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시즌 게임패스가 곧 종료됩니다!
요즘 방장이 하스스톤을 열심히 하길래, 간만에 하스스톤을 하다 문뜩 사는 게 되게 게임패스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퀘스트를 달성하면 경험치를 주고 일정 경험치가 채워지면 레벨업을 하고, 레벨업을 하면 보상을 주는 게임패스 같은 삶.
초 중 고를 졸업하면 졸업장을 주고, 수능을 보고 대학교를 가고, 중간에 이벤트로 군대도 갔다 오고, 그후에도 취업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방향적인 삶.
돈이 있어 게임패스를 업그레이드하면 기존의 게임패스보다 더 많은 보상이 있다는 것까지 우리네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저는 게임패스에 앞으로의 퀘스트 목록과 보상이 쭉 적혀있는 걸 보면 남은 경험치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과 이걸 언제 다 채우나 하는 막막함이 공존하곤 합니다. 방향성을 제시해주거나, 보상을 받기 위해 하던 게임패스가 숙제가 되어 되려 하기 싫어지고, 답답했던 경험은 공감되는 분들도 꽤 있으실겁니다.
올해의 저는 퀘스트를 별로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연초부터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가고자 했던 회사에 최종 면접을 떨어지고 얼레벌레 대학원 졸업이라는 퀘스트를 하나 달성했지만, 여름 이후로는 백수의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전공한 분야의 취업시장이 얼어있어 그런지 하반기에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네요.
주변에서 하나 둘 다음 퀘스트 달성하고 레벨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급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밤마다 자려 누워있다가 괜시리 불편한 마음에 책상에 앉아 뭐라도 괜히 딸깍거려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마음속엔 앞으로의 대한 걱정과 불안이 있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가슴에 돌이라도 하나 올라가 있는 거마냥 답답해집니다. 그땐 저도 모르게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하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봐도 달라지는 건 없더군요. 게임패스에 남은 경험치바에 언젠가부터 달라지지 않는 경험치량을 보면 어떻게 퀘스트를 깨지, 남들은 어떻게 이걸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모두들 대단히 열심히 살고 계시는 군요. 멋지십니다.
이렇게 있다간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 같아, 큰 결심을 했습니다. 퀘스트? 안 깨렵니다. 레벨업? 안하렵니다. 되게 무책임하게 들리셨을 수도 있지만, 취업을 포기한 것도, 앞으로의 삶을 대충 살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잠깐 게임패스를 안해보려고 합니다. 뭔가 돌이켜봤을 때 되게 레벨업을 위한 퀘스트만 해왔습니다. 입시를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대학 생활등등.
제가 하고 싶었던 건 한장 한장 상대방의 플레이를 막아가며 천천히 플레이 하는 컨트롤 덱이었는데, 게임패스 퀘스트를 빨리 깨기 위해 어그로 덱만 사용했거든요. 그게 다음 보상을 얻기 위해, 또 빠른 레벨업을 위해 그랬던 거지만 결국 재미도 없고 앞으로의 목표와 의미도 퇴색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젠 게임패스 퀘스트를 안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전투의 함성 카드 50장 내기’ 퀘스트가 있어도 ‘죽음의 메아리’와 주문으로 꽉꽉 채워서 게임을 할꺼구요. 어그로 덱이라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정규전 5번하기’도 컨트롤 덱으로 천천히 플레이 할껍니다. 하스스톤으로 비유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 전공이랑 상관없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행도 가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겠다 이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산지 조금 됐습니다. 연애를 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던 그 언젠가와 달리, 요즘은 퍽 평안합니다. 혼술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유튜브 뮤직 통해 한동안 안 들었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추억에 잠겨보기도, 새로운 노래를 들으며 플리를 채워가는 재미도 느끼며 지냅니다. 언제까지 이 안정감과 평안이 유지될 지 모르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그때를 생각하며 불안에 떨기보단 지금을 충실히 즐겨보려 합니다.
이번 강날편 소식이 올라왔을 때, 반가웠습니다. 아직 불안과 걱정에 낮보단 밤이 더 익숙하던 시절. 잠이 오지 않아 기포처럼 떠오르는 잡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고, 머릿속 목장의 양들 수만 많아지던 그때에 저를 재워주던 건 왕날편이었어요. 누군가의 사연과, 누군가의 고민과, 누군가의 걱정들이 방장의 목소리를 통해 넘어오면 별거 아닌 일들이 되고, 머릿속 생각들도 같이 갈아앉아지곤 했습니다. 묘하게 바닷속에 있는 기분이 들며 안정감도 들었습니다. 제 사연이 채택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 받은 안정을 이제 돌려드리고 싶어 긴 글을 써봅니다.
벌써 올해가 끝났습니다. 새로운 해가 오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게임이 그렇듯 시즌이 새로 시작되면 새로운 게임패스가 시작됩니다. 올해 있었던 게임패스를 얼마나 채우셨나요? 또 이제껏 살아온 게임패스는 많이 채우셨나요? 많이들 채우셨다면 다행입니다. 저처럼 많이 못 채우신 분들도 괜찮습니다. 새 해, 새 시즌은 모두가 처음부터 시작하거든요.
모두 게임패스 달성도가 다른 건 어쩔 수 없어요. 받는 퀘스트도 다르고 그에 따라 받는 경험치도 다르거든요. 실제 게임에서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같은 퀘스트를 받진 않거든요. 자기만의 게임패스가 있습니다. 저처럼 더 이상 퀘스트가 지겹고 게임패스가 싫어지셨어도 좋습니다. 그럴 땐 ’죽음의 메아리’ 퀘스트가 나올 땐 ‘전투의 함성’으로 덱을 만들어보기도, ‘하수인 50마리 내기’ 퀘스트가 나올 땐 주문냥꾼 덱을 돌려보기도 합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다른 퀘스트가 달성될 때가 있더라구요. 그것도 경험치를 주고 레벨업되고 보상을 주는 건 똑같답니다. 그거야 말로 ‘오히려 좋아’ 아닐까요?
그럼 이만 긴글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다들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가 소원의 돌에 항상 ‘행복해지기’ 라는 소원을 빌거든요? 한번쯤 소원을 빌때, 침하하분들의 행복도 같이 빌겠습니다.
2023년 수고 하셨고, 2024년 새해, 새 시즌 모두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