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한 철학적 사유를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이성의 윤리학)
내가 생각하는 윤리학.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발견하고자 하는 깨우침과 진리란 무엇인가.
뭘까요?
제가 몇 시간 전 올렸던 사고 실험같은 질문과
그것에 대한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내가 추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그 개념을
명확한 언어로 확립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그 대화의 과정이예요.
제가 무언가를 깨우치는 과정에 설명을 달아봤습니다.
사실, 이 재미 없는 긴 내용을 읽어주실 분이 없을 것 같지만,
그냥 제가 추구하는 진리의 개념과 이성의 윤리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올려봅니다.
3줄 요약도 첨부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이성의 윤리학은 그냥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무슨 학술적인 이런건 아녜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면 댓글로 마구 질문해주세요.
원래 한 두 개의 텍스트로 남의 철학적 사유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쉽지 않잖아요.///././.~~~

2. 사건이 완전히 가역적이라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임.
완전히 가역적이어서 완전히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행위 아님? 피해를 입은 사람, 행위자 모두 사건에서 없어졌는데 어떻게 없는 행위에 대한 도덕성을 논함?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행위의 비도덕성은 분명히, 그 행위의 결과에 이어져 있음. 행위의 결과가 좋더라도 처벌하는 '악법도 법이다' 같은 논리도 사실상 법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인 것이라, 잠재된 위험까지 포함하여 정말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아무아무아무 일도 아닌게 된다면, 그건 사실상 없던 일과 같은 것임.
따라서, 행위의 영향력으로 비도덕성을 정의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행위의 비도덕성을 정의하는 방식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한,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는 도덕성을 띄지 않음.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얘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냥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정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일단은 제 느낌을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는 예제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쏘았습니다.
침하하에 올린 글(링크)과 같습니다.

반응한 두 명이, 제 질문을 처음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질문을 애매하게 했으니, 당연한 의문처럼 보입니다!!

'아니아니'
아니시에이팅 이 나오죠.
이런 무지막지한 논쟁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천천히 서로의 의견을 맞춰가고 있어요.

이후로, 건배하는 프로도 씨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윤리와 도덕이라는 정의에서 저와 함께 갈팡질팡 하고 있네요.
그래서 제가
윤리와 도덕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는 빼고, 단순히 행동이 옳냐 그르냐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오~ 얘기가 통하는 것 같더니~~
'아니에요.' 라고 합니다.
ㅋㅋ 역시 남의 철학적 사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군요!!
저는 이렇게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상대의 말을 다시 규정하여 확인하는 과정을 즐겨합니다.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고 내가 이해한 걸 확실히 할 수 있어요.

윤리와 도덕이란 현실의 이해 당사자인 인간끼리의 합의나 그러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또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현실이 아닌 제 3자, 즉 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이라는 표현도 뭔가 각자의 신에 대한 편견을 사용하게 되어서 적절하진 않았던 것 같네요.
그래서, 한 번 더 수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차저차 흘러오다보니, 제가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을 비유를 다 빼버리고 직설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상적인 비유로만 표현이 가능하다가,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갑론을박 하다보니 뭐가 궁금한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지요.
행위와 그 행위의 도덕성이란 거는 본질적으로 행위 자체에 엮여 있는 것인지?
아니면 행위의 영향력에 기인하는 것인지?
행위의 가역성이란 것을 설정한 이유도 나왔죠.
행위 자체와 행위의 영향력을 분리해서 생각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건배하는 프로도 씨는 도덕성이란 것은 영향력에 기인하는 것 이라 보는군요!

이제야 서로를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후에 추가되는 얘기들이 있죠.
프로도 씨의 의견을 들었으니 제 얘기를 할 차롑니다.
저도 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시작하게 됐는지.
'난 타인으로써 도덕을 정의하는게 맘에 안들어!'
'왜? 불안하거든.'
건배하는 프로도 씨가 친절하게 되물어 줬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난 이성의 윤리학을 원한다.
지금으로서의 윤리학은 타인으로의 감수성, 혹은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한 궁극적인 의도와 같은 개인이 제외된 논리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불안하다.
왜냐. 타인으로의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궁극적인 의도가 너무 거대하게만 느껴지면 개인은 길을 잃잖아요.
남들로만 채워진 윤리학은, 개인이 '어쩔~?ㅋ' 하면 모두 쓸모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거예요.
불안불안~
프로도 씨는 애초에 윤리학이란 인간 사이에 정해지는 거라서,
그런 건 불가능하다.
라고 말하네요.
그것이 제 말을 들었을 때의 일반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원하는 걸요?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꼭 해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런 생각입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
이제
'내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범우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와 같다.'
라고 하니 진리에 대한 다음 얘기가 시작됩니다.
그런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존재하는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허상인가?

세상이 완전히 고정되었다고 해
그러면 그 상황에서 어떠한 완벽한 결정이란게 존재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세상은 흘러가기에 진리란 도망다니는 유령이며,
우리는 그것을 따라다니며 매 순간 가장 가까워지려고 하는 거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리란 것의 개념.
저는 진리를 위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모든 생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런 진리를 찾아내고야 말고 싶어요.
세상을 좋게 만들고 싶어서요.
암튼, 오늘의 대화입니다.
결국 대화는 건배하는 프로도 씨의 고로코만 으로 끝나게 됩니다.
모든 얘기란 결국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ㅎㅋ
레슬링에 그레코로만 레슬링이라는 종목이 있는데요. 네. 암튼 그렇다구요.
고로코로만 레슬링
오늘도 저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대화를 열심히 해줘서 참 고맙읍니다
건배하는 프로도씨.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