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 비셔스, 그리고 연인 낸시 스펑겐

I'll die before I'm 25, and when I do I'll have lived the way I wanted to.
-나는 25세 이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산 후에 죽을 것이다. (시드 비셔스, 1957~1979)
※ 이 포스트에는 자해, 마약과 관련된 내용, 사진을 다루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본명은 존 사이먼 리치. 시드는 버킹엄 궁전의 보안 요원인 아버지 '존 리치'와 히피 어머니 '앤 비벌리' 사이에서 1957년 태어났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시드와 어머니를 남겨둔 채 떠났다. 그 후 앤은 재혼하여 시드는 '존 베벌리'로 개명을 하기도 한다. 모자끼리 히피같은 사람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던 중 앤은 마약 중독자가 되어 아들에게 가르쳐주었고, 17살 때부터 시드는 마약 중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리더인 쟈니 로튼과 친해지고, 광팬이 되었다.

1977년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가 탈퇴를 하자, 매니저가 후보를 찾던 중 광팬 시드를 접했다. 하지만 시드는 베이스를 정말 못쳤다. 하지만 그의 또라이기질에 반한(?) 매니저는 그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한다. 하지만 얼마나 실력이 안 좋았으면, 레코딩에서는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가 베이스 파트를 연주하고, 공연할 때도 대행을 구하고 시드는 치는 척만 했다고 한다.
사진과 같이 그의 몸에는 너무나도 많은 자해 자국도 있다. ( 마약을 하면 심해졌다고 함) 매니저가 약을 하지 못하게 되자 깨진 병조각으로 ‘약을 줘’라고 쓰고 피 흘리며 진행한 공연 사진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낸시 스펑겐(1958~1978). 13살부터 마약을 시작했으며, 어릴 때부터 사고뭉치였던 낸시를 감당할 수 없었던 부모는 17살에 집에서 그녀를 쫓아낸다.
그녀는 마약값을 감당하기 위해 매춘부로 일하며 살아가던 중, 섹스 피스톨즈 공연을 접하고 광팬이 되다가 시드와 만난다.
당시 섹스 피스톨즈의 리더 쟈니는 낸시를 너무 싫어했다고 한다. 밴드 생활을 등질 정도로 낸시와 매번 붙어다녔기 때문. 그게 또 꽁냥꽁냥한 사랑이면 모를까. 굉장히 기이한 사랑을 했다고 한다. 둘이 같이 마약에 찌들어서 그런지, 서로 상해를 입으며 싸우기는 물론 (귀를 물어뜯었다고 함) 고층 건물에서 시드가 낸시를 매단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순회공연까지 함께 있던 1978년부터 시드의 행동은 더 기이해졌다. 관객한테 욕을 하기도 하고, 관객이 화가 나서 무대에 따지려고 올라오면 베이스로 관객을 구타하는 등 밴드 자체에도 문제 될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시드는 쟈니, 매니저와 크게 싸운 뒤 사실상 밴드는 해체하게 된다.
그 뒤로 그는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낸시는 매니저 역할을 자칭했고, 하지만 원래 음악 실력이 그렇게 없던 시드였던지라 공연 상태는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1978년 10월 12일, 첼시 호텔 100호실 화장실에서 하복부에 칼이 찔린 낸시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신고자는 시드.
시드는 자신이 죽였다고 진술한다. (내가 죽였어요. 왜냐하면 난 더러운 개에요. (I did it because I'm a dirty dog.) 흉기가 시드가 낸시에게 선물해준 접이식 칼이긴 했으나, 알리바이도 명확한 증거도 없었으며 목격자도 아무도 없었다. 현재까지도 그가 죽였다, 마약 딜러의 짓이다 등 많은 설이 돌지만 진범은 결국 찾지 못했다.
시드는 낸시가 죽은 뒤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고, 상해 사고를 내고는1979년 2월 1일에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2월 2일, 어머니가 석방 축하로 가져온 대량의 헤로인을 투여 후,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 후 유골함이 공항 바닥에 떨어지는 사고로 뼛가루가 이곳 저곳 흩어지는 소동이 벌어져 그의 인생을 더욱 기구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게리 올드만 주연의 <시드와 낸시>로도 제작되었다.
(저는 영화 속 낸시가 조금 미스 캐스팅인거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참고 자료: 구글, 나무위키, 네이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