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엔 유명한 배신맨들이 있다.
성을 3개 가지고 있는 녀석

생긴게 배신 잘하게 생긴 녀석

잘생긴거 믿고 왔다갔다 하는 녀석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배신한 녀석들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배신맨들에 결코 뒤지지 않게 주인을 많이 바꿔본 친구가 있는데,
바로 오늘의 주인공 가후 되시겠다.

가후는 대충 계산해봐도 모시는 주인을 최소 3~4번은 바꿔 본 친구이다.
허나 아주 흥미롭게도 이 친구는 위에서 본 삼국지의 유명한 배신맨들과 달리,
가후의 이적행위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전혀 배신으로 여겨지질 않는다.

“난세니깐 이적행위나 배신 좀 하는건 원래 인정아님?”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허나 이 시대는 난세이면서도 특이하게 유학을 숭상하던 시대라,
예의를 아주 엄격히 따지던 시대였다.
관리가 되거나 승진을 할 때도 공식시험이 따로 없으니,
오히려 출신(가문)+외모+평판이 매우 주요하던 시대이다.
고로 이적행위는 리스크가 꽤나 큰 행동이었다.

그리고 가후는 한나라의 서쪽 끝인 량주(凉州)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엔 이 량주와 옆동네 옹주는 주변에 수많은 이민족들과 접경을 하고 있던 지역인지라,
중원으로부터 대놓고 차별을 받던 지역이다.
심지어 가후는 한나라 망조의 원인이라 손꼽히는 동탁과 이각의 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후의 출신은 걸림돌이면 걸림돌이었지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외모는 뭐 딱히 기록된 게 없어 알 수 없으니 별론으로 하고,
그럼 사실상 가후에겐 ‘평판’ 하나 남은 셈인데,
이런 시대의 편견과 수많은 이적행위 속에서도 가후는 어떻게 훌륭한 평판을 유지했던 것일까.
오늘은 가후의 일생을 따라가며 그의 남다른 처세술을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가후의 젊었을 적 일화이다.
고향에 돌아가던 도중,
반란을 일으킨 저족(氐)을 만나 동행했던 수십 명이 모두 잡혔다.
가후가 말하였다.
"나는 단공(段公)의 외손이니, (나를 죽이거든) 너희들은 나를 따로 묻어라.
우리 집에서 필히 후하게 값을 치르고 가져갈 것이다."
단경(段熲:단공)은 당시 태위(太尉:삼공 중 하나)였는데,
예전에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수로 있으면서 그 위엄이 서쪽 땅에 떨쳤기에,
그래서 가후가 그 명성을 빌어 저족을 겁준 것이다.
저족들이 과연 가후를 해치지 않고 함께 맹서를 맺고 보내 주었고,
나머지 동행들은 모두 죽였다.
가후는 실제 단공의 외손이 아니었으나,
임기응변으로 일을 해결한 것이니,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 < 삼국지 위서 > 가후전
정사 < 삼국지 >가 인증한 가장 가후다운 일화이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역으로 적을 압박하여 살아 돌아왔다.
이 때는 안타깝게도 동행들은 살리지 못하였으나,
훗날 가후는 동행들을 살리다 못해 아예 일발 역전승을 해버리는 사건도 만들어내는데,

바로 동탁이 왕윤&여포한테 썰리고 나서의 일이다.
갑작스런 동탁의 사망에 기존 동탁군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왕윤에게 투항을 요청했음에도, 왕윤이 이를 거절하고 엄벌주의 내세운터라,
동탁군의 잔당들은 어쩔 줄을 몰라 패닉에 빠져 있었다.
동탁이 패망하자, (남은 동탁군의) 여러 사람들이 두려워 하니,
이각과 곽사, 장제 등은 군대를 해산하고 무사히 고향(량주)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에 가후가 말하였다.
"듣자하니 장안 내의 의론(여론)이 서량[량주(凉州)]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한다는데,
여러분들이 군대를 버리고 홀로 (고향으로) 가시면, 여러분들은 곧 다 잡힐 겁니다.
그러나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서쪽으로 가서, 가는 곳마다 병사를 거두어 장안을 공격하게 되면,
동공(董公:동탁)의 원수를 갚을 뿐더러, 다행히 일이 잘 풀리면 국가를 받들어 천하를 정벌하게 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때 달아나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가후의 말을 옳게 여겼다. 이에 이각이 서쪽으로 장안을 공격했다.
- < 삼국지 위서 > 가후전
이각 등이 의탁할 곳이 없어 각자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사면의 글도 없는데다가, 장안에서 량주인(涼州人)들을 모두 주살하려 한다는 말을 들으니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가후의 계책을 써서 마침내 무리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며 이르는 곳마다 군사를 거두니
장안에 도착했을 때는 군사가 10여 만에 이르렀고, 번조, 이몽, 왕방 등과 합쳐 장안성을 포위했다.
열흘 뒤 성이 함락되고 여포와 성 안에서 싸웠는데 여포가 패해 달아났다.
이각 등은 군사를 풀어 장안의 노소(老少)를 약탈하고 모두 죽이니, 죽은 자들이 낭자(狼籍)했다.
동탁을 죽인 자들을 주살하고 왕윤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내버려두었다.
- < 삼국지 위서 > 동탁전

본래 가후는 “젊은 시절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했다”고 정사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인생 초반엔 그렇게 까지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었다.
헌데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여 국정을 장악한 이후,
동향사람 버프인진 몰라도 동탁의 푸쉬를 받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동탁이 죽은 뒤에도 이각, 곽사 등과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계책으로 장안 역공을 구상하여 성공하게 되지만,
다들 알고 계시듯이, 문제는 이 동탁군의 잔당들이 너무 쓰레기들이었단 것이다.

이각&곽사는 정치력과 양심은 0인데 욕심은 MAX인
기가막힌 스탯 밸런스를 가지고 있던 터라,
한나라의 운명은 거의 줄 없는 번지점프를 탄 듯이 빠르게 나락을 가고 있었다.
이 사태에 나름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던 가후는 최대한 국정파탄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각 등과 가후는 천자를 관중에 모셔두고자 상의를 했다.(*)
(* 본인들의 근거지인 옹주+양주에 가깝게 천자를 인질로 데려가려 한 것)
그러나 가후는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천자를 협박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하고 반대하였다.
- < 헌제기 >
곽사와 번조는 서로를 미워하여 자주 다투었지만,
가후가 도리를 앞세워 책망하면 그의 말을 잘 받아들였다고 한다.
- < 헌제기 >
가후는 벼슬에 임용할 사람을 뽑을 때 옛날부터 명성이 있는 사람을
영복(令僕:고위 공무원)으로 뽑으니 논자들이 가후를 아름답다 여겼다.(*)
- < 위서 >
(* 가후는 이각군에서 관리 선발 및 임용[尙書]을 담당하였다.)
이렇듯 주변에서도 점점 가후의 노력을 인정해 주었고,
심지어 이각군 안에서도, 가후같이 뛰어난 사람이
왜 이런 형편없는 이각군에 계속 남아있는건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장수(동탁군 4천왕 장제의 조카)가 가후에게 물었다.
“이 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닌데 그대는 왜 떠나지 않는가?”
가후가 대답하였다.
“나는 국가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의리상 배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대는 스스로 떠날 수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 < 헌제기 >
이 후 장수는 가후와 계속 함께하게 된다.
아마 이 때 가후한테 반한 듯하다.
그리고 소인배들의 말로가 늘 그렇듯이,
이각과 곽사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기어코 내분을 일으키게 된다.

(이병건과 진용원의 싸움 ㄹㅇ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곽사가 이각과 더불어 번갈아가며 서로 의심하니 장안 내에서 전투를 했다.
이각은 천자를 볼모로 잡아두고 궁전 성문을 불태우며 관청[官寺]을 약탈하고
임금의 수레[乘輿]와 의복 등 임금의 물건[御物]을 모두 거두어 자기 집에다 두었다.
- < 삼국지 위서 > 동탁전
이각은 강족(羌)과 호족(胡) 수 천 명을 불러 그들에게 선물로 아름다운 비단을 주고
관리들의 부녀자를 아내로 삼도록 허락한 다음 곽사를 공격하도록 했다.
… 천자가 걱정하여 가후에게 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가후는 몰래 강족과 호족의 중수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한 다음
관작과 재물을 주고 물러나도록 했다. 이후로 이각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 < 헌제기 >
그리고 이 틈을 타서 가후는 양봉, 동승, 단외, 양표 등과 함께
이 생지옥으로부터 천자를 구출할 작전을 실행한다.
이각 등이 천자를 내쫓았을 때, 대신을 도와 보호함에 가후의 힘이 있었다.
천자가 동쪽으로 향하자 이각은 그들을 추격하여 천자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사도(司徒) 조온, 태상(太常) 왕위와 주충, 사예교위 영소 등은
모두 이각에게 미움을 받았던 신하들이었으므로 이각은 이들을 살해하려고 했다.
이때 가후가 이각에게
“그들은 모두 천자의 대신들이오. 그대는 어찌하여 그들을 해치려는 것이오?”라고 하자,
이각은 그만두었다.(*)
- < 삼국지 위서 > 가후전
(* 다른 사서에선 약탈의 기록은 많은 것으로 보아, 아마 약탈은 하고 정말 딱 죽이지만 않은 것을 의미하는 듯함.)
이후 이각은 천자를 구하려는 여러 군대와 계속 싸우면서
천자를 추격하는게 많이 귀찮았는지 약탈만 하고 추격을 포기한다.
그렇게 해서 천자는 조조의 품으로 넘어가게 된다.
물리적 지옥에서 정신적 지옥으로
그리고 이각&곽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속죄하기 위한 마지막 미션을 마친 가후는,
조조를 따라가지 않고 벼슬에서 내려온다.
천자가 장안을 나오자 가후는 (자기 관직의) 인수(印綬)를 돌려 바쳤다.
- < 삼국지 위서 > 가후전
이 후 가후의 이야기는 “인생은 가후처럼(2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에필로그 >
여담이지만 이 때 천자와 함께 조조군에 들어간 동승 등 천자의 측근들은,
이 중 상당수가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였다.

… 어찌보면 이 두 집단의 갈등은 사실 거의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가후가 이 갈등을 예견한 것인지는 지금에 와선 정확히 알 방도가 없으나,
어쨌든 이 때 공신의 입장으로 굳이 조조군을 따라가지 않고 사직을 한 결정은
가후의 입장에선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어주었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