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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수와 최근 정수론 동향 (및 다음번 필즈상 수상자 예언?!)

정수론민수
23.02.16
·
조회 3514

20세기 전기의 가장 유명한 정수론 학자를 꼽으라면…

 

 

아마 영국의 하디와 인도의 라마누잔을 꼽지 않을까 싶어.

 

하디는 엘리트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영국을 대표한 수학자가 된 케이스인데 반해

 

라마누잔은 독학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 수학자였지.

 

인종을 초월한 둘의 우정은,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그려지기도 했어.

 

 

라마누잔은 하디의 초청으로 영국에 와서 수학을 연구하는데, 기후도 식생활도 다르다보니 병원에 입원하게 된 적이 있었어.

 

하디는 자신의 친구 라마누잔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지.

 

막상 병원에 와서 보니 대화 소재가 떨어졌는지 하디는 머쓱해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대.

 

“내가 병원에 올 때 탔던 택시 번호가 1729였는데, 참 별 볼일 없는 수이지 않나?”

 

그러자 라마누잔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어.

 

“아녜요 1729만큼 흥미로운 수도 없지요. 왜냐하면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2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인걸요.”

 

도대체 이게 뭔 소리다냐.

 

1729는…

 

 

이렇게 12의 세제곱 + 1의 세제곱으로 쓰일 수 있음과 동시에 10의 세제곱 + 9의 세제곱으로 쓰일 수 있어.

 

그리고 1729보다 작은 자연수 중에서 이렇게 두가지 방법으로 쓰일 수 있는 수는 없지.

 

이 일을 계기로 1729처럼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여러개인 수 중 가장 작은 수’를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 불리기 시작했지.

 

1729는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2개였어. 그렇다면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3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는 몇일까?

 

놀랍게도 거의 1억 가까이 가야 그 수가 나와.

 

 

방법이 4개라면? 5개라면? 6개라면? 현재까지의 결과는 방법이 6개인 택시 수까지 발견됐어. 그 이상은 ‘후보’만 발견되었고.

 

물론 가짓수가 아니라 제곱수에 집중하는 문제도 있어. 이를 일반화된 택시 수 문제(generalized taxicab number problem)라고 하는데

 

세제곱이 아니라 제곱이라면? 네제곱이라면? 다섯제곱이라면?

 

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가장 작은 자연수는 50이야.

 

 

반면 네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자연수는

 

 

그렇다면 다섯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가짓수가 2개인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자연수는??

 

놀랍게도 ‘모른다’야. 아직까지 그런 수는 발견된 적이 없거든.

 

이렇게 주어진 식을 만족하는 정수 해 혹은 유리수 해는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는 정수론의 유서깊은 분야 중 하나야.

 

이 분야를 디오판토스 방정식(Diophantine Equation)이라고 부르지. 디오판투스라는 그리스 수학자가 이런 문제를 떠올렸거든.

 

수학 교과서/참고서 한 구석탱이에 항상 소개되는 이 문제의 묘비가 바로 디오판토스의 묘비지.

 

디오판토스 방정식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문제는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지.

 

 

n이 3이상의 자연수일 때, x, y, z가 0이 아닌 정수해는 없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제지만, 해결하는데에는 몇백년이 걸렸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의 역사를 논하는데 빼놓을 수 없어.

 

이 문제 하나 풀려고 만들어진 기법이나 분야나 새로운 이론이 엄청 많거든.

 

그러니 디오판토스 방정식이야말로 수학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 문제 하나만 잘 만들어도 그거 풀려고 별에 별 이론이 다 만들어지니까.

 

최근까지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기법으로는 기하학을 꼽았는데

 

20세기 메타를 뒤흔든 것이 바로 대수기하학이란 분야거든. 정수론에 거대한 진척을 가져왔지.

 

그런데 정말 최근에 이 메타를 뒤흔드는 새로운 녀석이 튀어나왔어. 그 녀석의 정체는 놀랍게도 논리학!

 

아니 논리학이랑 방정식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도 놀랍게도 논리학이 이젠 정수론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어.

 

논리학의 모델 이론(Model theory)라는 분야가, 정수론의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해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목되면서

 

1999년, Unlikely intersections라는 분야가 탄생하게 되었어. (수학에서 20년된 분야는 뉴비 취급당함. 수백 수천년 고인물 분야들이 워낙 많아서…)

 

이 unlikely intersections의 중요한 난제인 앙드레-울트 추측(Andre-Oort Conjecture)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30년 넘은 난제인데, 재작년에 해결되었어. 필라(Pila), 치머맨(Tsimerman), 그리고 샹카르(Shankar)라는 세 명의 수학자가 해결했지.

 

매번 필즈상 시상식때마다 정수론 분야 수상자가 한명씩 나오다보니,

 

어쩌면 2026년 정수론 부문에서는 치머맨이 타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조금 있더라구.

 

다음달 초에 아리조나에서 학회가 있어서 갈 예정이야. 이 학회의 주제는 매년 정수론에서 가장 핫한 분야를 꼽거든.

 

이번 주제가 unlikely intersections이고, 강연자 네 분 중 두 분이 앞서 앙드레-울트 추측을 해결한 필라와 치머맨이야.

 

그래서 디오판토스 기하학 학회 다녀온지 얼마 안됐지만 다음달 학회 갈 준비하면서 개 바쁘게 보내고 있어.

 

(대학원생 업무: 이전 논문 마무리 짓기, 새 연구 시작하기, 연구 발표서 작성하기, 수업하기, 새 학회 준비하기, 세미나 운영하기, etc.)

 

학회 준비하면서 논문 읽는데 머리좀 식힐겸 해서 글 써봤어.

 

요약) 택시 탈 때 번호판을 보자.

댓글
닥터프레드릭쇼팽
23.02.16
오오오 학회 주제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상치 못한 교집합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결과물은 더더욱 아름답고 경외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내용들이 있나 찾아보니 역시 수학학회이긴 하네요. 렉처 노트만 봐도 짱 어렵....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6
지금 렉처 노트 보면서 저도 공부중입니다. 제 원래 연구 분야와 관련이 있는듯 하면서도 좀 다른 얘기다보니 어렵군요. 모델이론 진짜 뭔소린지 몰겠슴...
최따라락
23.02.16
오 뭔가 컴퓨터 돌리면 바로 나올거같은데 어렵나보네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6
아주 간단한 계산이 아니라면, 컴퓨터의 도움만 받기는 어려워요. 물론 저 큰 값을 사람이 직접 계산할 수도 없죠. 보통은 사람이 이론으로 '이 범위에는 해가 없다' 라는 걸 증명하거나 '이 범위에 해가 있다면 어떤 조건을 만족할 것이다' 를 증명해 경우의 수를 많이 줄이는 걸 먼저 합니다. 그 다음 컴퓨터로 계산하곤 하죠.
오목오목
23.02.16
라마누잔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 하려고 했었나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6
글쎄요, 충분히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는 모르겠네요. 실패한 시도는 논문이 없기 때문에...
아드리안마르티네즈
23.02.16
해를 구하기 어렵다 -> 암호학? (문외한이라) 자동반사로 드는 생각인데, 저 방정식도 암호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6
오 아주 훌륭한 통찰입니다. 하지만 암호학은 외부인에겐 해를 구하기 어려워야 하지만, 동시에 관계자에겐 해를 구하기 쉬워야 합니다. 단순히 구하기 어려운 답은 모두에게 비공개인 정보가 되어서 통신성이 떨어지지요. 저런 일반적인 방정식의 해는 암호학의 적격이 아닙니다만, 어떤 특정한 방정식의 경우 해들끼리 연산을 취해줄 수 있습니다. (w,x) 라는 해도 있고 (y,z)라는 해도 있다면 (w,x)+(y,z)라는 해도 있는 셈이죠. (실제로 더하기는 아닙니다.) 이런 류의 방정식을 아벨다양체라 하는데, 최근에는 아벨다양체로 암호체계를 만드려는 시도가 있지요. 가장 단순한 아벨다양체가 바로 타원곡선인데, 타원곡선을 기반으로 한 암호체계를 ECC라 합니다.
균하하하하
23.02.16
쓰읍.. 난 좀 반댄데..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6
그러게... 택시보단 지하철이 낫지...
배추살땐무도사
23.02.16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76555583051-npok694a6x.jpg
뻐꾸기
23.02.16
자하연
23.02.16
궁금한 게 해가 존재함은 증명했는데 그 해가 어떤 수인지 밝히지 못한 경우가 있나요? 페르마의 정리도 그렇고 보통 해를 찾기 어려우면 결국 실은 해가 없다는 게 증명되곤 해서요.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7
네네 존재합니다. 그런 경우를 non-effective 라고 해요.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곡선은 종수(genus; 차돌짬뽕 아님)라는 개념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종수가 2 이상인 곡선의 유리수해 (x와 y값이 모두 유리수인 해)는 유한개 뿐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아예 없을 수도 있어요.) 이를 팔팅스의 정리라고 합니다. 팔팅스는 '해가 무한히 많다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에 유한히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가 정확히 몇개인지 혹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알고리즘은 일반적으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7
예를 들어 y^2=x^5+x^4+x^3+x^2+x 이라는 곡선은 종수가 2인 곡선입니다. (종수는 x와 y의 차수와 관계가 깊습니다.) 팔팅스의 정리에 의해 유리수해는 무한히 많지 않음을 압니다. 보다시피 (0,0)이 이를 만족하는 하나의 유리수 해지요.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가? 다른 유리수해는 없는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가? 이를 판별하는 알고리즘은 아직 없습니다.
@정수론민수
자하연
23.02.17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정수론민수
오빤하이모
23.02.17
stupid GPT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76566550692-2vt8oi77kkw.jpg
정수론민수 글쓴이
23.02.17
질문이 좀 잘못됐군요. 이건 5제곱수의 합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작은 수를 물은 것이고, 택시 수는 그 방법의 수가 여러개인 수를 물어야 합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봅시다. Find the smallest natural number that can be expressed as the sum of two positive integer fifth powers in two different ways
오빤하이모
23.02.17
635318657 = 174^5 + 283^5
사실 이 부분만 봤습니다
@정수론민수
치므큭
23.02.17
유잼 ㅊㅎㅎ
감나무
23.02.17
유익한 글 잘 봤습니다.(사실 중간부터 스크롤 내림)
궤친놈
23.02.17
뇌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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