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하하위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몇 가지
매우 길기 때문에 볼드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가장 오래된 곡 - 세이킬로스의 비문

현존 최고(最古)의 온전한 악보
음악은 문명이 시작하기도 전인 선사시대 때부터 인류와 함께 그 오랜 역사를 쌓아 올렸습니다. 이견은 있으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기로 여겨지는 디우예 바베 플루트(Divje Babe Flute)는 만들어진 추정 시기가 약 5-6만년 사이로 무려 구석기 시대에 동굴 곰의 대퇴골로 만들어진 플루트입니다. 문자가 발명되고 고대의 악보라 불릴만한 기록들도 생겨났는데요. 그중에서도 세이킬로스의 비문이 특별한 이유는 ‘현재까지도 온전히, 곡 전체의 내용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악보이기 때문입니다.
악보를 토대로 재해석하여 만든 곡
Ὅσον ζῇς φαίνου
μηδὲν ὅλως σὺ λυποῦ
πρὸς ὀλίγον ἔστι τὸ ζῆν
τὸ τέλος ὁ χρόνος ἀπαιτεῖ.
생애 빛나기를,
조금의 근심도 필요 없나니,
삶이란 덧없이 존재하고
시간은 그 끝을 청하리라.
- 세이킬로스의 비문 中 -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분들은 어쩌면, 게임 문명에서 들어보셨을 수도 있어요. 인게임내에서 해당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OST가 사용되었거든요. 근 2,000년 가까이 된 음악인데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서 한 동안 푹 빠져 있던 기억이 납니다. 삶에 관한 철학이 담겨 있는 가사는 '카르페디엠이'라는 라틴어 격언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곡의 음악적인 해석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골자는 파악이 되어서 위처럼 현대에도 연주가 가능합니다. 해당 악보는 비문, 즉 비석에 적혀있는 것으로 대략 1-2세기 경에 세이킬로스라는 사람이 에우테르페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아마, 사별한 부인이나 돌아가신 어머니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대형 도서관 -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기원전 7세기 건립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보다 근본
도서관의 근본 하면 떠오르는 도서관은 아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일 것 같습니다. 침하하도 이게 맞나 싶긴 하지만 원래는 웃음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건립하고 싶다는 방장님의 마음에서 출발했죠.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모태가 되는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원전 7세기에 니네베에 건립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인데요.
이 도서관은 주로 건립자인 당대 아시리아 제국의 대왕 ‘아슈르바니팔’의 이름을 따와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라고 부르거나 당시 제국의 수도이자, 도서관이 건립된 도시인 ‘니네베’의 이름을 따와 니네베 도서관이라고 불립니다. 도서관의 역사 자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긴데요. 가장 초창기 도서관의 형태로 여겨지는 것은 쐐기 문자로 기록된 점토판을 다량 보관했던 고대 수메르 문명권의 기록보관소나, 다양한 분야의 파피루스를 기록하여 보관했던 고대 이집트 문명권의 신전 및 기록보관소입니다. 이러한 기록보관소들은 길게는 BC 3,000년 경, 즉 지금으로부터 약 5,00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오르는 장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무엇이 최초의 대형 도서관이냐는 기준점 자체는 모호해서 조금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더 오래된 주요 기록보관소는 고대 중동에서 무역을 토대로 막강한 국력을 축적했던 ‘에블라 왕국’의 왕립 기록보관소, 최소 7개*의 문자로 작성한 문서가 발견된 고대 도시 우가리트의 기록보관소를 꼽을 수 있겠는데요. 역사성은 두 기록보관소도 뒤지지 않지만, 그 규모나 체계적인 측면에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최초의 대형도서관으로 꼽았습니다.
* 우가리트 문자, 고대 이집트 문자, 루위 문자, 키프로스-미노아 문자, 후르리 문자, 수메르 문자, 아카드 문자

짐은 만물의 왕이자 신들께 지성을 부여 받은 자,
학문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관통하였으니
니네베 도서관의 미래를 위해
삶의 안녕과 영혼의 평화를 위해
이 기록들을 여기에 남긴다.
- 아슈르바니팔 -
도서관의 규모 - 10만 개 이상의 기록물
아슈르바니팔은 뛰어난 정복 군주지만 문무겸비를 굉장히 중시하여, 학문을 쌓는 것을 사랑한 인물인데요. 언어학, 문학, 수학, 천문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학문에 관심이 많고 정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그는 전세계 모든 기록을 한 곳에 모아 범용 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꿈 꾸었고, 그렇게 탄생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는 약 10만 개 이상의 기록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천문학, 서사시, 종교,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기록물이 다양한 문자와 형태로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서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고작 100년도 안 되어서 기원전 612년에 니네베가 적대적인 세력에 의해 습격 받았고, 당대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도 파괴되고 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기록이 점토판 형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때 일어난 방화로 일부 기록물은 적당히 구워져 더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지금까지도 약 3만여 점이 넘는 점토판이 무사히 보존되었습니다.

아슈르바니팔 - 문무를 겸비한 제국의 마지막 명군이자, 암운을 드리운 잔인한 정복자
아슈르바니팔은 신 아시리아 사르곤 왕조의 네 번째 계승자이자, 연이은 정복 전쟁에서 모조리 승리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한 인물입니다. 아시리아는 원래 고대 세계에서 강력한 패권국은 아니었으나, 신 아시리아 때에 이르러서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주변국들을 평정하며 당대 최강의 패권 국가 중 하나로 성장하는데요. 아슈르바니팔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명군인 에사르하돈의 치세에는 흑인 파라오 왕조라고도 불리는 이집트 25 왕조를 정복하면서 그 위세를 단단히 합니다.
이 에사르하돈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즉위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한 인물인데요. 원래 그는 승계 구도에서 낮은 위치에 있었고, 그의 큰 형이자 적장자인 아슈르나딘슈미가 왕위를 계승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적국과의 전쟁에서 큰 형이 포로로 잡혀 처형 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어쩔 수 없이 왕세자의 지위는 차남인 아르다물리수에게 넘어갔는데, 수년 뒤에 차남은 부왕에 의해 왕세자 지위를 박탈 당합니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이 차남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부왕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추정되는데요. 이후, 부왕은 총애하던 에사르하돈에게 왕위 계승자의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이에 앙심을 품은 차남이 다른 형제와 작당하여 내전을 일으키고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에사르하돈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형제들과 싸웠고 결국에는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후 그는 수많은 군사 업적을 이룩하며 당대의 명군으로 칭송 받습니다. 다만, 그의 삶이 그리 밝지는 않았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에사르하돈은 불안감과 우울증에 평생을 시달렸으며, 편집증적인 증세까지 생겨 많은 사람을 숙청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후, 왕위 계승이 평화롭게 이루어지길 바라며 당시 장남인 샤마쉬슘우킨과 총애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아슈르바니팔을 각각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선왕의 사후, 아슈르바니팔이 왕위를 이으며 이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되었지만, 불안정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아슈르바니팔이 지위상 우위이긴 했지만, 바빌로니아의 통치권을 선양 받은 샤마쉬슘우킨의 존재가 있었고 선왕이 서거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어난 각지의 반란까지, 재위 초기가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아슈르바니팔은 선대를 뛰어 넘는 군사적 능력을 발휘하면서 각지의 크고 작은 반란을 전부 평정하고 역으로 대외적인 정복 전쟁까지 활발히 펼치면서 아시리아 제국의 강대함을 과시합니다. 그 후, 아슈르바니팔과 샤마쉬슘우킨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져 내전이 일어나는데, 이 때 많은 세력이 타도 아슈르바니팔을 외치며 샤마쉬슘우킨과 연합하였고, 강력한 연합 세력의 공격을 받았지만 엎치락뒤치락 끝에 아슈르바니팔이 승리하면서 내전은 종식됩니다.
아슈르바니팔의 치세는 제국의 영광을 가져다줬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군사적, 문화적으로 다방면에서 커다란 치적을 남겼으나 너무 많은 전쟁과 강압적이고 잔인한 정복 과정 때문에 제국은 이미 암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방으로 아시리아를 증오하는 적대적 세력이 포진했고 결국 아슈르바니팔 사후, 아시리아는 적대 세력과 반란에 시달리다 얼마 안 가 멸망하고 맙니다.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 - 카훈 파피루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 기원전 1,800년 경의 산부인과 시술 기록
고대 세계에서 의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를 한 곳만 꼽자면, 아마 고대 이집트일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는 그 긴 역사에 걸쳐 최고의 의학 선진국이었는데요. 오늘날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이집트에서 의학을 공부한 적이 있으며, 기원전 2,900년 경 지금으로부터 무려 5,000여 년 전에 구강 수술을 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위의 사진은 기원전 1,80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부인과 의술서 카훈 파피루스인데요. 비슷한 시기의 파피루스 중에는 한참 이전인 초기 왕조나 고왕국 시대의 의학에 관한 기록이 있고, 그 시대 의술서의 사본이라고 쓰여 있는 것들도 있어서 아마 카훈 파피루스보다 더 오래된 의학 서적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 중에서도 카훈 파피루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의학 관련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이나 상징적인 면에서 카훈 파피루스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으로 선정해봤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총 34개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항목마다 증상에 따른 진단법과 비수술적 치료법이 적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도시 - 제리코

팔레스타인의 제리코 - 10,000년이 넘게 명맥이 유지된 유서 깊은 도시
인류의 집단 거주 흔적을 보여주는 고대 정착지는 초기 문명이 형성되기도 이전인 석기 시대에도 나타나는데요. 지금도 이런 선사시대 유적들은 계속해서 발굴 및 연구되고 있고 가장 오래된 형태의 집단 거주지들은 대략 기원전 10,000년을 전후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당시의 거주자들은 기본적으로 정주민이 아닌 수렵채집인이었기 때문에 영구 정착지 보다는 일종의 캠핑장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이로운 유적지인 것은 변함 없지만 그 규모는 물론 도시는커녕, 작은 촌락이라고 보기도 우스운 수준이죠.
명확한 정의는 어렵겠으나 오늘날, 우리가 도시라고 부를만한 대규모 정착지는 우루크, 에리두 같은 고대 수메르 문명권의 초기 도시들이 그 시초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제리코를 가장 오래된 도시로 선정한 이유는 선사시대에 형성된 집단 거주지부터 시작해서 성경에 기록되고 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근본 넘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사시대의 거주지가 지금까지 같은 위치에서 쭉 이어져 온 것은 아니고 파괴되고 방치되어 사람이 살지 않던 시기도 몇 변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재건되고 확장되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고 현대의 모습을 갖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 재고의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제리코의 역사 - 선사시대 나투프인부터 성경의 여리고
제리코의 초창기 거주인은 나투프 문화를 형성한 선사시대 수렵채집인들입니다. 신석기 시대 초창기 정착지들이 대부분 나투프 문화권에 속해 있는 가나안 일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정주민들을 이들의 직접적인 후손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이 번성하기 이전에 조기 농업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도 발견되었고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정착지가 있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나투프 문화의 수렵채집인들은 농업의 도입 시기 이전부터 반정주적인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초창기의 제리코 또한 이러한 성격을 보여주는 유적의 일환으로, 영구적인 정착지는 아니었지만 종종 거주했던 정착지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9,500년에서 9,000년 사이에 농업과 주거의 특징을 보이는 영구 정착지로 발전합니다. 기원전 8,000년 경에는 이미 원시적인 성벽과 탑을 쌓을 정도로 당시 고도로 발전된 문화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 여리고라고 나오는 도시가 바로 이 제리코입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비록 이 선사시대의 정착지가 완전히 연속된 것은 아니나, 그 명맥을 현대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도 길고 지루한 역사글로 침하하 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기 위해 왔습니다.
읽으셨던, 안 읽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고요.
애굽 게시판 개설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그럼, Adi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