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와이 슌지 - 월리스의 인어


“나는 ‘인어는 무엇인가?’라는 과학적 얘기로 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에서 이와이 슈운지는 말했다.
영화 『러브레터』의 감성을 담은 인어와 인간의 사랑 얘기를 써달라는 영화 시나리오 의뢰에 그는 좀처럼 사랑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인어를 멋대로 그려내서 멋대로 사랑하고 하는 이야기를 인간이 과연 쓸 수 있는 건가?’라고 자신에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은 인어를 이해해야 했다.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그려낸 세계에서는 인어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 세계는 물론 소설이니까.
오래된 문헌을 들춰내 듯 그럴듯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모두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속삭인다.
인어는 정말 있습니까?
인어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어는 누구고, 인간은 누구입니까?
돌고래가 헤엄치는 파란 바다에서 하얀 설원이 펼쳐지는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영화 같은, 그러나 도저히 영화화하지 못한 인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목차
1권
007 프롤로그
021 1장 _ 바다의 인간
181 2장 _ 친족
2권
007 3장 _ 론로이
131 4장 _ 인어
223 에필로그
“음, 인간은 언어가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생물이라면 지능 또한 높을 거라고 단정하고는, 고릴라나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기도 하지요.”
“그런 연구를 부정적으로 보시나요?”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침팬지가 있다면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침팬지가 인간의 지능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하는 건 잘못입니다. 그런 침팬지라면 인간보다 위대한 겁니다. 어쨌든 침팬지의 언어를 마스터한 인간은 현재 없으니까.”
“확실히 그렇네요.”
“언어가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나라가 바뀌면 말도 변하잖아요. 당연한 거지만, 말이 바뀌면 커뮤니케이션도 단절되죠. 세계 곳곳을 다녀봤으니까 몸으로 느꼈겠죠?”
“말 때문에 곤혹스러운 적은 종종 있었죠.”
“즉 말이란 것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다. 아주 불편한, 초보 단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뿐이지요. 따라서 다른 동물은 언어라는 표현 수단을 일부러 선택하지 않은 겁니다.”
_1권 47쪽
빌리가 한참 떠오르지 않자 제시는 돌고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얘들아, 빌리를 데려와! 알았지!”
돌고래들이 차례차례 바다로 잠수했다. 하지만 곧 돌아왔다. 뭔가 무서워하는 거야. 상어와는 또 다르다. 낯선 것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바다에 뛰어들어도 위험하진 않다.
_1권 103쪽
"빌리의 방에 남은 제시는 혼자서 잠시 밖을 응시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는 안 된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기, 빌리…….”
빌리가 이불을 말고 있어서 제시에게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빌리도 아까부터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빌리, 당신, 바다에서 뭔가를 만났지요?”
“……."
빌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_1권 109쪽
“…결론을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누구인지 결국 잘 모른다는 거야. 겨우 화석 몇 개 발견된 것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공백. 우린 이것을 흔히 ‘미싱링크’라고 부르지. 푸르가토리우스에서 현재의 우리까지, 도대체 어떤 진화와 역사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가? 프로콘술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프리카누스까지 그 기간 동안 우리 조상은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는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프리카누스에서 현재의 인간까지 어떤 역사를 더듬어왔는가? 그들은 정말로 우리 조상인가? 미싱링크는 도처에 널렸어. 오히려 모든 게 미싱링크인데, 중간중간 몇몇 화석이 끼어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따라서 세계의 고고학자는 아예 제멋대로 자기 주장을 하고 있지. 어쩔 수 없어. 증거가 없으니까. 자네도 뭔가 주장해보면 어때? 그렇지, 자네에겐 ‘가이바라설’이 있었지. 침팬지는 진화한 인간이라고 말이야.”
_1권 256쪽
두 사람은 다시 고조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가볍게 키스만 해도 주위에 무중력의 물방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랑 사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야.”
두 사람은 물방울을 신경 쓰면서 몇 번이나 키스했다.
_2권 29쪽
“인간은 지상에 콜로니를 건설해 자연계의 혹독한 환경에서 약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어. 그러나 인어에게는 안전한 곳이 없어. 바다의 혹독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바닷속에서는 인간처럼 종족을 퍼뜨릴 수 없을 거야. 결국 수가 격감하자 인어는 살아남기 위해 뭔가 새롭게 진화해야만 했지.”
_2권 144쪽
빌리는 천연덕스럽게 한스에게 배를 한 척 빌렸다. 한스가 키잡이를 자청했지만, 빌리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번 임무는 극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도 모르고 한스는 사양하지 말라며 끝까지 달라붙었다. 심지어 알렉산더라는 현지 어부까지 데리고서. 알렉산더는 제시를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아름답구나. 고래한테 사랑받겠어.”
_2권 169쪽
그녀는 여기까지 와서 이 얼음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것일까. 인어의 강인한 심장은 이런 상태에서도 뛰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 있던 히소카를 부른 것이다.
히소카는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과학자의 하찮은 호기심이 이 인어를 100년 동안이나 물속에 감금하는 잔혹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인어는 히소카를 바라봤다. 투명한 눈동자는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친구를 만난 기쁨으로 가득했다.
_2권 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