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강홍:사라진 밀서(스포일러)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로 힙합이 사용되는데,감독은 다르지만 예전에 오우삼이 삼국지 게임 홍보용으로 만든 단편 <천류>에서
사극임에도 힙합 음악으로 젊고 활력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기억이 났다.밀실과 사극이라는 고풍스러운 장르에서 오히려 환기 역할인 음악이 꽹꽹거리는 소리로 계속 보이는 코미디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황후화>는 거대한 황실이라는 체제 앞에서는 인륜을 저버리고 역모를 꾀하는 미친 짓을 벌여도 없던 것처럼 깔끔히 청소될 수 있다는 결말에서 압도적 무력감을 주었다.반면 이 영화는 보잘것없고 신분이 낮은 자들이 결국 진회를 죽이지 못했음에도,만세에 만강홍을 전하고 진회의 이름이 영원히 오욕으로 남게 만들며 전하고 남기면 세상은 다르게 기억한다는 희망으로 끝난다.
<황후화>에서 각 시진을 알리는 소리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똑같이 울린다.무슨 일이 있어도 황실은 어차피 돌아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초반부터 종을 쳐야 할 병사가 시간을 조작했기에 사건이 터졌다. 장대는 장난스럽고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며,요금은 원래 계획에 없지만 합류해 도움이 되었고,마부 역시 딸에게 친부라 말을 못하는 규칙을 벗어난 인물이다.
진회가 스스로 악비의 유언을 전하고 그 이름을 드높이는 상황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치를 주었는데,알고 보니 대역이라는 반전으로 <황후화>처럼 무력감을 주는 결말이 날 수도 있건만,오히려 대역 진회의 시신을 진회와 함께 묶어 어차피 대역으로 세운 이상 하나로 취급받을 것이니 더러운 이름을 만세토록 취하게 만들며 끝낸다.심지어 그 대역조차 진회에게 망신을 주는 만강홍을 열심히 외우고 지워서 악비의 명예를 지켰건만 실제 진회는 훨씬 비루한 인물이었다는 심판을 내린다.
-두 주인공은 버디로서 궁합이 좋다.철 없고 무능해 보이는 인물은 조카지만 나이가 많고,충실한 군인으로 보이는 젊은 인물이 오히려 외숙이다.이미 나이와 촌수가 뒤집힌 데서부터 삐걱거리는 재미가 있으며,결국 삼촌을 키운 조카는 비겁했던 삼촌에게 대의를 전하고 떠나며 나잇값을 하게 된다.
-밀서라는 소품은 분명 문서로 시작했지만 진행되면 될수록 그걸 읽은 사람 자체,심지어 벽에 쓰는 것으로 밀서라는 개념이 확장되는 것이 묘미다.
-두 총관은 밀서 자체는 없애고 싶어하지만,그만큼 밀서의 내용은 알고자 한다.이 세 명의 관료는 "밀서를 없애고 진회를 무사히 데려간다"는 기조는 같지만 그 밑에는 서로의 약점을 잡기 위한 음해가 난무한다. 서로 받은 패와 문서를 통해 우열이 쉼없이 뒤집히는 부분도 묘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물들의 코미디도 생활감이 있고 리얼하다.
-손균을 포함한 장교들도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제거하려 한다.실제로 손균의 야심이 제법 큰 동력이 되어 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손균이 끝끝내 장대마저 배신한 것으로 관객을 속이기도 좋았다.
-제한된 공간이 주는 세트의 묘미와 자연광의 변화로 시간의 변화를 체감시키는 점,가상 인물들이 실존 인물을 심판한다는 데서 한국 사극 <올빼미>와 한 결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