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왕좌지재와 빈 찬합







삼국지 한 번도 안 봤어도 많은 분들에게 아마 이미 익숙하실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유명한 ‘빈 찬합’ 밈의 주인공,

‘순욱’ 되시겠다.
이 양반 존나 똑똑하다는건 뭐 삼국지 한 번 안 들춰 봤어도 대부분 아실 것이다.
우리 방장이 가장 사랑해마지않는 삼국지 게임엔,
(요샌 포켓로그에 좀 밀렸지만)
‘왕좌’ 또는 ‘왕좌지재’라는 장수특성이 있다.
다음은 왕좌지재를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 장수들이다.

좌측부터 여상(강태공), 장량, 순욱, 주유, 제갈량이다.
라인업만 봐도 ㅈ사기 특성같이 느껴진다.
왕좌지재(王佐之才)라는 말은 ‘왕을 능히 보좌할 만한 인재’라는 뜻인데,
이 말은 오늘의 주인공 순욱이 받은 인물평으로 유명하다.
순욱이 어릴 때,
남양의 하옹(何顒)이 순욱을 보고 기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이 아이는 왕을 보좌할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이 인물평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처음 듣기엔 딱히 안 와닿을 수 있을텐데,
가만 생각해보면 사실 이거보다 좋은 인물평은 아마
‘왕이 될 재목이다.’정도일 것이다.
근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런 소리를 함부로 씨부리고 다니면 뭐...

제명까지 살기 굉장히 어려웠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 당시엔 관리 채용을 위한 정식 시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출신 가문과 외모, 그리고 위와 같은 명사들의 인물평을 통해 관리에 선발되곤 했다.
인물평이 사실상 공직 추천서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명사들도 이를 염두해두고 젊은 선비들의 인물평을 해주곤 하였다.
고로 ‘왕을 보좌할 만하다’는게 신하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순욱이 이런 인물평만을 가지고 유명해진 사람은 아니다.
조조군에 출사하여 그에 걸맞는 여러 재능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순욱이 내정의 귀재였다는 사실은 이미 다들 아실테니 넘어가고
순욱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업적은 ‘협천자(挾天子)’ 구상일 것이다.
동탁에 이은 이각, 곽사의 전횡으로 인해
천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고,
전국의 군웅들은 어린 황제를 애물단지로 여기며,
천자의 구조요청을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욱은 이를 오히려
한나라의 명맥을 지키면서 조조군의 기반을 다질 기회로 여기고
조조에게 협천자를 진언하여 조조가 천자를 옹립하게 한다.
이로써 조조는 대의명분과 긍정적인 여론을 선점하여 많은 인재들을 얻게 되고,
이 후 천자를 잘 써먹으며(?) 장기적인 이득을 취하게 된다.
또한 순욱은 수성(守城)에도 꽤나 일가견이 있었으니.
조조가 서주에서 열심히 효도(?)를 하고 있을 때,
여포&진궁의 습격에 조조의 모든 기반이 다 날아가 버릴 뻔한 정말 큰 위기가 있었으나

순욱은 정욱과 함께 조조의 본거지를 지키는데 성공하였으며,
조조의 최대 위기라 볼 수 있는 원소를 상대로 한 관도대전 때도
전황이 너무 불리하여 조조마저도 마음이 흔들려 퇴각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욱이 허도(조조군의 수도)를 굳건히 지키고 조조를 설득하여
결국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순욱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인맥’과 ‘안목’이다.
순욱은 전후로 뛰어난 인재를 여러 사람 추천했다.
그 가운데 고향 사람으로는 순유, 종요, 진군이 있었으며, 하내에서는 사마의가 있었다.
또 당대에 이름난 사람으로는 치려, 화흠, 왕랑, 순열, 두습, 신비, 조엄과 같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공경의 반열에 오른 사람만 10명이 넘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되진 않지만 희지재, 곽가, 두기 등도
모두 뛰어난 지혜와 책략으로 천거되어 각자 이름을 날렸다. …
조조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순욱과 순유가 말한 사람은 더욱 믿을 만하다.
나는 영원히 그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배송지주 -


위와 같은 ‘순욱 피라미드’ 드립이나,
“조씨와 하후씨가 아니면, 순욱이 추천한 사람이더라.”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순욱의 인사는 조조군의 초창기 시절부터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재야 인재들의 주류인 ‘청류파’(비환관&비외척 사대부)는 대부분 지방호족들이었는데,
중앙정치가 무너지고 십상시의 난 등을 거치며 ‘탁류파’들이 몰락함에 따라,
청류파들의 거취가 상당히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그 때 청류파를 대표하던 가문 중에 하나가 순욱의 ‘영천 순씨’였고,
그 중에서도 순욱은 청류파들로부터 대단히 위신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순욱은 덕행을 두루 갖추었으며, 정도가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걸과 준재들이 모두 순욱을 자신의 조종(祖宗)으로 여겼다.
사마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 … 백 수 십년 동안 순령군(荀令君:순욱)에 미치는 현재(賢才)는 없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배송지주 -
위에서 순욱이 추천한 인재 대부분은 소위 영천 귀족이라 불리는 청류파들이었는데,
당시엔 세력도 약하고 입지도 굉장히 불안했던 환관의 자손, 탁류파 조조에게
순욱이 임관한 것은 이들에겐 그 의미가 굉장히 컸을 것이다.
조조도 이를 모르지 않았고, 그렇기에 조조에게 순욱은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였다.
초평 2년(191년),
순욱은 원소를 버리고 태조(조조)를 따랐다.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순욱, 그대는 나의 자방*이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자방: 한고조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공신 장량의 자(字)
그리고 위에 소개한대로 순욱은 정말 기대이상으로 공적을 세워주었고,
조조와 순욱의 신뢰는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가 부럽지 않을 만큼 탄탄해져 갔다.
태조(조조)가 정벌 때문에 밖에 있으면,
군국(軍國)의 일은 모두 순욱과 계획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조조가 순욱을 만세정후(萬歲亭侯)로 봉하기 위해 표를 올렸으나,
순욱은 (자신이) 야전에서의 공이 없다며 사양하였다.
조조가 순욱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와 더불어 일을 하며 조정을 바로 세우고, 그대와 함께 폐하를 보필했으며,
그대와 함께 수많은 인재를 추천했고, 그대와 함께 여러 가지 계책과 모략을 세웠는데,
야전에서 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말로 사양하지 마시오.”
그러자 순욱도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 < 순욱별전 > -
태조(조조)가 딸을 순욱의 장자 순운에게 시집보냈는데, 후에 안양공주라 칭해졌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종요는 이렇게 말했다.
“태조(조조)는 총명하기가 짝이 없을 정도이지만,
큰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순군(순욱)에게 먼저 자문을 구합니다.
… 우리들은 명을 받아 행동을 하지만, 순욱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더라도 주군의 뜻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배송지주 -
사실 우리는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이 길고 긴 순욱에 대한 찬사를 읽으면서 아마 많이들 느끼셨을 거다.
“아니, 도대체 이런 순욱이 왜 빈 찬합을 받게 된 거야?”
건안 17년(212년),
동소 등은 태조(조조)의 작위로 국공(國公)으로 올리고
구석(九錫)을 갖추어 남다른 공훈을 표창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은밀히 순욱에게 자문하였다.
그러자 순욱은 태조가 본래 의병을 일으킨 것은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를 편안히 하기 위함이기에,
… 이와 같이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했다.
태조가 이로 인해 마음속이 평안할 수가 없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일단 가장 큰 원인은 조조의 권력욕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국공(國公)이라는 자리는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대충 저때 황제 바로 밑자리라고 보시면 된다.
“아니 조조가 이미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실권자인게 뻔한 상황인데,
거 황제 바로 밑자리 좀 받는게 대수임?”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헌데 문제는 국공도 문제이지만, ‘구석을 받는 국공’이라는게 굉장히 주요한 사안이었다.
‘구석(九錫)’은 황제급에 준하는 9가지 물건이나 의전을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이다.
이거 자체로는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는 바로 이전 시대의 왕망*이라는 사람이
이 ‘구석을 받는 국공’의 자리에 오른 후 한나라를 찬탈한 적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한나라 4대 역적 ‘망탁조의’에 ‘망’이 왕망이다. 나머진 동탁, 조조, 사마의)
정황상 이건 단순히 조조가 2인자 자리에 오르려고 한 것이 아니다.
명백하게 각을 본 행위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이 말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정확하게 태클을 걸고 나온 사람이 순욱이었다.
이게 조조는 대단히 삔또가 상했던 것 같다.
이것은 순욱의 죽음에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조조는 무슨 생각으로
그 공 많은 순욱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일까?
그냥 싸이코패스라서?
이 사건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먼저 < 삼국지 >의 저자이자 당대의 역사가 진수의 견해이다.
평하여 말한다.
순욱은 인품이 청아하고 수려하며, 학식이 통달하고 아정하여
왕을 보필할 수 있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기민하게 헤아리고 먼저 식별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자신의 뜻을 충분히 살리지는 못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순유가후전 -
여기서의 ‘자신의 뜻’은 한나라 부흥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음은 이 평에 대한 후대 역사가 배송지의 해석이다.
세상의 논자들은 순욱이 위씨(魏氏:위나라)를 보좌하며 한의 제위를 기울어지게 해,
군신의 지위가 바뀐 것이 실로 순욱의 책임이라며 많이 비웃었습니다.
(순욱이) 비록 만년(晩年)에 다른 의견을 세우나,
(한나라의) 운수가 바뀌는 것을 구하지 못하여
공은 이미 의(義)를 거슬렀기에 이를 괴로워했습니다.
진씨(진수)의 이러한 평은 대략 세상의 식견과 같습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순유가후전, 배송지주 -
배송지에 따르면, 아마 당대의 사람들은 순욱의 죽음에 대해
“아니 한나라를 부흥시키고 싶었으면 조조군엔 왜 들어갔어?
본인이 위나라 만든 1등공신이면서 그게 맞음?”이라는 인식이 많았던 듯하다.
아마 조조의 입장도 이와 유사할 것 같다.
사실 순욱은 조조에게 진언을 할 때, ‘제왕’의 예를 자주 들곤 했다.
처음 천자를 옹립하자고 조조에게 제안할 때도,
“옛날 진문공이 주양왕을 맞이하자 제후들이 그림자처럼 (진문공을) 따랐으며,
(한)고조는 동쪽으로 정벌하면서 의제(義帝)를 위해 소복을 입자 천하의 인심이 귀의했습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
이처럼 진문공과 한고조의 예를 들었는데, 진문공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고조는 명백히 창업군주이다. 더 나아가 여기서 만약 헌제를 의제로 비유한 것이라면,
조조는 충분히 순욱이 자신의 패업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창업군주의 예로 조조를 비유한 것은 다른 대목에서도 보여진다.
“옛날 (한)고조는 관중을 보전했고, 광무제는 하내에 근거하여,
모두 근본을 깊고 굳건히 하여 천하를 제압하였습니다.
… 장군께서는 본래 연주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 이곳은 또한 장군의 관중과 하내가 되는 것이니
먼저 평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여포와의 대결에서 조조에게 전략을 진언하며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위공 즉위에 대한 순욱의 반대는 조조입장에선 대단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라 보여진다.

‘아니 천자 데려다 이용해 먹으라고 한 것도 자기고, 나한테 맨날 창업군주를 들먹인 것도 자긴데,
여태까지 계속 나랑 붙어먹고 같이 역적질 했으면서 지금 와서 왜 아닌 척 하는거야?
우리 좋았던거 아니야? 뭐 나만 역적이고 나만 쓰레기야?’
조조 나름대론 아마 순욱이 표리부동하게 느껴지고 배신감 또한 컸던 듯하다.
그렇다면 순욱은 정말로 막판에 그저 말 바꾸기를 한 것일까?
순욱은 어떤 의도로 조조군에 임관하고 협천자를 제안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배송지의 격렬한 항변이 있다.
신 배송지가 이러한 견해가 비롯됨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순욱의 원대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순욱이 어찌 위무제(조조)의 의지와 기개를 알지 못했고,
쇠락한 한나라의 곧은 신하가 아니었겠습니까?
진실로 당시에 왕도가 이미 쇠해져 재앙이 이미 이르렀고,
호걸들은 범과 같이 노려보고 사람들은 다른 마음을 품어, 난리를 평정할 자질과 책략은 있지 않아,
한실의 멸망은 급작스러웠고 백성의 무리는 병들었습니다.
대저 순욱이 당대의 영재를 도와,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고 (한나라의) 운수를 지켜내길 원했는데,
순욱이 함께 하지 않았으면 누가 이 일을 함께 했겠습니까?
- < 삼국지 위서 > 순욱전, 배송지주 -
뭐 한마디로 한실부흥은 진심이었지만,
조조군에 임관하는 것 말고 별다른 방법이 있었겠는냐는 말이다.
원소는 이미 강력한 우승후보였기에 천자는 안중에도 없던 데다가
동탁이 세운 헌제를 딱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아 했었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당연히 집도 없는 유비한테 갈 순 없었을 거다.
그나마 적당한 세력이 있고, 적당히 약점도 있고,
천자를 구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던 조조가 순욱에겐 안성맞춤이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견해로는, 순욱이 조조를 위와 같이 밀어준 목적은
황제를 다른 유씨로 바꿔서 한실을 지키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헌제는 당시에 정통성 문제로 공격을 많이 당하고 있었고,
‘헌제=한나라’인 것은 아니니, 차라리 헌제를 포기해서 왕조를 지켜내려 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조조가 그냥 찬탈하려고 하자 급하게 막아서다 죽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 외에도 순욱의 죽음에 대하여
단순 토사구팽이다, 조조가 영천귀족을 숙청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등의 의견들도 있으나,
사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맞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조조와 순욱은 이미 죽었고, 그 진의를 정확히 알만한 자료도 없으니 말이다.
태조(조조)가 순욱에게 음식을 내렸는데,
열어 보니 빈 공기여서 이에 약을 먹고 죽었다.
- < 위씨춘추 > -
순욱은 상서령이 된 이후에 자신이 한 일을 항상 글로 써서 남겨두었지만
죽을 때가 되자 모두 불로 태워 없앴다.
그러므로 그의 기책과 밀모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 < 욱별전 > -
순욱의 진의는 무엇이었는지, 조조가 순욱을 어떤 마음으로 죽였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 죽음에서 진한 씁쓸함이 묻어 나오는건 세월이 지나도 계속 되고 있다.






"신이 처음 의병을 일으켰을 때부터 순욱은 신과 한 마음으로
사방의 간적들을 정벌하고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순욱은 신의 측근에서 늘 뛰어난 전략과 책략을 내놓았으며”

"순욱이 내놓은 방안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신은 순욱의 공로 덕분에 여러 차례 어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의 재능은 구름을 가르고 해와 달이 빛나는 것과 같았습니다.”

“폐하께서 허도로 행차하시자"

"순욱은 폐하를 좌우에서 모시면서 군국기무를 담당했으며”

“순욱은 충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로지 폐하께서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마치 살얼음 위를 딛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을 연구하며 처리했습니다.”

“천하가 지금처럼 안정된 것은 모두 순욱의 공입니다.”
- < 순욱별전 >, 조조가 순욱을 만세정후로 봉하기 위해 헌제에게 올린 표문 中에서 -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