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장군, 김홍일 [1부]
들어가기에 앞서...
김홍일 장군님의 이야기는
3장으로 진행하려고합니다.
근현대사 인물을 커뮤니티에서 다루기는 두렵지만..
용기내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부. 압록강변에 엎드린 꼬마 아이
1950년 여름, 영등포는 수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피란민과 군인들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고,
한강 너머에선 폭발음과 함께 희미한 따발총 소리도 들려왔다.
간밤부터 이어진 소란에 정신이 아득한 듯
그들의 눈빛엔 도저히 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앉아 강 너머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봐, 거기 자네, 그래 자네 말야.”
“이봐, 자네도 이리 와보게 그래 자네 말야.”
땀과 흠뻑 젖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군인들에게
분주히 말을 건네는 중년의 군인이 있다.
“자네들 일단 여기 물이랑 주먹밥 좀 먹고 기운 차리게,
어때 좀 낫지 않나? 자, 이제 자네들은 지금부터 임시 1소대가 되는거야.
서로 통성명들 하라고.
기운 좀 차리면 강 건너오는 군인들을 여기로 안내해주게,
물이랑 주먹밥도 먹이고 말야.
아, 그리고 장교들이 보이면 따로 모아서 저기로 안내해주게.”
대한민국 최초의 군단급 부대이자 현 육군 1군단의 초라한 시작이었다.
1904년 봄, 의주의 압록강변은 수많은 군인들로 북적였다.
러시아와 일본, 두 제국의 육군이 맞붙은 ‘압록강 전투’
생생한 전투의 현장을 멀찍이서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가 있다.
“Поздравляем с 2,22 миллионами подписчиков!!!!”
“沈下下 して永遠にしてください!”
양 국의 군인들의 긴박한 외침과 웅장한 총포의 소리가
소년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생생한 전장의 현장을 보며 요동치던 심장의 고동소리.
그 소리는 소년을 기어코 군인의 길로 이끌었다.
<장제스와 김홍일>
청년이 된 소년은 난세의 한 가운데서
수많은 전장을 지났다.
마적단, 관동군, 러시아 백군과의 전투는 물론
볼셰비키의 함정도 이겨낸 그가 둥지를 튼 곳은
장제스의 국민혁명군.
그곳에서 그는 두 차례 북벌에 참전하여
수많은 공적을 쌓아 사령부 소속의 참모장으로 진급한다.
그리고 그가 중국 국민군에 복무하고 있던 시절
누군가 그를 찾아오는데..
“김홍일 동지, 말씀 많이 들었소. 나는 임정 주석 김구 올시다.”
<왼쪽부터 중국인 폭탄 기술자 왕바이슈 / 김구 / 김홍일>
'하지만 제 아무리 휴대하기가 간편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 수류탄을 동경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로
당시 김구 선생과 나는 보통 고심한 것이 아니었다.'
-김홍일 <대륙의 분노 - 노병의 회상기>
이 시기 김홍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거에
폭탄 공급책을 맡아 고성능의 폭탄을 공급하였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손을 거쳤던 그 폭탄들이
바로 김홍일이 공급한 폭탄들이다.
그리고 1937년, 비로소 중국 대륙에
일본 제국의 군대가 진군한다.
김홍일은 일제에 대항하여
중국 내륙으로 들어온 조선의 독립군 세력을 지원하는데,
김원봉과 의열단을 주축으로 한
조선의용대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김원봉과 김홍일은 훗날
독립된 조국의 땅에서 적장으로서 전쟁을 치르게 되니
이 얼마나 짓궂은 역사의 장난인가.
이후 김홍일은 국민혁명군의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본격적인 일본군과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이 때 일본군을 상대로 사단급의 부대를 운용하면서
실전에서의 값비싼 경험들을 얻게되었다.
바로 이때 얻은 귀중한 경험들이 한국전쟁에서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되는데,,
-다음 장-
너무 바쁜 현생 때문에
진득하게 글을 쓸 시간이 없네요..
시간이 많았더라면 국민군 시절의 주요 일화도
함께 소개해드렸을텐데 아쉽습니다.
관심이 가시는 횐님들은 꼭
장군님 나무위키라도 찾아서 읽어주세요
정말 우리 역사에서 귀한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