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와이 슌지 - 쓰레기통 극장

일본 대중문화 잡지 〈다빈치〉에 1996년 5월부터 1997년까지 8월까지 연재한 이와이 슌지의 엉뚱 발랄한 영화 에세이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와이 슌지는 여전히 어떤 제목이었는지도 모르는, 잘못 시청한 영화까지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괴짜 영화광.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괴수 영화를 챙겨 보던 그의 어린 시절과, 주머니 탈탈 털어서 마지막 남은 지폐 한 장까지 필름으로 맞바꿔 영화를 만들던 대학 시절,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 〈피크닉〉,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을 만들던 영화감독 시절의 이야기까지 ‘약방에 감초’처럼 이 책에 담겨 있다.
그의 팬이라면 더없이 반가운 작품!
이와이 슌지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세계는 풍요롭다. 희귀한 작품도 그 자체로 애정과 경의가 담겨 있으며, 그만큼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즐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면 취지이겠지만, 쫀쫀한 평론가들은 이런 영화를 절대로 소개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쫀쫀한 평론가들, 말하자면 매서운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논하는 평론가들은 절대로 소개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풍요로운 영화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부딪히고 밟히다가 아주 멋진 영화를 만들게 된 이가 바로 이와이 슌지다. (실제로 버스 바퀴에 발이 밟힌 것을 계기로 영화 〈러브레터〉가 탄생했다.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그런 그의 글에서는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자는 개구진 응원과 동료애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그는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어쩌면 ‘영원히 모른다’라는 게 가장 가까운 정답 같이 느껴진다.
목차
1 드라큘라
2 환상의 시가전
3 시네마 천국
4 드림차일드
5 로렌조 오일
6 혹성탈출
7 생쥐와 인간
8 불가사리
9 우주전쟁
10 킹콩
11 위험한 정사
12 작은 사랑의 멜로디
13 양들의 침묵
14 아버지가 있었다
15 아크리
16 최종회
후기
난 영화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괴수는 좋아했다.
그렇지만 영화 속의 괴수라고 해서 ‘고질라’ 같은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커다란 전갈이나 개미 같은 녀석들 또는 다시 살아난 티라노사우루스 정도의 녀석들이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인형을 한 컷 한 컷 움직이는 어색한 동작이란...(이 기술을 다이나메이션이라고 부른다. 다이너소어(dinosaur, 공룡)와 애니메이션(animation, 만화영화)을 합친 단어다). 어린 마음에도 산통 깬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러브 스토리보다는 괴수 영화가 나았다.
___p.8 ‘드라큘라’ 중
음, 이야기는 제대로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 자체는 이상하게 기억난다. 아마 영화를 볼 때도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기억에는 남아 있다. 이런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볼 때는 상당히 괜찮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전혀 기억나지 않는 영화도 많다. 볼 때는 괜찮았지만 나중에 전혀 기억나지 않는 영화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 이상한 야구 영화, 그중 어느 쪽이 내게 더 귀중한 영화일까?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___p.18 ‘환상의 시가전’ 중
그런 라스트신이었다. 상당히 뒷맛이 쓴 영화였다.
그러나 그 라스트신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산을 쓰고 외줄을 타는 금발 소녀를 청년 장교가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는 흔들리는 망원렌즈로 맨발의 발톱 끝부터 하얀 원피스 자락, 허리, 가슴 언저리로 이동하여 목덜미에서 얼굴의 옆모습을 잡고, 마지막으로 관자놀이에서 멈춘다. 한편 장교는 발터제의 피스톨을 쥐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는 독일군이라는 얘기가 된다. 다시 되돌아온 카메라는 소녀를 담고, 총성과 스톱모션으로 끝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게 라스트신이었을 것이다.
___p.21 ‘환상의 시가전’ 중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나도 픽션을 쓰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논픽션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어차피 픽션이란 논픽션의 이미테이션(모방) 같은 것 아닌가. 이런 삐뚤어진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논픽션도 겉보기에는 우리 작업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쪽은 리얼한 것이 재료다.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 채소인 셈이다. 원래 논픽션을 번역하면 ‘논(non)’은 ‘...이 아니다’, ‘픽션(fiction)’은 ‘만든 이야기’인데, 이 둘을 합치면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뜻이 된다. 이쪽이 조용히 채소를 팔고 있는데, 그 옆에서 ‘우리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치는 격이다.
___p.50 ‘로렌조 오일’ 중
“이 영화에서 감독님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요?”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 이거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곤란한 질문이다. 특히 영화를 완성하고 시사회를 할 즈음에는 편집 작업이 끝난 직후라서 머리도 완전히 기술자 마인드가 되어 있다. 신경은 온통 프린트의 인화 상태라든지 음향의 믹싱 밸런스 같은 데 쏠려 있다. 그럴 때 쏟아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뭡니까?”라는 질문에는 몽유병 환자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 날씨가 아니라 신(scene) 125의 화면이 좀 지나치게 밝고 어쩌고 하는 것이다.
___p.86 ‘불가사리’ 중
영화의 세계는 풍요롭다. 희귀한 작품도 그 자체로 애정과 경의가 담겨 있으며, 그만큼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즐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면 취지이겠지만, 쫀쫀한 평론가들은 이런 영화를 절대로 소개해주지 않는다. 〈육체의 문〉에 대해 ‘마지막이 웃긴다. 한번 볼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써주는 평론가는 없다. 뭔가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어도 ‘결말이 조금 부족해서 팍 와닿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써버린다.
결말이 팍 와닿지 않는 영화를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___p.92 ‘불가사리’ 중
오즈의 영화 스토리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딸에게 선을 주선해 어떻게든 결혼시킨 밤, 류 지슈는 왠지 쓸쓸하다.’ 이렇게까지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작품이 비슷하거나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 또한 기묘한 점이다. 비슷한 얘기를 몇 번이나 다시 찍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결국 모두 또 보고 만다. 어쩐지 최근의 팝 경향 같다. 똑같은 것을 만들면 잘되는 것도 없고, 나빠지는 것도 없다. 안정된 생산, 그것이 오즈다. 나는 오즈 야스지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단 하나의 패턴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에 경외심마저 느낀다.
오즈 야스지로는 어쩌면 딸을 시집보내는 순간에만 인생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___p.162 ‘아버지가 있었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