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 침하하위키 - 색1스의 역사
색1스는 칼이다.
다소 외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 칼의 이름은 사실, 우리의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할 때 익히 들었던 한 민족의 이름과 기원이 동일합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앵글로-색슨족인데요, 사춘기 감성을 물씬 자극하는 이름 덕분에 어떻게 민족 이름이 색1스냐며 중학생 친구들에게 놀림 받기 일쑤였지만 그 기원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이름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의 언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언어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이 생각날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유럽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뿌리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유럽에서 기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기원은 서아시아 일대에서 발흥하여 수 세기 동안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장된 원시인구어(Proto Indo-Europian languages)에서 왔는데요. 현대에는 원시인구어에서 파생된 수많은 언어를 인도유럽어족 혹은 인구어족이라는 언어 집단으로 한 데 묶어 지칭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원시인구어(PIE 언어)는 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언어 집단의 조상 언어라고 볼 수 있죠.
PIE어족은 유럽의 선주 민족이었던 고유럽제어(Paleo-European languages)파 민족들을 흡수, 융화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갔고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사시대 동·서유럽에 걸쳐 폭 넓게 분포했던 할슈탈트 문화(Hallstatt culture)를 발흥시킨 켈트 원어족입니다.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마찬가지로 PIE어족 계열인 게르만 원어족도 유틀란트 반도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일대에 번성했던 야스토프 문화(Jastorf culture)와 동화되었습니다. 이후, 게르만족은 저지 독일을 장악하고 있던 켈트족을 몰아내고 남하하며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그러한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부족의 일파가 생성되었고 그 중에는 앞서 언급한 앵글로-색슨의 유래가 되는 색슨족도 있었습니다.

민족 이름이 왜 색1스?
학자들은 이 색1스의 어원을 PIE 언어에서 ‘자르다’를 뜻하는 *sek에서 왔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그대로 게르만족이 사용하는 칼에 고스란히 명명되었고 선후 관계는 불명확하지만, 칼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그 칼을 잘 쓰는 사람들(색슨), 그 사람들이 사는 지방(색슨=작센)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걸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동네에 사시미 칼을 잘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칩시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그 동네 사람들을 사시미파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한 술 더 떠서 동네 이름 자체를 사시미동이라고 뇌절까지 치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죠. 현대 독일에도 니더작센 주와 작센 주가 있는데 두 주의 명칭도 어원'만' 따지고 보면 여기서 파생된 것이 맞습니다.
즉, 색1스라는 이름은 놀림감이 되기 쉬운 외설스러운 이름이 아니라, 고대어로 칼을 뜻하는 강인하고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던 것이죠. 다시, 색슨족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이들이 영국인의 조상이 된 계기
유틀란트 반도를 벗어나 확장하던 게르만족에는 북해 게르만어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잉비어닉(Ingvaeonic) 게르만 일파가 있었습니다. 훗날, 영국인의 조상이 되는 앵글족과 색슨족이 여기에 속하고, 고대 영어는 여기서 기원하였죠. 같은 어군으로 묶이긴 하지만 사실 앵글족이 사용하던 고대 앵글어와 색슨족이 사용하던 고대 색슨어(고대 저지 독일어)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두 일파가 영국으로 건너 와 혼합되면서 고대 영어가 만들어집니다.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현대 영어가 로망스어군이 아닌, 게르만어군에 속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게르만의 일파였던 앵글족과 색슨족이 어쩌다가 현대 영국인의 조상이 된 것일까요? 상술한 켈트족의 확장으로 영국에는 켈트의 일파인 브리튼족과 픽트족, 게일족(* 픽트와 게일이 켈트어파 민족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주된 학설은 이들을 켈트계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이 주요 민족으로 정주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확장 사업으로 영국을 침공할 때, 남부의 브리튼인은 로마에 복속되어 ‘로마화’ 되었지만 야만용사 그 자체인 북부의 픽트인은 손 쓸 방도가 없어서 영국 정복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 때, 로마가 북부 픽트인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방벽이 그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으로 굉장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현대에 와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죠.
이후, 정세의 변화로 로마군이 영국 땅에서 철수하자 남부의 로마화된 브리튼인은 주옥됨을 감지합니다. 이제 북부 야만용사들한테 자기들 목이 날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죠. 그래서 이들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리는데, 저기 바다 건너에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전투 민족을 불러 와서 자기들을 지키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게르만 일파인 앵글족과 색슨족이었죠. 평소 침국지를 즐겨 듣는 침하하 횐님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원소 일생 최악의 계책으로 인해 낙양에 입성하여, 정권을 장악한 동탁의 일화죠.

브리튼인들이 침투부만 구독했더라면, 하다 못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십상시의 난’ 시나리오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봤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리튼인은 앵글족과 색슨족에게 밥도 주고 땅도 주고 하면서 영국 땅에 터전을 마련하게 도와줍니다. 굴러 들어온 꿀땅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자시던 이들은, 어느 새부터인가 제 밥그릇을 넘어서 브리튼인들의 식탁에도 고기 반찬이 있나 없나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브리튼인과 앵글로, 색슨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하나로 뭉친 앵글로-색슨에게 패배한 브리튼인들은 영국 땅에서 패권을 잃게 되었죠. 이렇게 앵글로-색슨족은 영국 땅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고 이들의 언어인 영어, 이들의 민족적인 정체성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인의 주요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학문적으로 들어가면 전개도 훨씬 복잡하고 세세한 내용은 훨씬 지엽적으로 다양하지만 대충 소개하자면 위와 같습니다.

드디어 저를 위한 게시판을 만들어주신 태완씨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지루한 역사글로 침하하 회원분들의 눈살을 열심히 찌푸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