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볼 때마다 흐뭇)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응원해주신 횐님들 너무 감사하다!
최종편. 기억될 성군, 고려 현종
고려는 마침내 제국의 군대를 물리쳤다.
허나 기뻐하기엔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격전의 함성은 압록강 줄기를 따라
무겁게 흘러가며 잦아들었다.
강물은 무심히 대양으로 흘렀다.
모두의 환희 가운데서 현종은 생각에 잠겼다.
만백성에게 고난을 짊어지우면서
고려의 아들들을 전장으로 보내면서
고려의 딸들을 적병의 전리품으로 내몰면서
고려의 자식들을 고아로 만들면서
기어코 이 모든 참담한 것들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어낸 이 승리가 진정한 승리인가.
현종은 붓을 들었다.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손짓엔 막힘이 없었다.
고려의 사신은 현종의 문서를 들고 요나라로 향했다.
그 안에는 요나라에 대한 사대의 뜻이 담겨있었다.
요나라도 긴 전쟁으로 군사적 동력을 잃은 상황,
승자와 패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양국은
별다른 의견 없이 조용히 이 타협안에 합의했다.
서로를 향한 더 이상의 적대는
양측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현종과 성종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력 소모가 극심한 거란의 곳곳에서 반란이 일었다.
거란은 더 이상 대외정벌에 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유목 세계의 평원에 의미심장한 균열이 일었다.
주변국들은 동요했다.
송과 요 사이에서 택일을 강요받던 주변국들은
고려라는 새로운 대안을 선택했다.
동북아시아에 솥발의 형국이 완성되었다.
120년에 달하는 고려 최전성기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당대, 후대 지식인들이 이 시기를 논할 때면
빠뜨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
태평성대(太平聖代)
현종의 치세에 그는 많은 개혁을 시도하였고
모두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종의 뒤를 이어 현종의 세 아들이 나란히 즉위했다.
이들은 형제간의 권력투쟁을 일절 하지 않았다.
세 형제의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후대의 유학자들에게도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칭송받았다.
그 중 귀주대첩이 있던 해에 태어난 셋째 아들이
두 형의 뒤를 이어 고려의 국왕으로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해동천자, 고려 문종이다.
문종의 고려가 한국사의 가장 눈부신 때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련을 극복하며 묵묵히 토대를 마련한
현종 치세의 개혁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종의 무덤 선릉. 개성에 위치해있다.>
이 글에 그의 치적을 적으라면 기쁘게 적을 수 있지만
암기만을 강요하는 역사교육에 지쳤던 횐님들에겐
자칫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적지 않았습니다.
딱딱한 교과서 같은 글은 충분히 많이 보셨을테니까요.
그리고 감히 부족한 지식에도
이 시리즈를 쓰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첫 편을 업로드하고서도 삭제를 진지하게 고민했었지만,
다행히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용기가 났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현종의 위대한 업적과 재미있는 일화들은
역사를 좋아하시는 다른 횐님들이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른 횐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모든 편이 침하하로 올라갔네요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싶습니다
좋게 봐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강감찬이 표문을 올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며
사흘에 한 번만 조회에 나오도록 하였다.’
《고려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