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가 생각하는 수학 발명vs발견 논쟁
수학이 발견인가 발명인가에 대한 글을 보고,
아 이거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젠데, 제 생각도 정리해볼겸, 수학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소개해줄겸 해서 글을 적어봅니다.
먼저 제 의견을 요약하자면, ‘수학은 발명의 여지도 있고 발견의 여지도 있다’ 입니다.
그 이유를 논하기 전에 먼저 발명과 발견의 정의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 국어 사전에 따르면
발명: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
발견: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
정의를 보면 비슷한 느낌인데, 저는 둘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목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명은 ‘인간의 어떠한 목적에 맞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것인 반면,
발견은 ‘인간의 어떠한 목적과도 상관 없이'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수학을 연구할 때에는 어떠한 목적을 두고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그러한 목적과 무관하게 발견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수와 숫자가 있겠군요.
아주 오래전 호모 사피엔스들이 자연을 돌아다니며 수렵과 채집을 하며 자연을 관찰하면서 ‘수’라는 개념을 발견했을 겁니다.
코끼리 1마리, 인간 5명, 나무 2그루, 사과 20개 등, 그것을 떠올리게 해주는 영감의 원천은 자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그 수라는 개념을 쉽게 표기하기 위해 숫자라는 만들었을 겁니다. 즉, 수는 발견, 숫자는 발명입니다.
그렇게 수를 사용하며 사는데, 어느날 부족민들이 채집한 과일들을 나누다가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야, 이거 사과가 여섯개든, 귤이 여섯개든 복숭아가 여섯개든 3명이서 나누면 2개씩 갖네? 이거 신기하네?
이걸 뭐라고 부르면 나중에 써먹기 좋겠다~ 라는 생각에 나눗셈이라는 개념을 발명했겠지요.
하지만 나눗셈을 사용하다가,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야 사과를 5개를 가져오니 4명이서 어떻게 나누지? 한개씩 갖고, 하나를 쪼개볼까? 그럼 이 쪼갠 것을 어떻게 부르지?
사과 하나를 네조각으로 나누며 ¼ 이라는 유리수의 개념을 발견했겠지요. (물론 분수를 사용하진 않았겠지만)
이처럼 발견과 발명이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수학을 이뤄갔을 것입니다.
지금의 수학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들을 다룹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해요.
어떠한 목적에 맞는 개념을 발명하고, 그것을 연구하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 새로운 사실에 기반해 새로운 목적을 세운다. 그리고 다시금 발명한다.
저는 타원곡선이란 대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타원곡선은 원래는 유리수에서 정의된 특정한 3차 방정식을 말합니다. 흔히 다음과 같은 꼴을 하고 있지요.

여기서 a와 b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유리수입니다. (a^3+27b^2은 0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
그런데 어느날 문득 수학자들이 ‘아니 왜 a랑 b가 수여야 돼? 다항식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a와 b가 다항식인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이걸 드린펠드 모듈이라고 해요.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습니다. 이것들이 이제 지금 저희 분야의 수학자들이 ‘발견해야 하는 대상’들이지요.
사실 드린펠드 모듈은 ‘타원곡선을 일반화해보면 어떨까?’라는 굉장히 희미한 목적성에서 제안된 개념이지만
그것이 제시하는 새로운 발견거리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그리고 이 발견들을 효과적이게 서술하려면, 또 새로운 개념이 발명될 필요가 있겠지요.
조금 신나서 설명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발명과 발견이 둘 다 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제 수업하러 가야해서 이만
덧) 수업때문에 좀 급하게 마무리했지만, 어느 일개 대학원생의 입장일뿐임니다. 수업 끝나고 돌아와서 멘트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