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링겐 상공 공중충돌 사고 (스압)










이 사건으로 두 기체 탑승객 71명이 전원 사망하였다.
2명 이상의 관제사가 반드시 상주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단 한 명이 항로관제와 접근관제를 모두 책임져야 했으며,
전화 시스템 점검과 백업 시스템의 고장, 지상의 충돌 감지 레이더의 유지보수로 인한 미작동 등 다양한 사건이 겹쳐 발생한 비극이다.
관제사 닐센은 이 사건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우울증에 걸려 취리히 근교의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중 2004년 2월, 이 사고 피해자의 유가족인 칼로예프에게 살해당했다.
칼로예프는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 공화국 사람으로, 칼로예프의 부인과 두 자녀가 해당 비행기에 탑승하여 사고를 당했다.
칼로예프는 수색대가 아직 딸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을 알고 직접 현장을 헤매다가 결국 자신이 딸아이의 시신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이후 우울증에 빠져 가족들의 묘지를 떠나지 못할 정도로 사실상 폐인이 되었다.
칼로예프의 진술에 의하면, 수소문 끝에 찾아간 닐센의 집에서 신경질적인 응대를 당하고, 거기다 사망한 자녀의 사진이 바닥에 던져진 것에 격분해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칼로예프는 자신이 행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처벌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닐센은 살해당할 당시, 아내와 어린 세 자녀가 있었다.
이후 칼로예프는 2005년 스위스 법원에 의해 8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사건 당시 정신상태를 참작하면 판결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4분의 1 형량인 2년만 복역하고 가석방되었다. 그 이후 칼로예프는 고향에서 암암리에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귀국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건설부 차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2018년, 칼로예프의 이야기를 담은 "Unforgiven (Непрошенный)"이란 영화가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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