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임을 증명하기!

지구에는 대척점(지구 반대편)과 온도와 기압이 완벽히 같은 지점이 항상 존재한다.
위 문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언젠가는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지만 항상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연은 신비롭기 때문에 어떤 놀라운 기상현상에 의해 그럴지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 문장은 사실이고, 기상현상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이 증명 가능합니다.
바로 수학으로 말이죠.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그 수학입니다.
나가지 말고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솔직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온도계와 기압계를 들고 직접 발로 뛰지 않고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려서 신비로운 기상현상을 증명할 수 있다니.
아주 약간의 수학만을 이용해서 설명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부분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무님이 궁금해하셨던 독일 수학자의 기분을 아주 약간은 느껴볼 수 있을지도요.
그럼 증명해봅시다.

보르수크-울람 정리
위 사진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보르수크-울람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 카롤 보르수크입니다.
두발상태만 보아도 그가 천재 수학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르수크-울람 정리가 뭘까요? 이름부터 머리가 아픈데요, 정의를 읽어보면 더욱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러니 약간의 왜곡을 더해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떤 구 위의 한 점을 다른 평면으로 보내는 연속함수는, 대척점에서 함수값이 일치하는 경우가 항상 존재한다.
약간 왜곡된 보르수크-울람 정리의 정의입니다. 그래도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우리의 지구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건지 조목조목 뜯어봅시다.
어떤 구 위의 한 점
말 그대로입니다. 지구는 둥근 구입니다. 그 위의 한 점은 어떤 지역을 말합니다. 이 점을 라고 합시다. 멋들어지게 머리에 쓴 화살표는 위치를 나타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다른 평면으로 보내는 연속함수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어떤 위치 에서 온도와 기압이 얼마인가? 입니다. 온도와 기압은 한 쌍이므로, 좌표평면 위의 한 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입니다. T는 온도, P는 압력입니다. f가 바로 함수입니다. 이 함수는 구 위의 어떤 한 점(지구의 어떤 지역)을 다른 평면(좌표평면)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함수라는 이름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지만, 쉽게 생각하면 온도계와 기압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위치에서 온도계와 기압계를 켜면, 그 위치의 온도와 기압을 측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함수야 고맙다~ 온도와 기압을 측정해줘서’
그럼 함수는 알겠는데, 연속함수는 뭘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온도가 25°C인 위치에 있는데, 한 발짝 앞으로 갔다고 갑자기 온도가 -40°C로 변하지 않습니다. 온도는 연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더운 지방에서 추운 지방으로 이동할 때 온도는 연속적으로 변해서 서서히 시원해졌다가 쌀쌀해지더니 추워질겁니다.
기압도 온도와 같이 연속적으로 변합니다.
대척점에서 함수값이 일치한다
대척점이란 지구 반대편을 의미합니다.
함수값은 온도계와 기압계의 측정값입니다.
어떤 지역과 그 지역의 지구 반대편이 온도와 기압이 일치한다 라고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우와, 그렇다면 보르수크-울람 정리가 사실이라면 지구 반대편과 온도와 기압이 같은 경우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보르수크-울람 정리가 사실임을 쉽게 증명해봅시다.
“이얏호~!”
보르수크-울람 정리 쉽게 증명하기
약간의 수학을 이용하겠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척점과 함수값이 일치한다를 식으로
라고 쓸 수 있습니다. 는
의 대척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함수 g를 정의하겠습니다.
왜 열받게 또 새로운 함수를 정의했을까요?
g가 0이 된다는 것은 대척점과 함수값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항상 g를 0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됩니다!

g 역시 구 위의 한 점을 좌표평면으로 보내는 일을 합니다.
적도 위의 모든 점을 좌표평면으로 보내봅시다.
점은 모이면 선이 되기 때문에 좌표평면에 고리가 그려졌습니다.

북극의 점도 좌표평면으로 보내겠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적도의 점들을 서서히 북극으로 옮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좌표평면의 빨간 고리도 파란 점으로 서서히 옮겨갈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요!
혹시 눈치 채셨나요? g가 0이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입니다.
빨간 고리가 원점과 만났고, 이는 g가 0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파란 점이 어디에 있던지 빨간 고리를 파란 점으로 옮기면 반드시 원점을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전거 자물쇠와 비슷합니다. 자물쇠를 어디로 빼내려고 해도 반드시 기둥에 걸립니다.
이로써 보르수크-울람 정리가 사실임을 증명했습니다.
지구에는 대척점(지구 반대편)과 온도와 기압이 완벽히 같은 지점이 항상 존재한다.
이 문장은 사실입니다. 항상,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는 지구 반대편과 온도와 기압이 완벽히 같은 지점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혹시 어떤 의문 하나가 들지 않나요?

좌표평면의 저 빨간 고리가 꼭 원점을 둘러싸고 있어야할까요?
원점을 둘러싸지 않게 고리가 그려진다면, 원점을 만나지 않고도 고리를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리를 그리는데 사용한 함수 g를 면밀히 살펴봅시다.
g에는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어떤 점의 대척점을 g에 넣으면, 원래 점의 함수값의 음수값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빨간 고리가 원점에 대칭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간 고리는 반드시 원점을 감싸게 그려지게 됩니다.

모든 내용이 끝났습니다.
약간의 수학과 직관을 통해서 우리는 거대한 지구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독일 수학자의 기분을 조금 느껴보셨을까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수학 이 녀석 꽤 괜찮은 녀석이라는거, 그거 하나만 기억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