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드립 중 하나인
‘꿀물좌'에 대한 썰을 풀어볼까 한다.

침투부 팬이라면 이미
‘사세삼공(4대째 삼공벼슬을 지냄)’이란 말은 자주 들어보셨을 거다.
이 녀석이 바로 그 대단한 집안의 적자이다.
그것도 원소같은 반쪽짜리도 아니고
엄마가 귀족이자 정실인 진짜배기 적통 삼남.

이런 어마어마한 배경 덕에 어릴 적부터 일찍 출사하여
절충교위와 하남윤, 호분중랑장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동탁이 낙양에 입성했을 땐 후장군(사방장군)까지 승진한 탄탄대로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원술의 이런 개꿀통 인생사에도 억까가 한 번 찾아오는데

바로 동탁과 원소의 대립이다.
동탁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옹립하고자 했는데
원소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동탁과 칼부림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동탁이랑 디지게 싸운 원소는 그대로 도망쳐서
명성까지 얻으며 기주에 자기 기반을 닦는데 성공했는데,

문젠 낙양(당시 수도)에 남겨진 원씨들이었다.
원소의 행동은 세간의 선비들에게 대단한 찬사를 받았지만
원술의 입장에서는 망할 얼자놈이 집안 말아먹으려고
그냥 급발진을 한거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이 덕에 원술도 동탁의 눈치가 보여서
더 이상 낙양에 머무르지 못하고
팔자에 없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떠돌이 생활도 잠시.
막막했던 원술에게 복덩이가 한 명 찾아오는데

바로 손견 되시겠다.

낙양에서 도망나온 원술이 노리고 있던 땅은 바로 남양이었다.
수도 낙양과 여남의 본가하고도 가까워서 지원받기도 쉽고
남양자체가 인구 수백만이 넘는 금싸라기 땅이라
원술에겐 정말 최고의 땅이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원술이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바로 그 때,
때마침 손견이 반동탁연합에 참가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양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술을 만나 흥미로운 제안을 받게 된다.
원술이 표를 올려 손견을 중랑장으로 삼게 했다.
손견은 남양 태수 장자에게 군량을 청한다는 격문을 보내었다.
…
장자가 마침내 군량조달을 거절하였다.
- < 헌제춘추 > -
손견이 소와 술을 보내 장자(남양태수)에게 예의를 표하니,
장자가 다음날 답례하러 손견에게 갔다.
…
(손견군의) 주부가 고하길,
“남양태수가 우리 의병을 지체하게 하여 적을 토벌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군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십시오.” 하니,
손견이 곧바로 군문(軍門)에 장자를 끌고가 참수했다.
남양군 안이 두려워 떠니, 구해서 얻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 < 삼국지 오서 > 손견전 -
손견이 남양태수 장자를 죽이자, 원술은 장자의 남양군을 점거했다.
- < 삼국지 위서 > 원술전 -
많은 분들이 좀 의아할 수도 있다.
손견이 벼슬하나 받고 싶어서 원술을 도왔다고?
그것도 사람을 그냥 담그는 짓을? 도대체 왜?

일반적으로 알려진 손견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잘 상상이 안 갈수도 있겠으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고 보여진다.
첫 번째 이유는 보급의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 거리를 보급하느니
전장 근처에서 보급해줄 사람 한 명 박아놓는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손견집단이 원래 그런 놈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손견의 행적을 보면 전국 곳곳에서 도적 소탕의뢰를 받고 활약하였는데

말만 장사태수지 그냥 용병집단이나 다를게 없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건 추측의 영역인데,
손견은 벼슬과 출세에 대한 집착이 꽤 있었던 듯하다.
손견은 저당시 군웅치고는 가문빨이 전무한 수준이었다.
뭐 손자(孫子)로 알려진 손무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자기 주장말곤 전혀 뒷받침해줄 증거가 없다.
손견은 오(吳)군 부춘현 사람인데, 아마도 손무(孫武)의 후손이다.
- < 삼국지 오서 > 손견전 -
정사에서도 보시다시피 ‘카더라~’라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출신지 또한 당시엔 거의 중국취급을 못받는 완전 변방이며,
그마저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견의 아버지 손종(孫鐘)은 집안이 가난하였고,
모친과 함께 살며 극진히 효도하였고 오이를 팔아 생업으로 삼았다.
- < 유명록 > -
오서(吳書)에선 손견의 조상들이 벼슬을 했다고 나오긴 하지만
정확한 관직명도 없고 기록도 부족한 것으로 보아,
조상중에 벼슬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관말직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상 손견은 그냥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했다고 볼 수 있다.
손견은 17세 때, 홀로 해적을 소탕하여 관부에서 그를 불러 위(尉)의 직책을 서리하게 했다.
- < 삼국지 오서 > 손견전 -
손견은 17살때부터 전국 곳곳의 도적들을 소탕하며 벼슬을 높여 왔는데,
당연히 실력 하나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이 있었을 것이다.
출신 지역, 가문, 귀족간의 인맥.
손견이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걸 갖추고, 자길 필요로 하는 녀석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원술과 손씨가문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 2부에서 이어집니다. ]
※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목록
- [ 제1편 : 계륵과 양수 ]
- [ 제2편 : 북벌, 출사표, 그리고 하후무 ]
- [ 제3편 : 백미와 읍참마속 ]
- [ 제4편 : 인생은 가후처럼(1부) ]
- [ 제5편 : 인생은 가후처럼(2부) ]
- [ 제6편 : 반골과 자오곡 ]
- [ 제7편 : 오하아몽과 괄목상대 ]
- [ 제8편 : “료 라이라이!” ]
- [ 제9편 : 칠종칠금과 만두 ]
- [ 제10편: 손제리와 이궁의 변 ]
- [ 제11편: 왕좌지재와 빈 찬합 ]
- [ 제12편: 진창성의 학소, 그리고 한신 ]
- [ 제13편: 추풍오장원 ]
- [ 제14편: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
- [ 제15편: 꿀물과 호랑이(1부) ]
- [ 제16편: 꿀물과 호랑이(2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