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수와 최근 정수론 동향 (및 다음번 필즈상 수상자 예언?!)
20세기 전기의 가장 유명한 정수론 학자를 꼽으라면…
아마 영국의 하디와 인도의 라마누잔을 꼽지 않을까 싶어.
하디는 엘리트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영국을 대표한 수학자가 된 케이스인데 반해
라마누잔은 독학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 수학자였지.
인종을 초월한 둘의 우정은,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그려지기도 했어.
라마누잔은 하디의 초청으로 영국에 와서 수학을 연구하는데, 기후도 식생활도 다르다보니 병원에 입원하게 된 적이 있었어.
하디는 자신의 친구 라마누잔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지.
막상 병원에 와서 보니 대화 소재가 떨어졌는지 하디는 머쓱해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대.
“내가 병원에 올 때 탔던 택시 번호가 1729였는데, 참 별 볼일 없는 수이지 않나?”
그러자 라마누잔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어.
“아녜요 1729만큼 흥미로운 수도 없지요. 왜냐하면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2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인걸요.”
도대체 이게 뭔 소리다냐.
1729는…

이렇게 12의 세제곱 + 1의 세제곱으로 쓰일 수 있음과 동시에 10의 세제곱 + 9의 세제곱으로 쓰일 수 있어.
그리고 1729보다 작은 자연수 중에서 이렇게 두가지 방법으로 쓰일 수 있는 수는 없지.
이 일을 계기로 1729처럼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여러개인 수 중 가장 작은 수’를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 불리기 시작했지.
1729는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2개였어. 그렇다면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3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는 몇일까?
놀랍게도 거의 1억 가까이 가야 그 수가 나와.

방법이 4개라면? 5개라면? 6개라면? 현재까지의 결과는 방법이 6개인 택시 수까지 발견됐어. 그 이상은 ‘후보’만 발견되었고.
물론 가짓수가 아니라 제곱수에 집중하는 문제도 있어. 이를 일반화된 택시 수 문제(generalized taxicab number problem)라고 하는데
세제곱이 아니라 제곱이라면? 네제곱이라면? 다섯제곱이라면?
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는 50이야.

반면 네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자연수는

그렇다면 다섯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자연수는??
놀랍게도 ‘모른다’야. 아직까지 그런 수는 발견된 적이 없거든.
이렇게 주어진 식을 만족하는 정수 해 혹은 유리수 해는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는 정수론의 유서깊은 분야 중 하나야.
이 분야를 디오판토스 방정식(Diophantine Equation)이라고 부르지. 디오판투스라는 그리스 수학자가 이런 문제를 떠올렸거든.

수학 교과서/참고서 한 구석탱이에 항상 소개되는 이 문제의 묘비가 바로 디오판토스의 묘비지.
디오판토스 방정식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문제는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지.

n이 3이상의 자연수일 때, x, y, z가 0이 아닌 정수해는 없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제지만, 해결하는데에는 몇백년이 걸렸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의 역사를 논하는데 빼놓을 수 없어.
이 문제 하나 풀려고 만들어진 기법이나 분야나 새로운 이론이 엄청 많거든.
그러니 디오판토스 방정식이야말로 수학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 문제 하나만 잘 만들어도 그거 풀려고 별에 별 이론이 다 만들어지니까.
최근까지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기법으로는 기하학을 꼽았는데
20세기 메타를 뒤흔든 것이 바로 대수기하학이란 분야거든. 정수론에 거대한 진척을 가져왔지.
그런데 정말 최근에 이 메타를 뒤흔드는 새로운 녀석이 튀어나왔어. 그 녀석의 정체는 놀랍게도 논리학!
아니 논리학이랑 방정식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도 놀랍게도 논리학이 이젠 정수론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어.
논리학의 모델 이론(Model theory)라는 분야가, 정수론의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해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목되면서
1999년, Unlikely intersections라는 분야가 탄생하게 되었어. (수학에서 20년된 분야는 뉴비 취급당함. 수백 수천년 고인물 분야들이 워낙 많아서…)
이 unlikely intersections의 중요한 난제인 앙드레-울트 추측(Andre-Oort Conjecture)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30년 넘은 난제인데, 재작년에 해결되었어. 필라(Pila), 치머맨(Tsimerman), 그리고 샹카르(Shankar)라는 세 명의 수학자가 해결했지.
매번 필즈상 시상식때마다 정수론 분야 수상자가 한명씩 나오다보니,
어쩌면 2026년 정수론 부문에서는 치머맨이 타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조금 있더라구.
다음달 초에 아리조나에서 학회가 있어서 갈 예정이야. 이 학회의 주제는 매년 정수론에서 가장 핫한 분야를 꼽거든.
이번 주제가 unlikely intersections이고, 강연자 네 분 중 두 분이 앞서 앙드레-울트 추측을 해결한 필라와 치머맨이야.
그래서 디오판토스 기하학 학회 다녀온지 얼마 안됐지만 다음달 학회 갈 준비하면서 개 바쁘게 보내고 있어.
(대학원생 업무: 이전 논문 마무리 짓기, 새 연구 시작하기, 연구 발표서 작성하기, 수업하기, 새 학회 준비하기, 세미나 운영하기, etc.)
학회 준비하면서 논문 읽는데 머리좀 식힐겸 해서 글 써봤어.
요약) 택시 탈 때 번호판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