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감히 말하건대, 침투부를 보는 한국인이라면
제갈량과 북벌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방장을 진짜 제갈량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 듯하다. ㅋㅋㅋ)



북벌은 우리 침투부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컨텐츠인만큼,
삼국지를 안 읽은 우리 한국인 여러분들도 소외감을 느끼시지 않도록
이번엔 북벌(北伐)에 대한 썰을 간략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겠지만,
우리 방장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촉나라는 삼국 중에 가장 ㅈ밥이었다.

그나마도 형주가 있었을 땐 어느 정도 비벼볼 만 했겠으나,
안타깝게도 형주는 관우가 날려먹고, 유비가 이곳을 수복하는 것도 실패하면서,
촉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촉엔 반란까지 일어나지만,
제갈량이 이를 진압하고 남정에 성공하면서(a.k.a.칠종칠금)
촉나라는 그나마 한 숨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촉나라는 내정을 다지며 국력을 다시 서서히 회복하고는 있었지만,

그냥 이 상태로는 물적 자원이든 인적 자원이든,
‘먹는 자원이 다른' 위나라를 극복해내기 힘들다는건 여전히 변함 없었다.
결론은 촉나라가 이대로 익주에 갇혀있기만 한다면
중원회복이라는 촉한의 꿈은 꽤나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놀랍게도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촉나라에게 역전의 기회가 성큼 찾아오게 된다.

아버지 조조의 위광으로 한나라를 찬탈 선양받게 된 이 조비라는 녀석은
성격에 큰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국정을 망칠만큼의 멍청한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정(外政)에 있어서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게 되는데...

조비는 이릉에서 패한 촉을 너무 JOT으로 보고 오나라 공략에만 매진하였는데,
문제는 그 오나라 원정이 번번히 실패했다는 것이다.(총 3회)
이 덕분에 압도적 1위이라 할 수 있었던 위나라의 국력은 꽤 갈려나가게 되었고,
촉은 내정에 몰두하며 나름의 원기옥을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러고도 위나라는 앞에서 말했던거처럼 ‘먹는 자원’이 다른 나라이니,
조비가 병건하게 수습을 잘 했더라면 큰 문제는 없었겠으나,
소모된 국력을 회복시킬 새도 없이, 조비가 어이없게도 이 시국에 급사를 해버리면서,
위나라의 정국은 꽤 어수선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 황금타이밍을 목 빠지게 기다려 온 촉나라의 충성스러운 브레인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이 역전의 기회를 잡고자 출진하니,
그 유명한 북벌(北伐) 되시겠다. (227년)

신(臣) 량(亮)이 삼가 아뢰옵니다.
… 신은 본래 하찮은 선비[布衣]로 남양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하였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제(유비)께옵서는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 번이나 몸을 낮추시어 몸소 초려를 찾아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이에 신은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을 받들었사옵니다.
… 신은 선제의 유지를 받은 이래 조석으로 근심하며,
혹시나 그 부탁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신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 이제 남방은 평정되었고, 인마(人馬)와 병기, 갑옷 역시 넉넉하니,
마땅히 삼군(三軍)이 북으로 나아가 중원을 평정해야 할 것이옵니다.
신은 늙고 아둔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옛 황도로 돌아가는 것만이
바로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신의 직분일 것입니다.
- 전(前) 출사표(出師表)
신은 정성과 온 힘을 다하여 나라에 이바지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소로 멈추겠나이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 후(後) 출사표(出師表)
20만의 촉군은 기산을 넘어, 위나라의 서쪽 옹량(옹주+량주)을 침범하였고,
바로 이곳에서 제갈량과 역사적인 전투를 벌일 위나라의 대장이 등장하니...

하후무였다.

그리고 이 친구는 종수형을 무척 닮았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쓸 때, 필자는 하후무같은 인물을 기술하는걸 상당히 좋아한다.
보통 삼국지같이 고인물이 겁나 많은 영역은 아무래도 태클이 늘 무섭기 마련인데,
굉장히 고맙게도, 이 하후무는 정사든 연의든 이견의 여지없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하후무는 무략(武略)이 없고, 치생(治生)을 좋아했다. - < 위략 >
"듣기로 하후무는 어려서 주인(조조)의 사위가 되어 겁이 많고 꾀가 없다고 합니다.
하후무는 (촉의 장수) 위연이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것을 들으면 필시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 < 위략 >
하후무는 하후돈의 아들이자 조조의 사위로, 위나라에선 거의 끝판왕급 혈통이었다.
이 혈통을 바탕으로 하후돈과 하후연이 담당하던 자리들을 승계받았는데,
그 중 한 자리가 바로 이 옹량을 지키는 관중도독이었다.
문젠, 하후무는 지휘경험이 전무한데 그냥 혈통빨로 높은 자리를 받은 전형적인 똥별이었고,
그런 녀석이 담당하고 있는 이곳에,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명재상이 쳐들어 온 것이다.
물론 위나라에서도 하후무의 이런 점을 사람들이 몰랐을 리는 없다.
당연히 이 곳에 제갈량을 막기 위한 지휘관을 따로 뽑자는 논의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정작 하후무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혼자 몰랐던 듯하다.
하후무가 직접 지휘관이 되어 제갈량을 막겠다고 나서자,
사도 왕랑이 하후무의 경험없음을 근거로 이에 반대하니, 하후무가 왕랑에게 따졌다.
“혹시 사도께서는 지금 내 재능을 시기하고
내가 공을 세울 것을 우려하여, 적을 이롭게 해주려는 것이오?
나는 어릴 적부터 부친에게 병법을 배워 육도와 삼략*을 통달하였소.
제갈량도 한낱 인간일 뿐이오. 제갈량을 생포하지 못한다면 내 맹세코 황제를 뵈러 돌아오지 않겠소.”
하후무의 호언장담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 < 연의 >
(* 여담이지만, 이 당시 육도삼략은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성사가 된 세기의 대결,
제갈량 vs 하후무
그 결과는...?
촉나라의 대장 제갈량이 국경을 침입하자,
천수, 남안, 안정, 삼군(三郡)의 관리와 민중이 위나라에 모반하고 제갈량에게 호응했다.
- < 삼국지 위서 > 명제(조예)기
옹주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고, 우리의 육도삼략왕 하후무는
본인의 호언장담 대로, 강족(이민족)의 땅으로 도망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하후무는 원술, 한현, 엄백호와 함께 삼국지 무능 사천왕으로 지금까지도 손꼽히고 있다.












위나라의 황제 조예는 장합, 사마의 등과 함께 제갈량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 친정에 오르게 된다.
다음 편은 ‘읍참마속’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