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코) 기괴한 조선 괴담들

미방
기괴한 조선 괴담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머니가 쓰셨던걸 가문이 줄줄이 필사하는 약간 이상한 풍습? 이 있는데, 대부분이 그냥 좋은 말들.
근데 그 중에 약간 기묘한? 기록같은게 많아서 써보려고요.
한문을 잘 모르셨는지 문법상 이상한게 많은데, 일단 제가 번역하는건 아버지가 딱 제 나이때 필사하신 글.
주작냄새나도 한번만 봐주세요. 그냥 묵혀두기 아까움
몇개씩 계속 가져올게요. 번역 이상한건 그러려니 해주셈...
부소(扶蘇)라 불리던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실로 기이하고 사람의 속은 모르는 것이 많다.
여기 현이 아직 없었을 시절에 부소 도체찰사(都體察使)로 부임하던 시기 유후(留後) 시절로, 참으로 기기묘묘하며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으니, 그 내용이 이렇다.
휴행 김철염(金哲廉)이 이르기를, 처제 하나가 납월(臘月)에 졸도하여 숨이 끊어진 채로 지나가던 낭객에게 발견되었으니 그 모습이 기괴함이 천간(天干)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귀가 있을 곳에 코가 있고, 코가 있을 곳에 귀가 있으니 이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비(耳鼻)를 꿰어붙인 그 조잡함이 이를 데 없이 허무맹랑하였고, 단면은 매끄러이 잘려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전했다. 이를 들은 안전(案前) 이참붕(李叅繃)이 말하기를,
"필경 사람의 소행이 아닌 것 같으니 시신을 참(斬)해 반 구는 동진봉(東進鳳)에 고이 묻고, 나머지 반 구는 동쪽 남(男)에 가져다 묻어라." 라고 하였다.
이것을 들은 김철염이 인간의 도리로써 차마 시신을 참(斬) 할 수 없어, 시신에서 떼어낸 코와 귀는 동진봉에 묻고, 시신은 남에 묻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섬묘(纖妙)하게도 동진봉에서는 한겨울 까마괴가 울고, 남에서는 피오리가 울었다.
그때서야 김철염이 깨우치기를 "아, 이는 인간의 시신이 아니로구나!" 싶어, 다시 코와 귀를 붙여 그 시신을 참한 뒤 안전의 명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이틀 뒤 안전이 김철염을 육순(陸筍)으로 불러 이르기를,
"너가 내 명을 듣지 않았으니 나 또한 처참히 죽겠구나. 김철염을 이와 같이 참(斬)해 아래는 동진봉에 묻고, 목은 남에 묻도록 하여라." 하였다.
김철염이 겁에 질려,
"무슨 말씀이시오?, 저는 안전의 명을 필시 따랐을 따름이오. 동진봉의 까마귀가 운 것은 겨울의 바람이 그것들을 몰고 왔음이요, 피오리의 울음은 야인(野人)을 보고 놀란 것이리오다." 라고 하였음에, 안전이 원통하여 읍소(泣訴)를 그치지 못하고 이르기를 아래와 같았다.
"동진봉의 까마귀가 운 것은 내 반드시 코가 베일 것음 암시하는 것이요, 남의 피오리가 흐느끼는 소리는 내 시신이 들짐승에게 버려질 것을 뜻하는 것이리로다.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아, 나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구나."
이를 들은 김철염 또한 수긍하고, 조용히 목을 내었으니 이 때가 청석(靑石)에서 단사(斷事) 홍은(洪恩)이 일을 맡던 때였다.
후에 안전 또한 역적으로 몰려 홍은의 손에 귀와 코가 잘리고, 들짐승에게 버려졌음에 정말 이와 같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거창(居昌)에 김준(金俊)의 처 최섬순(崔贍恂)이 경신년 8월에 목을 매어 죽었다. 헌데 그 사인(死因)이 참으로 이상하다.
영천(瀯川)에 있는 뻘뭍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음에, 그 본가(本家)로부터의 거리가 반 리나 되었다.
시신을 끄집어내니 그 무게가 너무도 가벼웠는데, 재보니 그 무게가 6근(斤)에 살가죽 아래 내용물이 없었다.
발견자 심원균(沈轅勻)이 발견한 것도, 도성에서 시체 빼던 일을 하던 자였음에 간신히 알아낸 것이라고 하는데, 심원균이 말하기를 이런 시신을 두어번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사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려지만, 이런 시신이 여러 구 존(存) 한다는 것이 실로 기이하지 않은가?
민간 속설에, 염희(蠱姬) 라는 것이 있는데, 그 머리가 두 개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기생 옥주(玉珠)가 조선 성종때 보았다고 하며, 남흥(南興)에서는 머리가 세 개에 눈이 각각 한개라고도 한다.
염희를 만들 때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으니, 하나는 직접 육신을 염희로 만드는 것이오, 하나는 남을 염희로 만들어 조종하는 것이다. 그 세세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자신을 염희로 만들 때에는 우선 군웅(群雄)칼로 홀 목을 얕게 그어, 그 피를 최대한 반우(飯盂 - 그릇의 일종)에 담아 모은다.
그리하면 곧 피가 흘러 넘칠 때 즈음, 반우에 미리 준비한 묘(苗)의 머리를 담아 그 피에 적신다. 그리하면 그것이 묘염(苗蠱)이라는 것이 되는데, 속(速)히 이루면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앉는다.
그 후 만들어둔 묘염을 이틀간 집 깊숙한 곳에 고이 모시면, 이틀 되는 날에 그 주인이 죽는다. 그리하면 그것이 염희가 되어 속세를 떠돌다니지만 그 혼은 묘염을 벗어나지 못하니, 그것을 찾아 으깨버리면 염희는 없어진다.
다른 방법은 남을 이용하여 염희를 만드는 것이니, 이 방법이 실로 잔악하고 무도하여 보통 범인은 따라하지 못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목에서 피를 긁어모아 이틀간 묘염을 만드는 것인데, 어린아이의 혼일 수록 더욱 좋다고 한다.
궐지(闕支)에 사는 동후윤(冬厚閏)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자임에, 하루에 수 명의 아이를 모아 가둬놓고 이틀간 그 목에서 피를 뽑아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잔악무도한 일인가.
인조 원년 7월 사열이견(沙熱伊絹)에서 알 수 없는 괴이(怪異)가 나타났는데, 파견사 류지어(留紙魚)가 지나가던 소자(小子)에게 물으니 그것이 흑석(黑席)이라고 하였다.
이 동리(同里)에서는 이미 유명한 것인데, 죽은 사동(死童)의 원혼이 모이면 만들어 지는 것이라 한다.
그 형상도 기이해 몸을 기괴하게 비트며 움직이는데, 흑안적발(黑眼赤髮)을 가졌다고 하여 어떤 지역에서는 흑구미(黑狗眉)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본 자는 닷 새간 황열(黃熱)에 시달리다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만, 참으로 그 모습이 기이하여 닷 새는 더 천고(千苦)를 겪는다. 이에 걸리면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지역 민간에 규몽(叫夢)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이 흑석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몽매(夢寐)라고 하니 참으로 기이하다.
조선 태조때 을아단(乙阿旦) 동쪽 별퇴(別退)에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지경(地境)에만 들어가면 달이 보이지 않았는데, 묘시(卯時)에 대훈도(大訓導) 황금(黃嶔)이 들어보니 양광(陽光 - 태양빛)은 별 지역과 다름이 없었다.
이것이 세종 3년까지 계속되더니, 이윽고 달이 다시 떴다. 당금(當今 - 당시) 을아단은 태조때 가난함이 극에 달했다 하니, 참으로 기기묘묘한 일이다.
이 지경을 황금이 이르기를, 교봉산(皎峰山)이라 칭하고 4년간 폐산으로 삼아 백성의 모든 출입을 금했으며, 교백(皎栢)이라 하는 나무를 심었다.
이것들이 자라 작은 수목산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졸사(猝死)하였다고 하여, 후에 다시 모두 베었으니 이때가 세종 때의 일이다.
북우이(北亏尒) 남쪽으로 5리 하고도 반 되는 곳 깊은 굴에 성산독(城山瀆) 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그 구멍의 준설(浚渫 - 깊이를 조금 과장한 표현)이 끝이 없어 빠지면 나올 수 없다.
인조 14년 이곳에 축(築 - 벽, 여기서는 장판)을 세웠으며 그 너비가 길게 세워 일곱 뭇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근교에서 쑥을 캐던 열 두 살 옥부(玉婦)가 떨어져 죽음에 말미삼았다.
그런데 인근 동리(同里) 사람들이 이르길, 밤마다 성산독에서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난다는데, 이것이 실로 섬묘하다.
저 멀리 가면 끅끅(漣然 - 눈물 흘리는 소리, 의역) 대며 울던 것이 가까이 오면 깔그락(雅雅 - 웃는 소리, 의역) 대며 웃기 시작하는 것으로, 더욱 섬묘하기를 이것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 중 아이 소리도 있고, 오래된 장정의 소리도 있으니 동리 사람들 사이에서 홀리지 말라 이야기가 윤체(輪替) 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