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백미와 읍참마속
지난 글에서 1차 북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사실 오늘의 주제인 ‘읍참마속’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어서였다.
‘읍참마속’은 삼국지를 전혀 읽지 않은 분들도
학교나 뉴스, 그리고 침투부(?)에서 정말로 많이 접했던 고사일 것이다.






솔직히 삼국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읍참마속이란 소릴 처음 들었을 때 알아듣기도 힘든 편인데, 뭐? 웃참마소?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면,

‘울면서 마속을 베다.’

마속은 당최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 아래 써져있는 뜻풀이를 읽어봐도 사실 삼국지를 모르면 잘 와 닿진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읍참마속’에 대한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유비가 형주를 통치하고 있을 무렵,
형주엔 굉장히 똑똑하기로 소문난 마씨(馬氏) 5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통칭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불렸는데,
그 중 넷째인 마량이 그 뛰어난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것으로 유명했다.

마량은 흰 눈썹을 가지고 있어, 백미(白眉)라고 불렸는데,
이 때문에 특히 뛰어난 것을 지칭할 때 ‘백미(白眉)’라는 고사가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마속은 이 백미 마량의 귀요미 막내 동생이다.

그리고 위에서 소개했던 ‘마씨오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친구도, 형 마량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똘똘했나보다.
이 둘은 유비가 형주에 있을 적에 임관하였고,
어중간한 간손미 행님들만 모셔오던 제갈량은 제법 똘똘한 막내들이 들어오는게 기뻤는지,
마량&마속 형제를 꽤나 예뻐했다.
[마량이 제갈량을 존형(尊兄)이라 불렀는데,]
마량은 아마 제갈량과 결의형제를 하였거나, 서로 친분이 있었던 듯하다.
- < 삼국지 촉서 > 마량전, 배송지주
(마속의) 재주와 기량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군사 계책을 논하기를 좋아하니,
승상 제갈량이 더욱 그의 기략을 빼어나게 여겼다.
제갈량은 마속을 참군(參軍)으로 삼고, 매번 불러서 담론(談論)하기를 밤낮으로 했다.
- < 삼국지 촉서 > 마속전
이 중 마량은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이릉대전에서 사망하였고,

마속은 제갈량으로부터 죽은 형의 총애까지 더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이후 북벌까지 동참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제갈량이 천수, 남안, 안정 이 세 곳의 항복을 받은거까지 같이 보았다.
최전방의 성들이 줄줄히 항복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조예는 직접 장안에 대군을 끌고 오게 되고,
아래와 같은 전황이 펼쳐졌다.

(옹주 지도)
①번에서 조운이 별동대로 조진을 묶어놓고 있고,
②번 상규와 ③번의 농서&량주 위군을 몰아내어 서쪽 지역을 평정하게 되면,
조진을 싸먹고 장안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게 제갈량의 계산이었다.
단, 제갈량이 두려워 한 최악의 상황이 있었는데,
옹주 서부를 장악하기 전에, 위의 본대가 ④번의 가정쪽 길을 통과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상규&농서를 제압할 때까지만,
누군가 ④가정에서 위의 원군(장합)을 막고 버텨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바로 이곳에 오늘의 주인공인 마속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마속을 보내는 제갈량의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마속은 야전지휘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논자들은 숙련된 장수[宿將]인 위연, 오일(오의) 등이 마땅히 선봉이 돼야 한다고 했으나,
제갈량은 뭇 의견을 거스르고 마속을 발탁하여 대군을 통솔하여 선두에 서게 하였다.
- < 삼국지 촉서 > 마속전
제갈량이 굳이 마속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지금은 추측만 가능한 정도인데,
(죽은 제갈량을 꺼내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소개한 바 대로,
“옹주 서부를 빠르게 평정한 후, 위의 본대를 맞이한다.”라는 제갈량의 구상때문인 듯하다.
이걸 기준으로 본다면,
가정의 역할은 촉군이 옹주 서부를 정리할 때까지만 짧게 버텨주는 정도이니,
상대적으로 좋은 장수들을 공격 쪽에 투입하고
수비는 마속정도면 괜찮겠지라는게 제갈량의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마속이 아무리 야전지휘경험이 전무하다 하더라도,
그간 제갈량 옆에서 전략을 짠 세월이 있고,
어느덧 마속의 나이도 39살이라 이제 짬이 꽤나 쌓인 상황인데,
“너는 야전경험이 없자나!”하면서 계속 마속을 안 써먹기에는
그나자나도 인재풀이 좁은 촉의 입장에선 많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런 종합적인 상황들로 인해,
마속의 가정 수비는 국가적으로나, 마속 개인의 측면으로 보나,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그리고 제갈량으로부터 ‘가정의 길목을 막으라’고 하는 구체적인 작전지시도 받은 터라,
실패해도 어느 정도 책임은 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놀랍게도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제갈량의 작전명령은 모두 무시하고,
독단적 판단으로 가정의 길목이 아닌, 길 남쪽의 산 위로 올라간다.
대충 마속이 한 짓을 그림으로 예를 들면 이러하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한숨 나오는 짓을 마속이 왜 했는지 그래도 추측을 해보자면,
마속은 아마 길목을 막는다 하더라도 위군이 산을 넘어 공격하는 걸 우려한 듯하다.
그래서 차라리 고지에 올라가 있으면,
위군은 산 위의 촉군을 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촉군에게 배후를 공격당할 수 있게 되니,
위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게 마속의 생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건 마속의 생각일 뿐이었고…
실제론 저렇게 산에 올라가버리면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림에서 보이듯이 실제 가정 또한 강이 북쪽에 있던 터라,
남쪽 산으로 가버리면, 물을 보급할 수가 없었다.
당시 부장이었던 왕평이 마속에게 이를 지적하였지만,
놀랍게도 마속은 이를 듣지 않고 산으로 올라갔다.
마속은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였으므로
왕평은 계속 마속에게 간언[規諫]하였으나, 마속이 이에 따르지 않았다.
- < 삼국지 촉서 > 왕평전
설상가상으로 가정을 돌파하기 위해 온 위국의 선봉장은 명장으로 유명한 장합이었다.
(연의에선 사마의가 오거나, 둘 다 올 때도 있다.)

사실 위나라 입장에서는 이미 가정을 촉군이 막고 있단 소리를 들었을 땐,
원랜 매우 암담한 상황이었다.
물론, 마속이 해놓은 짓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렇게 장합의 대학살쇼가 시작된다.









(장합은) 제갈량의 장수인 마속과 가정에서 맞붙었다.
마속은 남산에 의지했고, 내려와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
장합은 그 용수로[汲道]를 끊고 들이쳐 마속을 대파했다.
남안, 천수, 안정군이 모반해 제갈량에 호응했었는데, 장합이 이를 모두 깨뜨리고 평정했다.
- < 삼국지 위서 > 장합전

“그저 지키라고만 하였거늘.”
묘수병에 걸려 실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마속의 결정은
그렇게 촉나라와 제갈량의 꿈을 좌절시키고 말았다.
(마속이) 위의 장수 장합과 가정에서 싸웠으나, 장합에게 격파되고 병사들은 흩어졌다.
제갈량은 군대를 퇴각시켜 한중으로 돌아왔다. 마속은 하옥되어 죽었다[物故].
제갈량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마속의 나이는 39세였다.
- <삼국지 촉서> 마속전
마속이 죽을 때 제갈량에게 글을 남겼다.
“명공께서는 저는 자식처럼 보아주시고, 저도 명공을 아버지처럼 보았으니,
… 저는 죽더라도 황천에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 십만의 병사들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제갈량이 직접 그의 제사에 임하여, 마속의 남겨진 자식들을 평생토록 대우하겠다고 했다.
장완이 제갈량에게 물었다. “ …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지모 있는 선비(마속)를 죽이는 것이 어찌 후회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손무(손자)가 능히 승리했던 까닭은, 법을 운용하는데 밝았기 때문이오.
… 천하가 분열되고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만약 다시 법(원칙)을 무너뜨린다면, 무얼 써서 적을 토벌하겠소?”
- < 양양기 >
이렇듯 제갈량이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매우 아꼈던 동생 마속의 목을 베니,
이 일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고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마속이 참수된 후에도 제갈량이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장완이 제갈량에게 물었다.
“이미 군법을 바로 잡았거늘 어찌하여 그리 우십니까?”
제갈량이 대답했다.
“선제(유비)께서 임종하실 때 내게 말씀하시길,
‘마속은 실제보다 말을 과장하니, 크게 기용하지 말라.’하셨소.
오늘날에서야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니 애통할 따름이오.
이 패전은 모두 나의 책임이오.” - < 연의 >
제갈량이 상소를 올렸다.
“… 가정과 기산에서의 실패[違命, 不戒]는 신이 임무를 줌에 있어 방법이 잘못된데 있습니다.
신이 명철하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에 크게 어두웠으니[恤事],
청컨대, 스스로 3등(等)을 깎아 그 허물을 꾸짖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에 제갈량을 우장군(右將軍)으로 내리고, 승상사무 대행[행승상사(行丞相事)]으로 삼아,
업무[總統]는 예전과 같게 했다.
- < 삼국지 촉서 > 제갈량전
‘읍참마속’이 시사하는 또 다른 의미로는 ‘책임’이 있다.
제갈량이 마속을 가정으로 보낸 결정을 하는 데에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진 않았을 것이다.
유비가 말한 마속의 단점을 제갈량도 모르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아끼는 동생이기에 그 단점을 사소히 여겼고,
결국 그것은 이 패전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제갈량은 부정하지 않고 먼저 밝혔으며, 그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렇듯 제갈량과 ‘읍참마속’의 일화는
‘고위직의 공정한 결정과 책임’에 있어 지금까지도 좋은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
< 에필로그 >
이후 제갈량은 위군의 반격을 한 번 막고, 네 번 더 기산에서 진출하여 북벌을 시도하니,
이를 합해 ‘육출기산(六出祁山)’이라 한다.

이런 제갈량의 북벌을 저지하고 위나라를 지켜, 제갈량의 라이벌로 명성을 날린 사마의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1차 북벌 때 제갈량에게 항복한 ‘천수의 기린아’ 강유는
제갈량이 죽은 뒤에도 제갈량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을 계속 이어나간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