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 세계숲

세계적인 여성 식물학자이자 나무의 의약적, 환경적, 영양적 성질에 정통한 전문가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가 숲과 나무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고대 인류의 생태적 지혜를 시적 산문으로 엮어낸 책.

저자는 나무의 생리뿐 아니라 지질학, 물리학, 화학, 의학, 식품영양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나무가 인간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동식물과 행성 지구에 미치는 이점을 연구해 왔다.

‘시인의 언어로 말하는 과학자’ 베리스퍼드-크로거는 과학적 엄밀성을 탄탄한 기초로 삼되 그 위에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예언적 통찰이나 고대 켈트 전통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이러한 독창적인 서술 방식은 나무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지식에 접근할 때 부딪힐 수 있는 장벽을 낮춰주며, 오히려 나무의 세계로 분석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다.

이 책은 ‘세계를 품은 전체이면서 세계를 초월하는 하나’인 숲의 재생만이 우리의 부서진 삶을 회복시키고 서로를 건강하게 연결해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간 우리가 몰랐던 나무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아냄으로써 숲과 나무의 위대함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나무가 행성 지구에 아낌없이 선사하는 먹여 살림과 치유, 돌봄과 연결, 그리고 뭇 생명의 평안이 모든 페이지마다에 ‘숲의 경전’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목차

머리말

생명의 색
멋진 사바나
마법의 나무
지속 가능성을 위한 청원
초자연적인 것
즐거운 나의 집
영웅과 호르몬
견과 한 줌
숲, 요정, 아이
토착민
생물다양성을 위한 바이오플랜
웃으렴, 원숭이야, 웃으렴
포유류를 위한 약
사랑하는 엄마
숲의 꽃
숲과 예술에 대하여
기후 변화에 대한 대화
종이의 습격
향기
섞어짓기
“빛이 있으라”
성스러운 나무
숲의 식량
생울타리 천국
숲의 경고
침묵의 소리
약용 나무
성 혁명
나무의 숨쉬기
견과유와 견과유지
보이지 않는 숲
지구 온난화
새와 벌
꿈의 세계
지의류의 결혼
식물의 섹스
더러운 빨랫감
열정을 발휘하여
약초 찾기
숲과 불의 수호자

감사의 글
참고 문헌

숲은 보금자리다. 세계정원의 모든 숲은 미생물, 곤충, 새, 포유류, 식물의 보금자리다. 이 보금자리는 모든 생명에게 중요하다. 어느 종도 나머지 종보다 낫거나 못하지 않다.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 벌 한 마리, 늑대 한 마리도 꿈꾸거나 죽을 권리가 있으며 경이로운 삶을, 나름의 독특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보금자리에 대한 권리는 시간의 끝까지 간직된다. 숲에는 다양성을 증폭하는 어림셈 법칙이 있다. 나무는 종마다 약 40종의 곤충을 먹여 살린다. 곤충은 특정 수종의 생장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숲은 생물다양성을 실현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온갖 범위에서 다양성을 폭발시키고 증폭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패턴을 수놓는다. 건강의 토대를 놓는다. (67쪽)

 

많은 북아메리카 견과는 도토리를 닮은 겉껍질이 있다. 겉껍질은 쉽게 볼 수 있는데, 성숙하면 초록색이다가 땅에 떨어지면 금세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바뀐다. 겉껍질 표면에는 미세한 주름이 나 있다. 흑호두나무와 백호두나무의 주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샘털에 폭발성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것이다. 어떤 화학물질은 요오드계로, 매캐한 요오드 에어로졸을 주변 공기에 내뿜는다. 이것은 방어용 생화학물질이다. 어린아이는 초록색 흑호두를 쥐고 있기만 해도 소아 백혈병으로부터 보호받는다. 하지만 북아메리카 견과종의 모든 겉껍질이 그와 같은 표면을 가지고 있는데도 과학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84쪽)

 

세계숲을 벌목하는 것은 아이의 시각에서는 순전히 미친 짓이다. 숲나무의 목숨을 빼앗는 무분별한 고의적 파괴 행위다. 새들의 둥지를 사라지게 하고 먹이도 빼앗는다. 나비는 아름다움을 뽐낼 곳을 잃는다. 더는 비단결 날개에 아로새겨진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 숲의 대형 동물도 사라질 것이다. 작은 짐승들은 숨을 곳이 없다. 잠자고 털을 다듬을 곳도 없다. 달팽이와 민달팽이는 집을 끝없이 옮겨야 할 것이다. 시간을 잊은 기나긴 어린 시절에 아이가 오를 나무, 그네 줄을 묶을 나무가 사라질 것이다. (93쪽)

 

오염 되돌리기와 환경 안정화의 전체론적 정답은 바이오플랜이다. 바이오플랜은 자연의 닳아 해어진 요소들을 다시 뜨개질하여 우리의 생각에 담는다. 지니를 램프에 도로 집어넣지는 못하더라도 불행을 못 나오게 할 수는 있다. 시간도 새로운 안전망이 되어줄 것이다. 이것은 유전 부호에 나름의 완충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체계가 효소를 유도하고 억제하여 벌에서 인간까지 모든 생명체의 모든 메커니즘을 치유하는 마법을 부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109쪽)

 

덥고 습한 여름날 일벌이 나뭇진을 찾아다닌다. 큰턱으로 나뭇진을 떼어내어 벌집에 가져간다. 벌이 내려앉은 자리에 나뭇진이 철퍼덕 떨어져 있는 게 보인다. 벌들은 나뭇진을 벌집의 밀랍과 세심하게 섞은 다음, 침입을 막기 위해 벌집을 밀봉하고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데 쓴다. 벌집에 들어온 외부 곤충을 포박하는 데에도 쓴다. 침입자를 밀랍에 묻어버리면 벌집의 나머지 부분은 병균으로부터 안전하다. 꽃가루받이 곤충은 작고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수십억 마리로 증식했으며 생명의 사슬을 잇는 핵심 고리다. 이 곤충들이 건강을 잃으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꽃가루가 없으면 씨앗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좋은 작물의 작은 씨앗 하나하나 안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부엌이 있고 농장에 또 다른 봄이 찾아오리라는 약속이 있다. (123쪽)

 

나무와 식물이 포유류처럼 따뜻한 피를 가졌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따뜻한 피 맞다. 남쪽 지평선에서 봄의 태양이 떠오르면 나무는 줄기부터 데워진다. 여기에는 수동적 흑체 효과가 작용하지만 이 수동적 상태의 위쪽에서 일부 나무는 대사 활동이 뚜렷이 증가하기도 한다. 나무줄기의 앞치마 부위를 감싼 덩이줄기, 뿌리줄기, 알줄기의 야생화 개체군이 이 발열 효과를 활용한다. 이 예열은 식물을 휴면에서 깨어나게 한다. 곤충이 일조할 때도 많다. 꽃봉오리와 꽃을 붙들어 맨 겨울의 당糖 접착제를 녹여 생장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커다란 어머니 나무는 이 섬세한 봄 예열을 작은 나무보다 효과적으로 해낸다. (129쪽)

 

세계정원은 모두 합쳐 무려 8만 종이나 되는 식물을 식량으로 내어준다. 하지만 산업적 식품 재벌의 시선은 20종의 식물에 고정되어 있다. 이 식물들이 최근 우리의 지구적 식량 공급원이 되었다. 간편 음식이 유행하면서 가짓수가 더 줄었다. 8만 가지 가능성 중에서 여덟 종의 식물만 남았다. 전 세계가 단 여덟 종의 작물에 어깨를 기대고 있다. 나머지 7만 9992종에 대한 구전 지식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미래 세대는 이 식물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유명한 여덟 가지 작물은 밀, 벼, 옥수수, 감자, 보리, 카사바, 고구마, 콩이다. 이것들은 압착되고 분쇄된다. 판매용으로 포장되고 치장된다. 채색되고 변형된다. 산업적 시장의 발톱을 위해 꾸며진다. 진짜 영양소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첨가당, 소금, 지방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투입된다. 변형된 식품은 너무 쉽게 소화되어 인체에 독성 반응을 일으킨다. 세계숲에서 나온 식품은 도시화 경쟁에서 잊혔다. 한때 세계의 구황목으로 불린 나무들이 무시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망각되고 있다. 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어떤 것은 멸종에 이른다.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