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짤출처: 침투부 - 갖고 싶다 말해! )
“당신은 사마중달이야!!!”
오늘은 ‘사마중달’이 왜 이런 식으로 쓰이고 있는 지에 대해
한 번 자세히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234년,
위나라는 제갈량의 목숨을 건 공세에 5번이나 시달려야 했지만,
마침내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쓰러지면서 잠시나마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평화의 시대가 오고,
그 평화에 젖어 한껏 향락을 누리던 위명제 조예에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찾아오는데

바로 ‘죽음’이었다.
위나라의 요절 리스크가 조비에 이어 2대째 터진 것이다.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죽음에 당황스러웠을 조예였지만
이대로 그냥 죽을 순 없었다.
죽기 전에 반드시 대비해 놓고 가야할 큰 골칫덩이가 하나 있었으니
마왕 제갈량의 마수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공신.

사마중달 되시겠다.
아니, 나라가 환란에 빠질 때마다
동분서주하며 외적과 역적들을 쳐부순 사마의 아니던가?
그런데 황제가 어찌하여
위나라에서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군공을 세운
사마의를 근심으로 여긴단 말인가?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사마의가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위나라 최고 공신이 되었다는 것.

나라를 위해 힘써준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신하가 능력도 좋은 데다가 영웅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놈이라는 건
군주로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조예가 정정했다면 이는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조예정도의 정치감각이면 사마의를 통제하는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조예는 이른 나이에 죽어가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후계자 문제였다.
곧 위의 3대 황제가 될 황태자 조방은
조예의 친아들도 아니었고 나이도 매우 어렸다.
조예는 서른이 넘도록 아들을 낳는데 실패한 탓에 양자를 들였는데,
문제는 이 양자가 장성할 시간과 정치적 뒷배를 만들어줄 틈도 없이
본인이 사망하게 생긴 것이다.
과연 이 정통성이 박살난 어린 황제에게도 사마의가 나에게 하듯이 충성을 해줄까?
조예는 불안했다.
사실 이러한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조조 때부터 내려오는
위나라의 전통적인 템플릿이 있었는데
바로 고위관직의 비율을 ‘조씨반(하후씨 포함) + 공신반’으로 하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좀 어이없는 기계적 비율일 수 있겠으나,
당시엔 나라를 뺏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공적을 세운 충신이라도 사람의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니깐.
아무튼 조조가 만든 이 룰은 위나라 초기까진
뭐 얼추절추 나름의 밸런스가 유지됐었는데…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정쟁들을 겪고 나니
쓸만한 조씨(+하후씨)들이 쫓겨나거나 슬슬 사망하였고,

조예때 이르러선 옆동네의 북벌에 미친 인간 덕분에 공신도 많이 양산되며,
점차 공신이 조씨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조씨와 공신 간의 밸런스가 좀 무너져버리긴 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조예가 젊은거치고도 정치력이 나쁘지 않아
위의 밸붕 문제를 커버하면서 꽤나 강력한 황권을 구가했었다.
이대로 조예가 집정하면서 후대를 양성하고 정치세력구도를 재편성했다면
별문제없이 정치안정기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하지만 결국 조예는 쓰러졌고,
조씨 황실은 꽤나 위태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조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곧 즉위할 어린 조방을 보필해줄 보정대신이 필요할 터였다.
일단 사마의는 확정이다. 차라리 황제의 보필을 맡기는 게 안전하리라.
물론 사마의만 시켜서는 안 된다. 사마의를 견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젠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마의를 견제할 수준의 능력과 짬을 가진 조씨가 도성 안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조예가 차선책으로 생각해 낸 사람이 바로,
북벌 때 죽은 대장군 조진의 아들 ‘조상’이었다.

물론 조상은 사마의의 맞밸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조예는 어차피 쓸만한 조씨가 없으니 그냥
좀 모자라도... 절대 배신은 안 할 사람을 선택한 듯하다.
조상은 종실(宗室)의 신분으로,
어릴 때 명제(조예)가 동궁(東宮:태자궁)에 있을 때부터 매우 가까이하고 총애했다.
명제가 즉위하자 산기시랑(散騎侍郎)으로 임명되었고, 거듭 승진하여 성문교위(城門校尉)가 되었다.
거기에 산기상시(散騎常侍)의 직이 더해졌다가 무위장군(武衛將軍)으로 전임되었으니
그 총애함이 이처럼 특별했다.
- < 삼국지 위서 > 조상전 -
산기시랑과 산기상시는 황제의 수레를 호위하는 직위들이고 무위장군은 근위대장이다.
하는 일만 봐도 얼마나 황제의 지근거리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벼슬들은 황제랑 가까워질 수 있긴 하지만
국정농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관등이 그리 높지 않고 조정에서도 실권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조예도 조상이 이 벼슬만 가지곤 절대 사마의를 상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긴급 밸런스 패치에 들어간다.
명제가 병들어 눕자 조상을 침실로 들어오게 해 대장군 가절월 도독중외제군사 녹상서사에 임명하고,
태위 사마의과 함께 유조를 받들어 어린 주인을 보좌하게 했다.
- < 삼국지 위서 > 조상전 -
관직명이 복잡하니 이해를 돕기 위해
둘이 가지고 있는 관직의 결정적인 차이만 설명하자면,

[* 도독중외제군사, 녹상서사, 시중의 직함은 둘이 동일 ]
조상에게 사마의와 거의 비슷한 관직을 줘서 사마의의 권한을 반으로 쪼개먹게 하고,
거기에 조상한텐 ‘가절월’을 추가해줘서
권한상으론 조상이 사마의보다 우위를 점하는 형태를 가져가게 하였다.
[* 절(節)과 월(鉞)은 전시 또는 평시에 관리와 병사를 징벌(사형)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 중 가절월이 최고등급. 가절월은 하위 절(節)들을 징벌할 수 있다. ]
여담이지만 촉에서 이 가절월을 받아본 사람은 관우(공식)와 제갈량(비공식) 뿐이다.
가절월은 그냥 황제의 분신이란 소리다.
어떻게든 조상이 사마의의 맞상대가 될 수 있도록
조예가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했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빠르게 죽을 준비를 모두 마친 조예는
사마의를 불러 당부하는거까지 잊지 않는다.
명제(조예)가 사마의를 침실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사마의[宣帝]의 손을 잡고 조방[齊王]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뒷일을 맡기오. 내 어린 자식을 조상과 함께 잘 보필해 주길 바라오.
죽음을 겨우 견디며 그대를 기다렸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아무 여한이 없구려.”
사마의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이 날 명제가 가복전에서 붕어(崩御)하였다.
- < 삼국지 위서 > 명제기 + < 진서 > 선제기 -
이 대화가 서로 얼마나 진심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조예는 그렇게 사마의의 품속에서 감동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조방이 즉위한 뒤, 위나라는 조상과 사마의의 투 톱 체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조상은 불안하였다.
아무리 직위가 사마의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 하더라도,
착실하게 군공을 세워 올라온 사마의와
그냥 하루아침에 조씨라서 벼락출세한 자기가 어찌 같겠는가?
조상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조상은 아주 단순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조상은 10만의 병사로 촉나라 침공을 결정하게 된다.
너무 어이없지만 사실이다.
물론 이 얘기는 사마의의 귀에 곧장 들어갔고

사마의는 당연히 얼탱이가 없었다.
자신과 조진뿐만 아니라 조조마저도 실패한 게 한중공략인데
평생 궁궐에서만 일하고 야전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조상 따위가 한중을 치겠다고?
이건 뭐 다 같이 대규모 자살하러 가는 건가?
조상이 아무리 정적이라도 국력을 축내는건 사마의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마의도 진심을 다해 말리는데
“예전 무황제(조조)께서도 두 번이나 한중에 들어갔다 대패하였음을 군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한중의 길목[興平路勢]은 지극히 험한데 촉이 이미 이를 선점했으니
진군하여 뺐지 못하면 퇴로가 차단당해 필시 전군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책임을 어찌 감당하려 하는 것입니까?”
- < 한진춘추 > -

아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조상은 가절월을 이미 가지고 있는 대장군이었다.
고집을 부리면 어차피 위나라의 그 누구도 막을 권한이 없었다.
뭐... 이러라고 준 가절월은 아니었을 테지만...
등양, 이승 등은 조상이 공명을 세우게 하기 위해 그에게 촉을 정벌하도록 권했다.
사마의[宣帝]가 이를 반대했으나 막을 수 없었다.
- < 진서 > 선제기 -
그렇게 조상은 자신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마의도, 조조도 넘지 못한
그 한중을 정복하겠노라 부푼 꿈을 꾸며 낙곡으로 향했다.
물론 조상의 말대로 제갈량을 잃은 촉나라가 크게 위축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야전경험 0번따리 대장군 조상한테 망하기엔...
아직 촉나라엔 건실한 인재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연희 7년 봄(244년),
위나라의 대장군 조상이 병사[歩騎] 10여만을 거느리고
한중[漢川]으로 향하였는데 그 선봉이 이미 낙곡(駱谷)에 있었다.
이때 한중을 지키는 병사는 3만이 되지 못하여 여러 장수들이 크게 놀랐다.
- < 삼국지 촉서 > 왕평전 -
조상의 10만 대군이 넘실넘실 진령산맥을 넘고 있을 무렵,
3만의 병사 밖에 없던 한중의 장수들은 잠시 동요하였으나,

한중엔 차짬처럼 든~든~한 베테랑 야전사령관이 있었던 덕분에
이내 동요를 잠재우고 즉각 준비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왕평이 생각하기엔, 위군은 양동으로 공격해오고 있지만,
어차피 기산도 쪽의 곽회(②번)는 조상의 본대가 진령산맥을 넘을 때까지
단독으로 무도를 돌파하여 양평관 쪽으로 진격하지 못한다고 봤다.
자칫하면 그냥 꼴아박이 되거나 촉군이 후미를 끊으면 고립될 테니깐.
곽회쪽 군사는 수비하는 촉군을 좀 분산시키기 위한 어그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조상을 진령산맥에 가둬놓으면 되는 것이다.
왕평은 황금성에 주둔하여 낙곡도의 출구를 막고,
유민으로 하여금 흥세산에 올라 위군이 잘 보이도록 곳곳에 깃발을 꽂아서
허장성세로 위군을 교란시키게 했다.
촉군의 배치가 끝나고 조상이 도착하였다.
드디어 낙곡을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조상은 싱글벙글하며 출구쪽을 향했는데
출구은 왕평이 단단히 막고 있어 돌파할 수 없었고,
산 위에도 이미 곳곳에 촉군의 진영이 있어 산쪽으로 우회할 수도 없었다.
조상이 보기엔 마치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조상의 본대는 발이 묶여 버렸는데
문제는...


(진령산맥의 현재 모습)
조상은 진격도, 보급도, 퇴각도 할 수 없는 생지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정시 5년(244년),
조상이 장안에서 6-7만의 대군을 일으켜 낙곡(駱谷)으로 들어갔다.
관중의 백성과 저족, 강족이 군수품을 (낙곡으로) 대지 못해
소와 말, 노새와 나귀가 다수 죽었고 백성과 이민족이 도로에서 울부짖었다.
그렇게 수백리를 행군했는데 적이 산을 끼고 방비하자 진군할 수 없었다.
참군(參軍)인 양위가 조상을 위해 형세를 설명하고
급히 철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장차 패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등양이 이를 반대하여 조상의 면전에서 논쟁했는데 양위가 조상에게 말하였다.
“등양과 이승이 국가의 대사를 망치고 있으니 죽여야 합니다.”
조상이 이를 듣고 불쾌해 했다.
- < 삼국지 위서 > 조상전 -
하지만 조상이 불쾌해봐야 어쩔 것인가? 계속 갇혀있을 수는 없었다.
총지휘를 맡은 하후현도 JOT됨을 감지하고
일전에 사마의가 반대했던 내용을 예로 들으며 조상을 달래 퇴각하도록 결정한다.
하지만,
퇴각결정은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상태였다.

촉군의 본대가 결국 도착해버린 것이다.
이미 샛길로 위군의 퇴로를 막은 비의는 조상의 군대를 천천히 요리하기 시작한다.
비의가 진병하여 고갯길 3곳을 점거하고 조상의 퇴로를 끊자,
조상은 요해지마다 촉군과 힘껏 싸워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소, 말과 군량을 수송하던 자들은 거의가 죽거나 실종되어 강족과 호인들이 원망했고,
관서지방[關右]이 텅 빌 지경에 이르렀다.
- < 한진춘추 > -
곽회가 판세를 보며 군사를 대기시켜놓은 것이 아니었다면
위나라의 원정군이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던 참혹한 패배였다.
그렇게 촉군을 깔보다 처참히 패배한 조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무능과 고집을 반성하며 책임을 지었을까?
조상은 이 일을 계기로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 군공과 능력으론 절대 사마의를 이길 수 없겠구나...’
‘그냥 사마의를 실각시키자.’
정밀이 계책을 내어놓았는데, 조상으로 하여금 천자에 고해
사마의[宣帝]를 태부(太傅)로 임명하는 조서를 내리도록 했다.
겉으로는 사마의를 존중하는 것이나,
실제로는 국가의 주 업무[尙書之奏事]가 자신에게 먼저 거치도록 함으로써
그 일의 경중(輕重)을 제어하고자 함이었다.
- < 삼국지 위서 > 조상전 -
외관상으로는 승진이지만 실질적 권한은 아무것도 없는 태부로 사마의를 임명하고,
당초 조상은 사마의[宣帝]의 나이와 덕이 높아 늘 부친을 대하듯 섬겼기에 감히 전횡하지 못했다.
하안 등이 조상에게 말하길, 권세가 무거워지면 이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였다.
이에 하안, 등양, 정밀을 상서(尙書)로 삼고 하안에게 관리임용을 관장케 하고,
필궤를 사례교위, 이승을 하남윤에 임명하여, 업무가 전반적으로 사마의를 거치는 일이 드물어졌다.
- < 삼국지 위서 > 조상전 -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고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물론 조상은 사마의를 어떻게 믿냐며
이건 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뭐... 조상의 말대로 사마의가 이 때 이미 역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님 이 이후에 생긴건지, 뭐가 진실인지는 솔직히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건,
지금 조상이 하고 있는 짓은
한때 제갈량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늙은 호랑이를
굉장히 자극하고 있음은 분명하였다.

다음 편, ‘고평릉 사변’으로 이어집니다.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 [ 제17편: 꿀물과 호랑이(3부) ]
- [ 제18편: 사마의와 조상, 그리고 흥세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