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반골과 자오곡
오늘의 주인공은 ‘반골(反骨)’ 위연이다.

위연이 반골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정식 역사서에서는 알 수가 없고,
삼국지 소설 < 연의 >에서 ‘반골’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개되며 고사성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골’은 본래 뒤통수가 심하게 튀어나온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놀랍게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의 촉한승상 제갈량께서
친히 위연의 외모를 보고 평가해 준 말이다.

물론 제갈량이 대뜸 초면인 위연을 보고 “님 개못생기셨네요 ㅋㅋㅋ”을 시전한 이야기라면
이렇게 고사로 안 남았겠지만,
제갈량피셜, “저렇게 뒤통수가 튀어나온 새끼는 반란종자다.”라고 선언하며
쿨하게 위연에게 사형을 언도했기 때문에 유명한 고사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똑똑이 승상’ 제갈량께서 어찌도 이리 얼토당토 않는 말씀을 하셨단 말인가?
그 첫 번째 이유는 위연이 이미 배신을 하고 유비군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연의 >상으로 위연은 장사태수 ‘한현’ 아래 있던 장수였는데,

보시다시피 한현은 계속 섬기고 있기엔 꽤 현타가 오는 스탯을 지니고 있었다.

스탯도 낮은 친구가 우리 성재형 ‘유선’처럼 착하기라도 했으면 봐줄만 했을텐데,
한현은 안타깝게도 성격마저 솔.좀.JOT이었다. 신경질 아조씨
한현이 다스리고 있던 장사에 관우가 쳐들어 왔을 때,

한현은 ‘노익장(老益壯)’으로 유명한 명장 황충을 내보내 관우와 싸우게 하였다.
헌데, 황충이 관우와 싸우기는 싸우는데 뭔가 서로를 배려하며
브로맨스 드라마를 찍고 있는듯한 냄새를 풍기자,

한현은 황충을 의심하여 죽이려 하였고,
이런 한현의 모습이 너무 역겨웠던 위연은 이 꼴을 참지 못하고
한현을 담궈버린 뒤, 유비군에 투항을 하게 된다.

( 웹툰 출처 :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 - 무적핑크, 이리 )
위연은 원래 유비를 좋아하기도 했고, 한현이 핵무능+개트롤이었다는 명분이 있었으니,
투항을 하고 나서도 꽤나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이 때 제갈량은 유비의 이미지를 걱정하기도 했고,
그냥 항복한 것도 아닌, 주군을 찌르고 항복한 위연이 많이 찜찜하기도 해서
일종의 기강잡기용으로 “반골? 너 사형.”을 시전한 듯하다.

그리고 < 연의 >가 이 일화를 굳이 넣어놓은 두 번째 이유는
나중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복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 땐 진짜 10억까나 다름없는 < 연의 >의 반골 이야기는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위연은 나중에 실제로 제갈량과 트러블을 겪었고, 반역사건에도 휘말리기 때문이다.

먼저, 위연과 제갈량의 트러블에 대한 썰을 풀어보자면,
현대에도 꽤나 유명한 ‘자오곡 논란’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자오곡 논란’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전에도 한 번 썰을 풀었던
‘1차 북벌’때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차 북벌 당시 촉군은 위나라를 어떤 루트로 공략할 것인가 논의를 하였는데,
여기 삼잘알로 유명한 유튜버가 그린 지도를 보며 설명하도록 하겠다.

북벌엔 총 4가지 루트가 있었다.
이 중 위연이 ⓓ(자오곡)경로를 통해 빠르게 장안으로 치고 올라가자는 제안을 하였지만,
제갈량은 이를 거부하고 서쪽으로 빙~도는 ⓐ(기산)루트를 선택하였다.
물론 제갈량이 그냥 개인적으로 위연을 싫어해서 거부한건 아니었고,
나름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오곡이 매우 험난하기 때문이었다.
“길 좀 험난하다고 군대가 못 가는게 말이 돼?” 싶은 사람도 계실 수 있겠으나,





[자오곡(진령산맥)의 현재 모습]
뭐 대충 이런 식의 험난함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런 길들은 통과하는데 성공을 한다고 해도,
보급하기도 개빡세고, 혹시라도 지게 되면 퇴각은 뭐...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내정가였던 제갈량의 입장에선
이런 보급문제를 안중에 두지 않는 방식은 상당히 극혐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위연이 되지도 않을 개쌉소리를 지껄인 것이냐?
그게 또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 이 논란의 묘미라고 볼 수 있겠다.

제갈량도 소위 ‘천하삼분지계’로 초기에 북벌을 구상할 때는
한중에서 장안, 낙양으로 바로 가는 방식을 고려했던 적이 있었다.
제갈량이 ‘자오곡 계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도
단독으로 장안성에 꼬라박을 때의 이야기지,
위나라의 힘을 분산시켜줄 다른 방면의 군대가 있다면야
얼마든지 채택가능했던 전략이라 보여 진다.
고로 여기서의 핵심은 이 양동작전을 해줄 ‘형주의 존재’ 여부였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그 ‘형주’가 북벌을 준비하던 중간에 촉나라 땅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땅이 날아가는 것도 모자라,

도원결의의 저주에 걸린거마냥 형주공방전~이릉대전 동안 수많은 장수들을 잃게 된다.
- 사망: 유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법정, 관평, 마량, 유봉, 풍습,
장남, 정기, 부융, 이조, 왕보, 사마가, 번주, 습진 등
- 투항: 맹달, 황권, 반준, 두로, 유녕, 사합, 방림, 미방, 사인, 범강, 장달 등
??? : 아니 님들아 게임을 왜 던져요 ㄷㄷㄷ
이렇게 나라가 순식간에 안팎으로 상황이 JOT돼 버리니,
현실적으로 제갈량은 기존의 양동작전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을 유지할 수 없었고,
‘1차적으로 옹량을 확실히 평정한 후, 재정비해서 낙양으로’라는
단계적 전략인 ‘기산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이러고 나서 제갈량이 북벌을 성공했더라면,
이런 분석도 딱히 필요가 없고 뒷말도 안 나오고 깔끔했을 것이다.
북벌만 성공했다면 이런 제갈량과 위연의 전략적 견해 차이는
그냥 해프닝이나 잡음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었을텐데,
정작 북벌에 실패해 버리니 위연은 더 약이 오르고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사실 이 ‘자오곡 논란’이 현대에도 계속 나오는 이유도
북벌의 성공을 정말로 응원했던 삼국지 팬들이 아직도 굉장히 많기에,
그 아쉬운 마음들이 모여 여전히 이런 논의가 심심하면 나오고 있는 듯하다.

현대의 사람들도 이토록 안타까워하는데,
그 시절에 직접 북벌을 했던 위연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위연은 그런거치고도 슬슬 선을 좀 많이 넘었던 것 같다.
위연은 매번 제갈량을 따라 출진할 때마다 번번이 군사 만 명을 청해 제갈량과 서로 길을 달리 하여
동관(장안의 동쪽 관문)에서 만나 한신의 고사처럼(자오곡 계책) 하고자 했으나,
제갈량이 이를 제지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늘 제갈량을 겁이 많다고 하며 자신의 재주가 모두 쓰이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 < 삼국지 촉서 > 위연전 -
제갈량은 1차 북벌때부터 자오곡 계책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위연의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위연은 이를 끝내 납득하지 못하고 계속 자오곡만이 옳다고 주장을 하며,
심지어는 황제로부터 모월(旄鉞:전권)을 받은 군의 총대장을 비난하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쓴 역사서에 적힐 정도로 말이다 ㅋㅋㅋㅋ
위연의 이 행동은 당연히 그 시대라면 당장 문책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하극상이었는데,
제갈량은 참는 것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위연의 실력은 어찌됐건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연이 전략적인 문제에 있어서만 제갈량에게 대든 것이라면
그나마도 자기 소신을 위해 굽히지 않고 직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위연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대단히 안 좋을 만큼
평소 행동도 안하무인이었다는 게 큰 문제였다.
위연은 사졸을 잘 기르며 용맹이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성정이 교만하고 뽐내기를 좋아하여[矜高],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였다.[避下]
- < 삼국지 촉서 > 위연전 -
위연에 대한 당시 여론이 얼마나 안 좋은지는 ‘위연의 모반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위연은 제갈량이 사망한 후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 연의 >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 역사 기록들을 보면 이 부분이 대단히 석연치가 않다.
일단 역사서 < 삼국지 >에 따르면,
제갈량이 북벌 중에 오장원에서 사망하고 촉군은 퇴각할 계획을 세웠는데,
위연은 이에 반대하고 촉군이 퇴각하지 못하도록 잔도(棧道)를 태워버리니,
이에 양의와 마대가 위연을 모반죄로 잡아 죽인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서인 < 위략 >을 보면,
위연은 제갈량이 죽기 전에 제갈량으로부터 섭행(攝行:대행)의 자리를 받았고,
그 때문에 위연은 제갈량의 유지를 받들어 잘 퇴각하였는데,
평소 위연과 사이가 좋지 않던 양의가, 위연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이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하여,
먼저 위연을 모반으로 모함해 담가버렸다고 기록돼 있다.
즉, 정말로 위연이 반란을 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반란이 아닌, 그저 위연과 양의의 불화였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이 점은 < 삼국지 >의 저자 진수 또한 동의를 하고 있다.
원래 위연의 뜻은 북쪽으로 위나라에 항복하는 것이 아니고 남쪽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다만 양의 등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평소 제장들의 의견이 서로 같지 않았는데, 서로 필히 (자신이) 제갈량을 대신하기를 바란 것이다.
본 뜻이 이와 같았으니 배반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 < 삼국지 촉서 > 위연전 -
위연의 수급이 양의에게 도착하자 양의가 일어서서 위연의 수급을 짓밟으며 말했다.
“이 하찮은 종놈[庸奴]아! 다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마침내 위연의 3족을 멸하였다.
- < 삼국지 촉서 > 위연전 -
이 양의라는 사람은 사실 이 때말고는 삼국지에 딱히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편이데, 그냥 위연하고 비슷한 부류라고 보시면 된다.
둘 다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데, 굉장히 교만하고 자존심이 쎘다.

그리고 북벌 당시 양의가 담당하는 것은 ‘군량보급’이었는데,
위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위연은 특히나 보급문제를 하찮게 보는 야전사령관이었다.
그러니 이 둘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수준까지 가게 된 것이다.
위연과 양의는 서로 증오하니, 매번 함께 자리해 쟁론(爭論)할 때마다 때로는
위연이 칼을 뽑아 양의를 겨누고 양의가 눈물을 흘리었다.
- < 삼국지 촉서 > 비의전 -
제갈량이 여러 번 출군할 때 양의는 늘 규획(規畫:계획), 분부(分部:부서배치)하고
군량을 주탁(籌度:계산)했는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이를 곧바로 끝냈다.
…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아끼고 위연의 용맹함[驍勇]에 의지하니
두 사람이 화목하지 못함을 늘 한스럽게 여기며 차마 어느 한 쪽을 폐하지 못했다.
- < 삼국지 촉서 > 양의전 -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제갈량은 위연이 저렇게 무도하게 구는데도 불구하고,
위연의 재능을 아끼어 갈등을 중재하며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제갈량이 죽고 양의와 분쟁이 일어났을 땐,
그 누구도 위연을 돕지 않는다.
위연과 양의가 각각 서로 반역했다고 표를 올리니 하루 사이에 우격(羽檄:공문)이 번갈아 도착했다.
후주(유선)가 시중 동윤, 유부장사 장완에게 묻자 장완, 동윤이 모두 양의를 보증하고 위연을 의심했다.
- < 삼국지 촉서 > 위연전 -
위연은 잘 몰랐겠지만,
자신이 그렇게 조롱하던 제갈량이 그나마 자신의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강두천 싸움의 승리자인 양의는 제갈량의 후계자인 장완을 질투하다가,
반역의 말을 실수로 내뱉게 되고,
“지난 날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약 군을 들어 위나라에 갔다면
내 처지가 어찌 이처럼 추락했겠소?”
- < 삼국지 촉서 > 양의전 -
이 발언으로 인해 유배를 간 양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교만이란 괴물은 놀랍게도,
자신을 파괴할 때까지 멈추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