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속되는 글로, 1부와 2부가 존재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원술의 ‘참칭’이 왜 병크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원술이 초반에 강력한 군웅으로 빠르게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가문과 명성, 인맥, 개사기 스타팅빨 등이 있으나,
큰 원동력 중 하나로 ‘원소와의 대립’이 있다.
이게 뭔 소린가 하면,
시간을 거슬러 ‘동탁과 원소의 대립’때로 돌아가 보자.

이 때 원소는 동탁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헌제의 옹립을 반대하였으나,
어쨌건 헌제는 즉위했고 연합군이 동탁을 잡는데도 실패하자,
원소의 입장은 굉장히 애매해졌다.
자칫하면 역적몰이를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원소가 끌어다 쓴 사람이 바로 유우다.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밀면서,
‘정통성이 훼손된 헌제에게 충성하는 것이 과연 충성일까?’하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원소는 ‘헌제에 충성≠한나라에 충성’라고 하며, 자신의 행동은 한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걸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사람이 원술이었다.
원소는 유우를 황제로 세우기 원해 원술과 의논했는데,
원술은 공의(公義)를 핑계로 대며 들어주지 않았고, 이 불화가 쌓여 마침내 대립했다.
- < 후한서 > 원술열전 -
원술이 원소에게 답서를 보내었다.
“성주(聖主:헌제)께선 총명하시어 주나라 성왕(成王)의 자질이 있으십니다.
역적 동탁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위세로 신하들을 복종시켰으나,
이것은 한(漢)황실이 작은 액운을 만난 것뿐입니다.
나라의 어지러움이 아직 가득하지 않기에, 저는 다시 한 황실을 흥하게 하고자 합니다.”
- < 오서 > -
뭐... 원술이 이런 대단한 충심을 실제로 가졌을 리는 없고
그냥 원소가 싫어서 그럴싸한 명분을 가져다가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재밌는건,
그냥 원소가 싫어서 한 이 행동이 원술에게 꽤나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원술의 이러한 헌제 옹호 입장은
당시 원소를 적대하던 세력들의 연대에 큰 명분이 되어주었고,
이는 원술의 위상을 높이고 세력 성장에도 꽤나 도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원소, 조조, 유표와 같은 친원소세력들이 초반에 꽤 애를 먹었다.
그런데,
원술은 이런 이점들과 정세 분석은 개나 줘버리고 갑자기
“니네 다 ㅈ까! 내가 그냥 황제하고 싶어! 내가 황제할거야!”
라고 대뜸 선언한 것이다.

이 짓을 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할 정치적 후폭풍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말이다.
이 개노답짓을 어떻게든 최대한 원술의 입장에서 의도를 생각해 보자면,
아마 당시 조조가 협천자(천자를 자기 옆에 낌)에 성공을 하니
자신의 기존 전략인 친헌제노선이 더 이상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나름의 대응책이라고 생각한 게 “아, 그냥 내가 천자가 돼버려야지!”인거 같다.
근데 뭐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원술은 군웅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아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버렸고,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옆동네의 간사한 놈이
원술의 세력을 야금야금 뺏어 먹으며 꿀을 빨게 된다.

조조가 몸소 원술을 정벌하였다.
이를 듣고 원술은 크게 놀라 즉시 회수를 건너 달아났으며,
기양에 장훈과 교유를 주둔시켜 조조를 막게 했다.
하지만 조조가 이들을 격파하고 교유를 죽였으며, 장훈은 퇴각했다.
원술의 군대가 약해지고 대장이 죽어 인심이 떠나니, 여러 무리가 원술을 배반했다.
- < 후한서 > 원술열전 -
조조의 입장에선 참으로 호재였던게,
그나자나도 원소랑 붙어먹었던 전적 때문에 협천자의 진의를 의심받았는데
역적 원술을 때려잡으면서 자연스레 ‘진짜’ 천자의 군대라는 명분을 얻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싱글벙글했겠는가.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원술은 계속 ‘황제놀음’을 마음껏 누려버리니
세력의 파멸이 머지않아지고 있었다.
원술의 황음과 사치는 더욱 심해져만 갔으며, 후궁 수백 명이 모두 화려한 옷을 입었고,
많은 식량을 낭비하니, 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강회(江淮) 일대는 특히 곤궁하여 백성들이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였다.
- < 삼국지 위서 > 원술전 -
원술은 자신이 명문가로 유명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천성이 교만하고 방자하므로, 오로지 자신만 고귀하다 여기고 다른 모든 것을 깔봤다.
더불어 황제를 칭하고는 음란함과 사치함이 더욱 심해져,
잉첩(媵妾)이 수백을 아우르는데 비단을 두르지 않는 이가 없었고,
쌀밥과 고기반찬을 질려 하면서도 자기 밑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고달픈데도 구제함이 없었다.
이로 인해 재물이 다 없어졌기에 자립할 수 없게 됐다.
- < 후한서 > 원술열전 -
그렇게 근거지까지 다 박살난 원술은 부랑생활을 하게 된다.
건안 4년(199) 여름,
원술은 궁을 불사르고 첨산에 있는 그의 부하 진간과 뇌박에게 달아났다.
(이 둘은 도적이다.)
그러나 진간 등이 거부하여, 마침내 크게 곤궁해지니 사졸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 < 후한서 > 원술열전 -
더 이상 살 방도가 없었던 원술은
그렇게나 증오하던 원소에게까지 연락해 자신을 받아달라 청한다.
하지만...
원술이 마침내 제호(帝號)를 원소에게 돌려보내며 북으로 가길 청하였다.
이에 원담(원소의 장남)이 있는 청주에 가려는데,
조조가 유비를 보내 이를 막으니 지나갈 수 없어 다시 수춘으로 달아났다.
- < 후한서 > 원술열전 -
이렇게 사실상 원술의 마지막 희망이 끝났다.
원술은 뇌박 등이 있는 곳에 머물었는데 삼일 후 뇌박이 양식을 끊어 버리니,
강정(수춘 부근 지역)으로 돌아왔다.
원술이 주방담당에게 남아있는 군량을 물으니, 보리 가루가 30곡 남아있다고 하였다.
이 때 더위가 극심하여서 원술이 꿀물을 얻고자 하였지만, 꿀이 없었다.
원술이 난간 위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탄식하더니 크게 외쳤다.
“이 원술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그리고 땅에 엎어져 피를 한 말 정도 토하고는 이내 죽었다.
- < 오서 > -
그렇게 원술은 오늘날까지도 ‘꿀물’이라 불리며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 에필로그 1. > 신세 역전
원술은 그의 처자식을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하였는데,
(원술이 죽고) 손책이 유훈을 격파시킨 뒤 원술의 처자식은 손책에게 거두어졌다.
원술의 딸은 손권의 궁으로 들어갔고, 아들 원요는 낭중(郎中)에 임명되어 오를 섬기게 되었다.
- < 삼국지 위서 > 원술전 -
< 에필로그 2. > 육적회귤(陸績懷橘)과 육씨가문








이 회귤고사의 주인공 육적의 아버지는 여강태수 육강이란 사람이다.
육강은 군량문제로 원술과 갈등을 빚어 당시 원술 휘하에 있던 손책에게 공격을 받은 뒤 사망한다.
원술은 대노하여 그의 장수 손책을 보내 육강을 공격하게 했다.
… 적을 맞이한지 2년이 지나 성이 함락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육강이 발병해 죽으니 향년 70세였다.
- < 후한서 > 육강열전 -
육강이 죽고 육강의 아들 육적은 아직 너무 어린 터라(9살),
당시 14세였던 육강의 당조카가 육씨가문의 당주가 된다.
이후 원술에게서 독립한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고
원술이 죽자 이 여강을 다시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이윽고 손책이 죽고 손권이 오(吳)의 주인이 되었는데,
손권은 여강의 지역유지인 육씨가문과의 화해를 위해 육씨가문의 당주와 육적을 등용하였다.
그리고 그 육씨가문의 당주는

훗날 구국의 영웅이 된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