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의 깃발들 (야비켬마, 소인배 등)
(1편: F1 선수들은 왜 금수저들일까? https://chimhaha.net/story/155132)
(2편: ‘F1의 한화’ 하스: 자금은 흙수저, 인기는 금수저 https://chimhaha.net/story/156290)
F1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모터스포츠입니다.

물론 위 표와 같이 최고속도는 인디카가 더 빠르지만, F1 차량들이 가속력이나 다운포스가 더 우수하기 때문에 코너에서의 속도와 민첩도가 월등하고,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F1이 인디카보다 빠릅니다 (물론 종목 간에 여러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는 어렵습니다).
어느 스포츠에나 심판 등 경기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운영자/관리자들은 실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나 팀에게, 그리고 상호 간에 각종 지시나 정보 등을 전달해야 합니다. 예컨대 야구의 주심은 일정한 수신호를 사용하고, 축구의 부심(선심)은 깃발을 사용하죠.
그런데 F1은 그 특성상 위와 같은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트랙이 수 킬로미터에 달할 뿐 아니라 요상한 모양으로 놓여 있어서, 경기 장소 자체가 매우 넓은 편입니다.

(사진: 벨기에 스파-프랑코샹 서킷)
위와 같은 넓은 서킷 곳곳에, 수백 명의 안전요원 겸 진행요원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들을 마셜(marshal)이라 부릅니다.

(사진: 마셜들이 벽을 들이받은 샤를 르끌레르(페라리)의 차를 수습하고 있습니다. 옆에 파란 헬멧을 쓴 사람이 르끌레르 선수입니다. 참고로 이 선수는 고국인 모나코에서 항상 사고를 낸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는데, 사진은 2021년 예선에서 1위를 확보한 뒤 어김없이 사고를 낸 모습입니다. 결국 르끌레르의 차량은 본선 시작 직전 기능고장을 일으켜 예선 1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그대로 리타이어했습니다.)
수백 명의 마셜들이 경기 본부, 20명의 선수, 그리고 10개의 팀과 소통해야 합니다. 선수들은 또 각자의 팀과 지속적으로 교신해야 하고, 팀들은 또 나름대로 선수 및 경기 운영측과 소통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 해외의 전략팀, 분석팀 등과 소통하며 경기를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위와 같은 정신없는 상황에서, 경기 운영 및 상황, 특히 안전에 관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깃발입니다.
서설이 길었는데, 아래에서는 F1에서 사용되는 주요 깃발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일부 항목에는 괄호를 사용하여 직관적인 의미를 병기하였으니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1. 녹색 깃발
정상 상황을 나타냅니다. 사고 처리가 끝났을 때나, 레이스 시작 직전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2. 황색 깃발
위험 상황을 나타냅니다. 차량이 기능고장으로 멈추거나 느려진 경우, 사고가 발생한 경우, 세이프티카(사고처리 등을 위해 차들이 추월 없이 천천히 달리도록 인도하는 차량)가 나오는 경우, 기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사용됩니다. 황색 깃발을 본 드라이버는 서행하며 장애물 등을 회피할 대비를 해야 하며, 추월이 금지됩니다.
마셜이 두 개의 황색 깃발을 꺼내든 경우(double yellows), 드라이버는 속도를 더욱 낮춰야 하며, 필요하다면 정지할 대비를 해야 합니다. 사고차량이나 기타 장애물로 트랙의 전부/일부가 가로막힌 경우, 또는 마셜들이 트랙을 오가며 작업 중일 때 사용됩니다.
3. 청색 깃발 ("야비켬마")
아마 드라이버들이 가장 싫어하는 깃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위가 낮은 차량이 앞선 차량에게 한 바퀴 또는 그 이상 따라잡혔을 때, 선순위 차량의 경주를 방해하지 말고 비켜주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분노의 질주’로도 알려진 위 영상과 같이, 선두와 후미의 격차가 커 선두가 후미를 뒤에서 따라잡아 버렸는데 후미가 비켜주지 않는다면, 선두는 순위가 앞섰음에도 해당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해야 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청색 “야비켬마” 깃발이 사용됩니다.
4. 흑백 깃발 ("소인배")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드라이버에게 제시됩니다. 이를 무시하고 해당 행동을 반복할 경우, 아래에서 설명될 흑색 깃발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5. 흑색 깃발 ("너 나와")
실격입니다. 위 사진과 같이 드라이버의 번호와 함께 제시되며, 실격된 드라이버는 정비고(피트)로 즉시 들어가야 합니다. 2007년 이후 사용된 적이 없으니, 근래에는 매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적색 깃발
경기가 중단됩니다. 날씨가 매우 나쁜 경우, 트랙의 상태가 레이스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큰 사고가 발생해 뒤처리에 많은 작업이 요구되는 경우 등 사용됩니다. 적색 깃발이 제시되면 레이스가 즉시 중단되며, 이후 재개될 경우 깃발이 제시될 때의 순위대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차량 간의 격차가 사실상 무효화되기 때문에, 이러한 ‘리제로’ 효과는 상황이나 전략에 따라 특정 드라이버에게 신이 내린 기회, 또는 최악의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7. 흑색/주황색 깃발 ("야 안 죽어 → 나대지 마;") (리버스 일장기)
기능고장이 발생한 드라이버에게 제시됩니다. 해당 고장이 레이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강제로 정비고에 들어가 정비를 받게 하는 조치입니다.
8. 체크무늬 깃발(체커드 플래그; “시마이”)
가장 전설적인 사례가, 애플 CEO 팀 쿡입니다. 무슨 마네킹마냥 깃발을 흔들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 영상의 전반부처럼 신나게 흔들어줘야 합니다.
이렇다보니 차라리 팬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하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하네요.
이상, F1에서 사용되는 깃발들의 의미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F1 중계를 보다 보면, ‘~~깃발이 나왔다’는 얘기가 꽤 자주 들리며, 많은 경우 (특히 자주 사용되는 깃발들은) 그 의미가 따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각 깃발의 의미를 숙지하고 있으면, F1 경기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많은 분들이 F1을 즐기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과, 본문이 그 소망의 실현에 미약하나마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밝히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