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침잡] 한국의 이소룡, 1970~80년대의 톱스타 신일룡 배우에 대하여
“한국의 이소룡, 잘나가던 액션배우”

1970~1980년대 액션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신일룡씨는 197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이조괴담'으로 데뷔 한 후 16년 간 <평양폭격대>, <섬개구리 만세>, <총각선생>, <석양에 떠나라>, <아라비아 열풍> 등 영화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큰인기를 구가했다.
당시만해도 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서구적인 외무를 지닌 배우가 드물었고 여기에 잔근육이 매력적인 몸매에 연기력까지 더해진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홍콩 쿵푸 영화계의 신화 브루스 리(이소룡)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의 대역배우로 뽑혀 홍콩영화계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한국·홍콩 합작 영화 '신 당산대형'에선 배우 재키찬(성룡)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더불어 제15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0회 청룡영화상 신인연기상도 모두 싹쓸이 하며 당대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1984년 영화 <애마부인2>는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1986년 영화 <황진이>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고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카지노 사업의 실패”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시절부터 외식 사업을 시작했는데 1970년대 남산에 있는 하얏트 호텔 인근에 '그린빌'이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레스토랑을 한두 개 늘려갔으며, 봉제 공장까지 차려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샤롯데'라는 브랜드에 납품하기도 했다. 이때 영화배우로서 얻은 수익보다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훨씬 더 많을 정도라고 했다.
본업은 사업가, 영화배우는 부업이라고 말할 만큼 사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그였다.
문제는 그가 7년동안 홍콩 영화계에서 활동하면서 불거졌다, 밤마다 마작을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던 홍콩에서 도박을 처음 접한 신일룡씨의 뇌리에는 단연 카지노 사업이 꽂혔고 아니나 다를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제주도 중문단지에 번듯한 카지노 호텔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기에 이르렀다.
레스토랑이며 봉제공장을 전부 팔아 중문단지 땅부터 매입해 건물들을 하나하나 지으며 올인 한 그였지만 불행하게도 제일 중요한 카지노 허가가 불발되고 말았다.
그렇게 제주도 카지노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크게 실패한 뒤 전재산을 다 날린 그는 2년의 세월을 방황하게 된다.

“눈물 젖은 호두파이”
그렇게 방황을 거듭하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신일룡씨, 여의도의 작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기가 막힌 과자 굽는 향이 자신을 반갑게 맞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아내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큰 아들이 과자를 구워줬다고 할 뿐 이었다.잠시 후 잠도 오지 않던 새벽, 일어나 주방에 갔더니 남은 과자가 있어 먹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자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아들에게 이 과자가 무엇이냐고 묻자 호두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내가 돈이 없어 매일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해 몸이 많이 야위었다고 하더군요. 외국으로 유학갔던 큰 아들이 대학을 포기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엄마를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대요. 무엇이라도 먹여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집에 있는 재료를 뒤졌는데 제일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이 호두파이였던 거에요. 요리도 잘 못하는 녀석이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를 겨우 찾아 따라 만들었다고 합니다. 19살 먹은 애가 엄마 살리겠다고..... 가족들이 서로를 붙잡고 참 많이도 울었지요."
다행히 그의 아내는 호두파이를 먹은 후 건강을 회복했다. 이에 아들이 만든 호두파이를 옆집과 앞집에 나눠줬다는 그는 나중엔 하나에 만원씩 받고 팔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맛본 호두파이 맛에 반한 이웃들이 먼저 판매를 제의,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 신일룡의 호두파이 사업의 시초가 되었다.

현재 청계산 본점과 압구정점 두곳을 운영 중이며 방문 손님이 많아지며 향후 체인점 형식으로 확장해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때는 영등포구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 봤다는 신일룡씨, 망해 본 사업이 없었다는 그는 카지노 호텔도 본인이 하면 될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절대 요행을 바라면 안 돼요. 자기가 잘 아는 것에만 도전해야 합니다. 저 역시 고스톱도 잘 못 치면서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어 쓴맛을 보았잖아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러한 뼈아픈 경험이 다 제게 살이 되었습니다. 자만심과 허영심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어요."
욕심을 내려놓은 지금이 과거보다 더 행복하다는 그는 매일 아침 등산 후 매장에 와 아들을 생각하면서 호두파이 반죽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세상을 떠날 때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공생하는 삶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소원했다.
이렇듯 영화배우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신일룡씨는 간암으로 인해 2022년 5월 26일 오전 73세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오늘은 저번 배도라지 합방 중 라이어 게임때 큰 임팩트를 남겼던 신일룡 배우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접해 본 인물인데 영화도 잘 안보는 방장이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신기하네요 이상 “알아두면 쓸데없는 침착맨 잡학사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