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전투민족인 이유
- BGM -
기마민족 스키타이인들이 기원전 6세기에 다른 기마민족인 킴메르인들을 몰아내고 자리를 잡음
근데 얼마 뒤에 같은 이란계 백인 유목민족 사르마티아, 알란 유목민 전사들이 이주함에 따라 스키타이인들이 몰락함

그 후 잠깐 동안 폰토스 왕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스키타이족이 같은 이란계 백인 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아인, 알란인에게 밀려나 몰락하면서 힘의 균형이 깨지고 그리스인들이 흑해에 세운 식민 도시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흑해의 그리스인들은 보스포로스 왕국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흑해 무역을 지속하고, 유목민들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보스포로스 왕국은 중간에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에게 지배를 받기도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으로 자리잡았다.
[ 나무위키 - 우크라이나 역사 / 참고 ]
또한 게르만족 또한 이동하게 됨

서기 3세기 무렵에는 드네프르 강 일대에는 새로이 게르만계 고트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세력을 키운 고트족이었지만, 새로이 아시아 초원에서 나타난 훈족의 침략을 받자 이들 대다수는 다시 드네프르 강 평야를 버리고 난민 혹은 침략자가 되어 당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로마 제국으로 이동했다. 훈족 역시 이후 몰락했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버리자 공백지가 되다시피 한 드네프르 강 유역에 슬라브족들이 대거 이주했다.
[ 나무위키 ]
그러다보니 남부에는 조금 떨어진 남쪽에 살던 다키아인들이 스플뎀 입고 살다가
아잇싯팔 하면서 들고 일어났고
로마가 그거 보고 대규모 원정군 꾸려서 박살을 냄
그럼 이제 로마한테 복속된거 아님? 할 수 있는데
훈족 : 어림없지
5세기 중반까지 훈족이 이 땅을 휩쓸고 다님
그 뒤엔?
불가르족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짓밟고 감 그 밖에도 아바르족, 등 타 유목민족 또한 이 약탈 레이드에 동참함

그 후 하자르 칸국의 지배를 당하고, 그 밖에도
다른 유목민족인 페체네그족, 마자르족, 쿠만족, 타타르족, 크림 타타르족, 등도 틈틈히 왔다 가고
기타 등등 정말 여러 복잡하고 복잡한 역사가 여럿 반복하고 반복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슬라브가 그 자리를 먹으러 내려와서 자리를 차지하더니
슬슬 정주하려고 하던 찰나에
바이킹들이 쳐들어옴
다행히 바이킹들의 세가 슬라브를 다 밀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때 강성했는데
지들 힘 믿고 동로마한테 깝쳤다가 그리스의 불에 참교육 당하고
슬라브와 동화되면서 얌전히 정교회 개종하고 삼
그럼 이제 문명화할 수 있는 거 아니냐? ㅇㅇ 맞음
실제로 정교회 개종 이후 서프랑크에 시집 간 키예프 루스 대공의 딸이
'아버지는 이런 깡촌에 날 시집 보내니 좋습니까 여긴 최악입니다' 이러면서 눈물 적신 편지 보낸 적이 있을 정도로
충분히 문명화가 이루어짐.
근데...
13세기
저 멀리서 갑자기 환경전사 말박이들이 등장하는데...
전쟁이 많은 역사에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해서…
참고로 저 코사크 유목민족은
우크라이나어로는 Козаки(코자키)라 부르고, 러시아어로는 Казаки(카자키)라고 부른다. 폴란드어로는 Kozacy(코자치),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로는 Kozáci(코자치), 벨라루스어로는 Козакі(코자키). 영어로는 Cossack(코삭, 코사크)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족과 발음이 비슷한데, 영어로는 어느 정도 구별이 되지만 러시아어로는 Казаки와 Казахи로 한 글자 차이라 혼동하기 쉽다.[6] 그러나 코자키/카자크는 슬라브계이고, 카자흐는 튀르크계로, 둘은 별개의 민족이다.
크게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지역이 기원인 자포리자 코자키와 러시아의 돈강 하류가 기원인 돈 카자크(= 쿠반 카자크)로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드니프로강 유역의 코자키와 러시아 돈강 유역의 카자크는 최초 단계에서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유사한 경로를 거쳐 유사한 형태를 가진 '경계인 집단'으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역사 과정의 길을 걷게 되었다. [10]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코자키(Запорозькі козаки)는 주변의 폴란드, 루스 차르국, 크림 칸국 및 칸국의 후견국가인 오스만 제국 등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자립을 추구했다. 폴란드는 자포리자 코자키를 폴란드 사회에 편입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코자키 및 왕국 내 루스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결과적으로 자포리자 코자키의 저항은 폴란드의 운명에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자포리자 코자키 집단은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이후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러시아의 대제 예카테리나 2세는 코자키 헤트만국을 해체하고 '소러시아' 관구를 설치했다. 이로써 자포리자 코자키의 역사도 함께 종언을 맞았다. 하지만 자포리자 코자키는 소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스를 거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돈 카자크(Донские казаки)는 일찌감치 러시아 치하에 편입되었고,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받는 대가로 차르를 위해 복무하는 특수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했다. 즉 일종의 군사적 카스트 또는 '신분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돈 카자크를 편입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 역시 코자키를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의 선봉이 되어 영토 팽창에 앞장섰다. 이들은 캅카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는 물론 극동의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경계지역을 따라 널리 이주하였다. 결론적으로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종언을 맞을 당시에도 계속 존속했고, 러시아 내전을 거쳐 소련이 수립되는 격동기에도 카자크는 '봉건제의 잔재'로 탄압받으면서도 명맥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기병 병과의 해체로 카자크들은 일반 시민으로 돌아갔으며,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자치권도 완전히 해체되었다. 이에 더해서 나치 독일에 부역한 백계 카자크들로 인해 소련에 충성한 카자크 역시 '잠재적 배신자'로 백안시당해야 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카자크는 러시아 애국주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으며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었다. 그 결과 돈 카자크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카자크 문화의 복원과 부흥이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장려되고 있다. [ 나무위키 - 카자크 ]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넘어 러시아 넓게는 중앙아시아 등에서도 존재합니다

우크라이나 코사크는 자포리자 코자키라 불리며 러시아 코사크는 돈/쿠반 카자크라 불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