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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의 엣헴~넘버, 에르되시 수

정수론민수
22.12.08
·
조회 706

수학자라 하면 혼자서 고뇌하는 이미지가 있다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수학에선 협업이 엄청나게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어. 덕분에 요즘 나오는 수학 논문은 단독 저자가 거의 없고, 대부분 공동 저자로 출간되지.

 

재미있는 건 수학은 제 1 저자, 제 2 저자라는 개념이 없어.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다면 모두 제 1 저자로 올라가고, 심지어 중요도 순으로 이름을 배치하기보단, 알파벳 순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누가 더 기여를 했나 보기보단, 이들이 모두 기여를 했구나 하고 봐줘.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협력연구를 한 수학자는 누구일까? 그 사람이 바로 헝가리의 전설적인 수학자 에르되시 팔이야. (헝가리는 한국처럼 성이 앞에 와. 그래서 성이 에르되시, 이름이 팔이야. 영어로는 폴 에어디쉬라고 불려.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욕이 되니 주의할 것!)

20세기 최다 협력 연구로 전설이 된 수학자 에르되시 팔(Paul Erdos)

 

워낙에 특이한 기행으로 전설적인 일화가 많은 인물이야. 수학계의 방랑시인이랄까. 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보단, 여러 수학자들의 집을 전전해가며 식객살이를 했다고 해. 매일 같이 연구하다가 결과가 나오면, 다른 수학자 집으로 넘어가고 이런 식으로.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면 에르되시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말이 수학계에 있었을 정도로.

 

덕분에 그가 참여한 논문만 약 1500편, 같이 공동저자로 일했던 사람은 511명이야. (참고로 가장 많이 단독 논문을 출간한 수학자는 오일러야. 800편이 넘게 출간했지.)

 

에르되시 덕분에 수학계에는 특이한 전통이 생겼어. 바로 에르되시 수(Erdos Number)야.

 

먼저 에르되시 본인은 에르되시 수가 0이야.
에르되시와 공동 연구를 해본 사람은 에르되시 수가 1이야.
에르되시 수가 1인 사람과 공동 연구를 해본 적이 있다면, 에르되시 수가 2가 주어져.

 

즉 에르되시 수는 몇 단계를 거치면 에르되시에 도달하는가를 알려주는 지표지.

 

에르되시 수 간단 요약

 

워낙에 에르되시가 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한 덕분에,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에르되시의 수를 많이 갖고 있어.

 

물리학계의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은 에르되시 수가 2고, 엔리코 페르미, 볼프강 파울리, 막스 본, 유진 위그너, 리처드 파인만, 머레이 겔만, 에드워드 위튼은 에르되시 수가 3이야. 물리학 말고도 생물학, 금융, 철학, 법학, 정치학, 공학, 언어학 분야에서도 에르되시 수를 보유한 사람들이 있지.

 

세계 최대 수학 연구 데이터베이스 Math Sci Net에도 에르되시 수 계산기가 있다!

 

사실 필자 본인도 에르되시 수가 있는데 4야. 내 지도교수가 3, 내 지도교수의 부인 분도 수학자신데 2, 그 부인분의 지도 교수가 1, 즉 에르되시와 협업을 한 적이 있지. 사실 지금쯤 졸업을 앞둔 정수론 계통의 대학원생들은 대개 4~5정도 되는 것 같더라구.

 

심지어 에르되시 수를 갖고 있는 고양이조차 있어. 미시간 주 대학의 물리학자 헤더링턴(Hetherington)이 단독 논문을 출간했는데, 주어를 다 We로 표기했지. 주어를 일일이 다 I로 교정하기 귀찮았던 그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에게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공동 저자로 올렸거든. 헤더링턴 본인이 에르되시 수가 6이었기 때문에 고양이에겐 7이 주어졌지.

 

에르되시 수 7인 F. D. C. Willard의 늠름한 자태

 

또 유명한 일화인데, 에르되시 수가 4인 어떤 사람이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ebay에 '자신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판 적이 있었어. 즉 '너가 연구를 하면, 내 이름을 공동 저자로 올려줄 수 있게 해주겠다. 그럼 너는 에르되시 수가 5가 된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꼬드긴거지. 이 경매는 1000불에 낙찰되었는데, 그 입찰자는 사실 에르되시 수가 3이었어. 오히려 더 높았던 셈이지. 입찰자는 '이딴 짓거리 하지 마라'는 경고의 차원에서 스스로 입찰한 거였대.

 

물론 에르되시 수를 연구 실적으로 진지하게 보는 학자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걸 진지하게 원하는 개인은 있을 수 있지. 그런 마음을 이용해먹는 사기꾼이 더 이상 나타나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 경매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이야기야.

 

오늘은 이렇게 수학자들의 특이한 전통이자 기행인 에르되시 수를 소개해봤어. 반응이 괜찮다면, 다음에도 재미있는 수학자 이야기나 수학계 소식들을 가져와볼게. 그럼 수바~!

댓글
궤착맨
22.12.08
우와 시 팔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2.12.08
에르되시 팔님처럼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보아요.
궤착맨
22.12.08
Zzz..
@정수론민수
길잃은바이킹
22.12.08
공동저자의 기여도를 동일하게 취급하는건 문화인가요? 아니면 어떤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되있나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2.12.08
제 나름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수학은 비싼 실험 장비나 연구실이 필요 없고, 그래서 펀딩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래서 협력연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그래서 연구 기여에 위계라는 개념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타 과학의 분야는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연구 제안을 하고, 펀딩을 받아내고,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인력에게 연구를 모듈화할 수 있습니다. 이 대학원생에겐 A파트, 저 연구원에게 B파트 이런 식으로 분배하고, 그것을 나중에 한번에 취합합니다. 당연히 연구의 규모는 크고, 그래서 연구의 기여한 정도를 객관적으로 정량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은 다릅니다. 아무리 협력 연구가 많이 꽃핀다 하지만, 10명 이상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손에 꼽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두를 제 1 저자로 삼아도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증명하기 위해 각자가 아이디어를 가져오지만, 대부분은 그 모든 아이디어들이 짬뽕되었을 때 가장 훌륭한 증명이 나오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기여한 정도를 정확히 딱 나눌 수 없지요. 제 생각엔 그러한 이유로 모든 저자 동일 공로를 인정하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Polymath project라고 수십 수백명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냥 가명으로 논문을 출간한 적도 있지요. 좋게 말하면 정말 수학 그 자체를 위한 연구죠. 하지만, 커리어를 쌓아야 할 젊은 수학자들의 공로를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수학 연구자들이 공동 저자 기여도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미국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바, 공동 저자 동일 기여도를 미덕처럼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궤소리방정식
22.12.08
띠용 이산수학 교수님 에르되시 수가 2였네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군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2.12.08
현직 장년 교수님들 중에서 특히 정수론/조합론 쪽을 하신다면 에르되시 수가 2~3정도 되시는 것 같습니다.
부뚜막킹냥이
22.12.08
이번에 필즈상 타신 허준의 교수님은 3이라고 하네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2.12.08
오 그렇군요. 여기에도 적혀있군요!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eople_by_Erd%C5%91s_number
서망고
22.12.08
전 다른분야긴 한데 살짝 걸친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5로 나오네요ㅋㅋ 신기
수학민수
22.12.08
재밌는 글 감사하다~
궤도
22.12.08
좋은 콘텐츠 감사해요 :)
정수론민수 글쓴이
22.12.08
저야말로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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