 넣는 법’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내용에,
오랫동안 조조를 따른 이전이나 악진마저도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제장들이 모두 의심스러워 하자 장료가 말했다.
“공(조조)께서는 원정하느라 바깥에 계시므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적군이 우리를 깨뜨릴 것이 분명하오.
이 교서의 뜻은, 적이 미처 집결하기 전에 역으로 요격[逆擊]하여 그들의 예기를 꺾어
우리 군의 군심을 안정시켜야지만 가히 지켜 낼 수 있다는 뜻일 것이오.
성패의 관건이 이 일전에 달려 있는데 제군들은 어찌 의심하시오?”
- < 삼국지 위서 > 장료전 -
장료는 조조의 비책대로 나가서 싸우는 것이 옳은 전략이며, 성공 또한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허나 장료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는데,
악진과 이전, 장료는 평소에 화목하지 않았는데,
장료는 그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 < 삼국지 위서 > 이전전 -
장료는 본래 여포 밑에 있다가, 여포가 죽은 뒤 항복하여 조조군이 된 장수였다.
이전에 가후에 관한 글에서도 한 번 얘기하였지만,
항복한 장수들은 꽤나 눈칫밥을 먹곤 했다.
왜냐하면, 항복한 사람을 어지간하면 받아줘야 하는 것은
병가(兵家)의 상식이고 합리적으론 매우 옳은 일이겠으나,
바로 엊그저께까지 서로 죽이려 하고, 어쩌면 나의 동료와 가족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놈을
‘이젠 항복했으니 평등하게 잘 대해줘야지~’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전은 가족이 여포군에게 살해당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장료가 이전의 가족을 죽인 것은 아니었으나,
여포군 출신의 장료를 이전이 꺼려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료도 둘이 함께 해야하는 이 작전을 이전이 껄끄러워 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장료는 이전과 악진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 보고 걱정하니, 이전이 분개하여 말했다.
"이것은 국가의 큰일이오. 당신의 계책이 옳은지 틀린지를 볼 뿐이지,
내가 어떻게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의(公義)를 돌보지 않겠소?“
- < 삼국지 위서 > 이전전 -
이전 또한 장료와 의견이 같았다. 이에 장료는 밤중에 용맹한 병사[敢從之士] 8백 명을 뽑고
소를 잡아 그들에게 먹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큰 전투가 있었다.
- < 삼국지 위서 > 장료전 -
그렇게 800명의 병사로 10만 대군을 뒤흔드는 역사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새벽 녘 동틀 무렵, 장료는 갑옷을 입고 극(戟)을 들고 선두에 서서 적진을 함몰시켰다.
수십 명을 죽이고 2명의 장수를 베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보루를 뚫고 들어가
손권의 대장기 아래에까지 이르렀다. 손권은 크게 놀랐고 주위의 사람들은 당황해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손권은 달아나 고총(高塚:높은 무덤 또는 언덕) 위로 달아났다. …
장료가 이끄는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군사들을 모아 장료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장료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 급히 공격해 포위를 뚫었다.
휘하의 수십 명을 이끌고 포위를 벗어나자 뒤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군사들이 외쳤다.
“장군께서는 우리를 버리십니까!”
장료는 다시 포위망 안으로 돌입해 남은 군사들을 구했다.
손권의 병사와 말들은 모두 초목이 바람에 휩쓸리듯 무너져 내려[披靡] 장료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 < 삼국지 위서 > 장료전 -
800명에게 유린당한 오나라의 10만 군사들은 장료가 예견한대로 예기가 꺾여버렸고,
손권은 합비를 더 이상 공성하지 못하고 퇴각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 때,
장료가 다시 나타난다.
“장료다! 장료가 온다!!”[료 라이라이!(遼 來來)]

(그림 출처: 네이버 웹툰 삼국전투기 – 최훈)
마침 역병이 유행하여 군대는 합비에서 물러나, 오직 호위병력 1천여 명과
여몽, 장흠, 능통, 감녕 등이 손권과 함께 소요진(逍遙津) 북쪽에 있었다.
장료는 멀리서 이러한 모습을 관찰하고 즉시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급습하였다.
감녕은 적에게 화살을 쏘았으며, 능통 등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 < 삼국지 오서 > 감녕전 -
장료가 급습했을 때, 장수들은 무방비 상태였고, 진무는 분투하다 죽었으며, …
반장은 후방에 있었지만, 곧바로 급히 달려가서 송겸과 서성의 병사들 중 달아나는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돌아와서 싸웠다.
- < 삼국지 오서 > 반장전 -
손권의 진교(津橋:나루터의 다리)에서 말에 탄 채 있었는데,
진교 남쪽 부분은 이미 적에 의해 철거되어 한 길(2.5미터~3미터) 남짓 널빤지가 없었다.
(오나라의 장수) 곡리가 말 뒤에 있다가 손권에게 안장을 꼭 잡고 고삐를 늦춰 잡게 한 다음,
채찍으로 말이 뛰는 것을 도와 손권이 진교를 건너뛰게 했다.
- < 강표전 > -
능통이 친근히 대우하던 3백여 명과 함께 포위를 무너뜨리며 손권을 붙잡고 지켜 내었다.
- < 삼국지 오서 > 능통전 -
손권은 그렇게 필사의 탈출을 겨우 성공하게 된다.

전투가 끝나고 장료가 항복한 오나라 장수들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 자줏빛 수염[紫髯]을 가진 장군이 있던데,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고, 말을 잘 타고 활을 아주 잘 쏘던데, 그게 누구요?“
항복한 장수가 말했다.
“그것은 손권입니다.”
장료와 악진은 서로 쳐다보며, 말할 시간도 없이 뛰어나가 추격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 헌제춘추 > -
이 전투 이후로 오나라 사람들에게 합비와 장료는 공포의 상징이 된다.
장료가 손권에게 포위당하였지만, … 손권은 격파돼 달아났고,
장료의 위세가 강동(江東:오나라)을 뒤흔들었다.
이 후 강동에선 아이가 울고 그치질 않으면, 아이의 부모가 “장료가 온다!”며 겁을 주었다.
- < 위략 > -
이 후 오나라는 합비 공략을 수차례 더 시도하나,
단 한 번도 합비를 넘어서보지 못한 채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