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1 대 1000으로 싸운 김상옥 열사 이야기

김상옥 (1890~1923)
“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
( 상하이를 떠나면서 남긴 김상옥 의사의 말. 사실상의 유언이다 )
종로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은 지금의 서울역 근처인 후암동에 닷새간 숨어 있었다. 하지만 5일 뒤인 1월 17일,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은신처는 일본 경찰들에 의해 포위됐고, 김상옥과 일경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총격전은 1 대 21의 대결이었다. 이 대결에서 김상옥은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경찰의 인명 피해는 사망 1명, 부상 3명이었다.
총격전 직후, 김상옥은 후암동 오른쪽 옆인 남산으로 도피했다. 500명 이상의 경찰이 그 뒤를 추적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그는 500명 이상이 쳐놓은 포위망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포위망을 뚫었다. 그러고는 남산 동쪽 왕십리로 도주했다.
왕십리의 사찰에 가서 승복을 빌려 입은 김상옥은, 이번에는 북쪽에 있는 지금의 서울 강북구 수유리로 이동했다. 거기에 이모 집이 있었다. 닷새간 숨어 지내다가 이후 그가 간 곳은 고향인 종로구 효제동이었다.
김상옥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는 동안, 일본 측은 그의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결국 일본은 효제동에서 그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후암동에서 그의 전투력을 확인한 일본은 1000명 이상의 군경을 동원했다. 대병력으로 그의 은신처를 포위한 것이다. 1 대 1000의 이 전투가 벌어진 곳은 지금의 서울지하철 종로5가역 근처다.
김상옥은 포위망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는 효제동 주택가를 돌면서 일본 군경과 시가지 전투를 벌였다. 양손에 권총을 든 채로 무려 세 시간이나 일본 군경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 군경 16명이 쓰러졌다.
김상옥은 막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총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휴대했던 실탄이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총알마저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마지막 1발을 스스로의 머리에 쏘아 자결해 순국하였다.
ㅡ 오마이뉴스 발췌

종각역 8번출구에 서 있는 표지석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김상옥 동상
아! #김상옥 / 非心 홍찬선
그대 보았는가
종각역 8번 출구 앞 쪼그만 표지석을
아담하다기보다는 초라하고 쓸쓸하게
치과 노래방 사진관 빈대떡 귀금속에
가로막히고 자동차 소음에 귀먹었다
그대 아는가
바로 이곳이 종로경찰서 있었다는 걸
항일독립투사 모질게 고문했던 곳이란 걸
1923년 1월12일 한밤중에 폭탄이 터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는 걸
그대 듣는가
대한의 큰 뜻 가진 김상옥 열사 외침을
오직 권총 두 자루로 일제 경찰 천명과
후암동 효제동에서 벌인 시가전 총소리
쩌렁쩌렁 울린 독립의 뜨거운 포효를
그대 느끼는가
해방된 나라에서 푸대접 받는
그님의 가슴 엠을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님
애써 외면하는 한국의 현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