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없다(스포일러)
-포스터가 인테리어 소품으로까지 각광받을 정도인 두 배우의 우월한 비주얼과 달리,막상 이 영화를 보면 진짜 이런 상찌질이들이 없습니다.특히 합의금을 들고 튄 흥기를 다시 만나서 잡기 위해 도철이 뛰는 장면을 보면,못난 모습도 가감없이 담아냅니다.
-특히 훗날 뽀빠이와 성기훈으로 계보가 이어진,이정재의 못난 매력이 폭발합니다.
흥기(이정재)는 정말 병국(이범수) 말대로 미워 죽겠고,도철(정우성)말대로 만나고부터 되는 일이 없는데,보기만 하면 미워할수 없고 웃음이 나옵니다.또 어떤 개노답짓을 할지 기대감이 폭주하고 그걸 실현함으로서 빅웃음을 줍니다.합의금을 삥땅치고,미미의 계약금을 바라보는 눈빛 등에서요.또한 쓸데없이 화려한 어휘를 구사하고 비유가 풍부한 대사도 너무 웃깁니다.
-흥기는 맨날 돈타령을 하기에 현실주의적인 속물같지만,사실 진짜로 헛바람 든 건 흥기입니다.아는 것도,배운 것도 없이 이해받지도 못할 아이템을 아무렇게나 걸쳐서 마구 벌려 놓으니까요.연예 관계자들 파티에서 매니저라고 자처해놓고 끼지도 못하고,결국 안 맞는다던 포로노씨디를 다리에서 파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그렇게 건물을 사는 데 집착하지만 맨날 얼마를 벌어서 산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계획이라곤 없습니다.심지어 조립형 건물 장난감이나 맞추고 있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운동선수인 듯하지만,사실 스스로 몸으로 부딪히며,평생을 노력한 시련을 겪은 도철이야말로 너무 현실의 무게를 몸으로 맞아 본 사람입니다.도철의 목표는 그래서 오히려 간결하고 단순합니다.링에서 이겨서 증명하는 거죠.자신이 평생 해온게 틀리지 않다고요.
-같이 나쁜 짓 하고 소주 빨고 헤어졌어도, 듬직하고 진지한 도철에게는 자신의 꿈이 허황된 걸까라고 고민에 빠진 미미가 오며 자신이 허황된 길을 가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상기시키고,반면 유쾌하고 헛바람 들어 보이는 흥기에게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병국의 위협이 다가옵니다.
-둘의 이런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 중 하나가 흥기가 달려가는 도철을 옆에서 차를 타고 권투 해설을 흉내내며 쫓아가는 장면입니다.흥기의 어조는 맛깔지지만,예시로 드는 게 그냥 가장 유명한 타이슨이고 권투 용어도 잘 모릅니다.서로를 잘 모름에도 계속 들러붙고 맞춰주는 둘의 기묘한 우정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밀리고 밀려서 보석상을 털었을때,도철과 흥기는 체념한 듯 일부러 더 흥이 나는 척 노래를 크게 부르며 도망칩니다.그리고 둘이 말했던 동해 바캉스를 졸지에 갔을 때,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사회의 트랙에서 이탈한 김에 아예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체념입니다.그리고 아이들과 순수하게 소년으로 돌아가 축구를 하던 중,영 아닌 곳으로 공을 몰고 가서 바다에 차버립니다.영영 이탈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지요.하지만 아이가 바다에서 공을 주워서 다시 가져오는 모습을 보고,영영 도피는 못한다는 씁쓸함을 안고 돌아가자고 합니다.
-마지막에 현실적인 도철이 굴복하는 것은 현실의 벽,경기에서 졌다는 그보다 냉정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반면 계속 헛바람이 들었고 엄마에게 빌붙던 흥기는 이제야 방황을 멈추고 현실을 직시해 엄마에게 돈을 주고 이부 여동생에게 오빠다운 말을 합니다.이 와중에 흥기는 시간상 도철의 경기를 봤을 리도 없지만,봤다,너 멋있엇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괴롭힌 도철이 울 때 기댈 곳이 되어줍니다.
-주크박스처럼 선곡이 풍성합니다.<비트>때랑 달리 허락을 잘 받아두셔서 재개봉판에서도 유명 곡들이 그대로 잘 나옵니다.뿐만 아니라 뮤지컬 넘버처럼, 노래 자체가 플롯 역할을 합니다.<렛츠 트위스트 어게인>은 도철과 흥기가 함께 일해서 돈을 벌고 멋지게 옷을 해입고 함께 걸어가며 파트너십을 쌓을 때도 나오지만, 나중에 또 사기치고 있는 흥기를 도철이 죽자 쫓아갈 때도 나오며 둘의 대립은 사실상 장난이라는 걸 표현하죠.<러브 포션 넘버 나인>은 도철이 미미(한고은)와 사랑에 빠질 때 두 번 반복되지만,이후 도철과 흥기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축구할 때,흥기와 옥상에서 함께할때 다시 나옵니다.미미가 대체 누구 편을 드는 거냐고 화냈듯이, 결국 도철에게 진짜 동반자는 흥기라는 것이죠.
-미미의 계약금을 세고 있는 흥기를 줘패고 절교를 선언했을 때 뒷골목에서 도철은 빛을 받고 흥기는 그림자 속에 있지만,정작 전등빛 밑에 함께 있던 미미와도 싸우고 갈라집니다.그리고 마지막의 둘은 함께 떠오르는 햇빛에 의해 함께 그림자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