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연예인을 좋아한 적도 없었고
누군가의 팬이 됐던 적도 없었습니다.
이말년씨리즈 작가로만 좋아했던 사람이
딱복vs물복 이런 영상을 올리니 봤죠.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침착맨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가수, 배우 이런 사람들 다 마다하고
수염 난 아저씨가 레몬 들고 있는 마우스패드를 사는 걸 보고
주변 사람들도 이상한 녀석이라고 하더랬죠.
떠들썩한 일들이 많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제 아이돌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팬이라서, 억빠를 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잘못한 일이 아니었다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갈 사람은 가라는 말에도 동의했습니다.
법적인 잘잘못을 가릴 일이 아닌 한,
개인의 선호는 말 그대로 개개인의 평가니까요.
특정 사건으로 인해 소수의 사람들이 팬덤에서 빠진다고 해서
침착맨님이 은퇴를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팬덤에서 빠지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구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제일 큰 문제지.
저는 축구는 전혀 모릅니다. 축구 관련 이슈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제 방송에서 본 침착맨님의 태도와 사후대처는,
솔직히 말하면 놀랐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거든요.
(어떤 점이 그랬는지는 다른 분들이 많이 집어 주신 부분이라 제가 또 얘기하진 않겠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아이돌을 억까해서 화가 난 적은 있지만,
내가 침착맨님을 안좋게 본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침투부를 더 이상 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침착맨님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화환을 받으며 은퇴한다거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켜서 강제적으로 하차한다거나,
변덕쟁이 침착맨님이 갑자기 아무런 얘기 없이 행동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침숭이 사태처럼
어느날 갑자기 방송 끝을 통보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랩틸리언이 지구를 지배하면 더 이상 침투부는 못보겠지?’같은 망상까지도 갔습니다.
하지만 그 망상에서조차 제가 침착맨을 싫어하게 되어서
침착맨님은 멀쩡하게 잘 방송하고 있고,
나만 침투부를 안본다는 미래는 없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팬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열성 팬이면 그렇게 되는건가봐요.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의 문제인지 잘 모릅니다.
이슈에 관련해서도 시청자님들이 채팅으로 말해준 정도,
침하하에 요약해서 말해주신 정도로밖에 모릅니다.
단군님 덕분에 어느정도 알게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랑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침착맨님을 비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가 침착맨님을 싫어하게 된다는 게 가장 무서웠습니다.
제가 침투부 안보게 되면 몇명의 사람들이 침착맨을 욕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고작 인터넷 방송인 한 명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도 말한 것 처럼,
가족 친구와 같은 관계가 아니라
제가 일방적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 되었던 적이 처음이었거든요.
제 마음속에서도 이번 일이,
침투부를 아예 안보게 될 정도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호감도가 떨어진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다는 생각과,
전에 있었던 일들도 내가 팬의 시선으로 봐서 잘못한 게 없어 보였을 뿐,
어쩌면 내가 악성 억빠였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번 일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는 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축협에 대한 문제가 크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 축구 팬이 아니라 침착맨 팬이다 보니,
침착맨 방송에서 축구라는 유사 금지어가 생기고,
축구 얘기가 나오면 채팅창이 ‘헉’으로 가득차는,
아픈 손가락이 생기는 상황,
침착맨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뜯을 건수를 주는 상황,
이런 지극히 제 중심적인 이유에서 입니다.
그깟 유튜버 한명 안보면 그만인 건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에겐 그깟 유튜브 한 명이 아니라 아이돌이기 때문이었겠지요.
내가 여전히 침착맨을 좋아하고 계속 챙겨본다고 해도,
절대 이번 일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순 없었을 것 같습니다.
고작 하루 사이에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제의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갑자기 히어로가 나타나 이 일을 해결해주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있더라구요.
침착맨 스타일로 정면돌파하는 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다시 마음 편하게 침착맨을 좋아할 수 있게 해줄 사람이.
하루 사이 심란했던 감정이 해소되어서
두서없이 뇌 속 생각을 끄집어내봤습니다.
너무 길게 빤 것 같아서 좀 까겠습니다.
야이 짱구야.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답정너식으로 사람들 긁었냐.
실실 웃으면서 사과하는 태도가 그게 맞냐.
뿌끼로그 할 시간에 사건을 좀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
근데 저는 또 침착맨 팬이라 까고 끝내는 건 싫어서 조금만 변명하겠습니다.
어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가(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지만)
어제오늘 사이 좀 알아보라는 시청자들의 말을 듣고 찾아봤고,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축협사태 알아보기를 기획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마지막으로
단군님 예정된 일정도 아닐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