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성군, 고려 현종 1편 [늙은 신하의 고집]
들어가기에 앞서...
횐님들 안녕하세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입니다.
우리 역사에 수많은 성군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고려 현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프롤로그격으로 배경부터 설명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6편까지 계획중이지만 오락가락 기간이라.,.
6편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여..)
1편, 늙은 신하의 고집
10세기 말 고려 조정,
왕과 신하들이 모인 이 곳엔 열띤 토론이 오갔다.
“항복론” 그리고 “할지론”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강력한 군세를 이끌고 침입하여
전방 거점을 점령, 청천강 도하를 앞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겁에 질린 신하들은 일단 항복하자는 ‘항복론’
항복만으로는 저들이 만족하지 않으니 땅도 할양하자는 ‘할지론’을
두고 의견이 대립하였다.
그렇다. 계속 싸우자는 의견은 애초에 논의대상도 아니었다.
할지론, 이에 따르면 평양을 포함한 자비령 이북의 모든 땅을 내줘야한다.
대세는 할지론으로 기울어 신하들은 서경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준 뒤,
남은 곡식은 태우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상대로 승전 소식이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장 소손녕으로부터 회담 요청이 도착했다.
이에 고려 성종은 신하들에게 하문한다.
“누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언변으로 적병을 물리치고 만대의 공을 세우겠는가?”
혼란과 두려움에 물든 신하들은 아무도 응답하지 못하였다.
이때 침묵을 깨고 한 늙은 신하가 일어섰다.
수명을 겨우 5년 남긴 내사시랑 서희였다.
“신이 비록 불민하긴 하나 감히 왕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전부터 항복론과 할지론 모두에 반대하던 서희는
적장 소손녕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개경으로 빠르게 진격할 길을 두고 굳이 규모가 작은 거점을 공격하는 점
-첫 패전 이후 거듭하여 회담을 요청하는 점
-신하들을 벌벌 떨게한 ‘80만 대군’ 소문이 사실이라면 위의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 점
따라서 서희는 소손녕이 개경으로 침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회담장에 도착한 서희는 소손녕과의 오랜 기싸움(의전 문제) 끝에
소손녕과의 동등한 의전으로 회담을 시작한다.
(흔히들 ‘서희의 외교담판’은 아주 똑똑한 서희가 멍청한 소손녕을 상대로
엄청난 말빨로 이뤄낸 성과라고 알고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모습과 거리가 멀다.
아무리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라고 하여도
회담장에 나오는 외교관 개개인은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며
소손녕도 알려진 것처럼 그리 멍청한 작자는 아니었다.)
중원까지 위협하는 요나라에서 그리 멍청한 인물을 보낼리 없다.
국수주의적 해석을 배제하고 실제 이 담판에 대해 기술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소손녕은 말한다.
1.고려는 신라 출신 인물이 세운 나라니 신라를 계승했다.
2.거란은 발해를 멸하고 세워졌으니 고구려의 영역은 우리 것이다.
3.그러니 현 고려가 차지하고있는 영토는 옛 고구려의 땅이니 포기하라.
4.바다를 두고 멀리 떨어진 송나라보다 가까이 위치한 우리와 친교하라.
서희는 답했다.
1.고려는 이름부터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그 근거로 평양이 수도다.
(실제 고려는 개경을 행정수도, 평양을 군사수도로 하여 왕들이 일정 기간은 평양에 머무르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
2.너희 수도도 우리 고구려 땅인데,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오히려 거란이다.
3.우리야말로 거란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중간의 여진족이 그걸 방해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4.너희들이 대국으로서 중간의 여진을 내몰아주면 우리가 기쁘게 너희를 섬기겠다.
회담장에서 서희는 적의 군세를 엿보았다.
당장엔 파악이 쉽진 않아도, 80만 대군은 확실히 아닌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손녕은 분명히 고려를 침공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회담은 두 인물의 냉철한 계산에 따라 마무리 되었다.
서희가 얻은 것은 아래와 같다.
-고구려 계승론을 주장함으로서 소손녕의 침공 명분을 약화시킴
-고려와 거란 사이의 여진족을 토벌할 명분을 얻음(강동 6주)
(거란의 용인 없이 군사를 일으키면 거란에게 전쟁 명분을 주는 꼴)
-형식적으로 거란에게 조공관계를 약속함으로 거란의 불만을 잠재움
소손녕이 얻은 것은 아래와 같다.
-강동 6주는 애초에 거란 소유가 아님.
-가진 적도 없는 땅을 ‘하사’함으로서 상국으로서 은혜를 베풂
-고려는 여진족을 절대 토벌 못할 것
-고려의 조공 약속를 받음으로서 황제에게 떳떳하게 돌아갈 수 있음.
서희는 회담을 마무리하고 개경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히려 회담을 하러 가는 길보다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서희의 진정한 가치는
외교 담판이 아닌 그 이후 보여준 행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개경으로 돌아온 서희는 강동 6주를 실질적인 고려의 영향력 아래에 두어
분명히 다가올 침공에 대비해야함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소손녕의 유일한 오판은 바로
고려가 여진족을 실제로 토벌할거라 생각치 못했다는 것이다.
고려가 강동의 6주를 실제로 영향력 아래에 두자 거란 조정이 당황하는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엿볼 수 있다.
구차하게 강동 6주를 돌려달라는 서신을 보내왔던 것이다.
이미 강동 6주의 요새화에 성공한 고려는 이 요청을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서희가 얻어오고, 서희가 요새화 시킨 이 강동 6주가
앞으로 고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지는 6개의 주 중의 하나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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