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시렵니까?
때는 2년 전인 2021년.. 코로나로 대학생 답지 못한 대학 1학년을 보낸 저는 목적없는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중 이묵돌 작가님의 ‘역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가 방황하면서 전국을 발길 닿는대로 유랑하는 여행기 비슷한 느낌의 글이었는데요, 참 부러웠습니다.
아 나도 돈 많고 시간 많으면 저렇게 자유롭게 여행 다닐텐데…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제가 딱 그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휴학해서 시간 많고, 알바해서 돈이 많네? 어라 나도 되겠는데?
즉시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습니다.
목적지는 내가 생각하는 제일 예쁜 곳인 제주도!
면허도 없고 돈도 막 엄청나게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전거 타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코로나덕에 비행기표가 단돈 2만원이었어요.
위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서 바다에 배 움직이는 것 까지 다 보였어요;

첫 목적지는 공항 근처 동문시장의 동진식당 입니다.
17살 수학여행때 여기서 친구들이랑 고기국수를 먹었는데 너무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꼭 다시 가고싶었어요.
사장님 저 17살때 여기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5년만에 제주도 오자마자 여기부터 왔잖아요~~ 하니까 사장님 엄청 좋아하시더라구요 ㅎ
첫날은 자전거타기엔 애매해서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잤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은데,
하나는 시끌벅적 파티하는 분위기고요, 또 하나는 조용히 쉬다가 가는 분위기에요.
이 게스트하우스는 전자의 분위기였고, 밤새 너무 시끄럽고 부담스러워서 이후로는 조용한데만 골라서 갔습니다..

자전거 탈 때는 얇은 바람막이와 장갑 썬구리 마스크(복면) 헷맷 야무지게 착용해주고요.
아침 일찍 일어나 8시쯤 출발합니다.

용두암을 시작으로 제주도를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돕니다.
짐은 자전거 뒤에 달려있는거 저게 다에요.
위 사진에 제 모습의 옷들이 자전거 탈 때 입는 옷이고요,
안장 뒤 가방 안에 하와이안 셔츠, 흰색 반팔티, 반바지가 잠옷입니다.
자전거여행이라 짐을 최소한 줄여야했어요.
가방 위에 보라색은 혹시모를 추위를 대비한 패딩조끼인데, 출발하고 얼마 안돼서 잃어버렷습니다;;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잠시 멈춰서 몇시간동안 멍때리기도 하고요,
길 가는 아주머니에게 사진 한장만 찍어달라 부탁도 해보고요,
저기는 제 등 뒤로 절이 하나 있었는데 파도소리와 목탁소리가 너무 예뻐서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저기 도로에 파란 선이 보이시나요?
저게 자전거 일주도로 표시입니다. 굳이 지도가 없어도 저 선을 따라가면 돼요.

애월의 이름모를(까먹어서 모름) 해수욕장입니다.
저 뒤에는 단체로 서핑을 배우시는 것 같더라고요

한림의 선인장 군락도 지나요.
인공적으로 만든 선인장 공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긴거랍니다.
두 가설이 있는데, 사막의 선인장 포자가 날아와서 정착했다는 설과 주민이 내다놓은 화분에서 퍼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것 같네요

산방산에 도착해 이날의 라이딩을 마무리했어요.
이번 게스트하우스는 산방산 탄산온천 게스트하우스 인데요,
수영장에서 외국인 누나들이랑 잘생긴 형들이 어울려 노는게 너무 멋있어서 기억이 나요.
물론 풍경도 멋있었고, 2만원정도 되는 가격에 숙박과 온천(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탄산온천 가보세요 짱좋음

다음날은 서귀포에 있는 아는 동생을 만나러 갔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생각나는 스타벅스가 신기해서 찍었나봐요. 저기가 아마 중문 관광단지? 그쪽일거에요.
근처에 호텔이랑 리조트가 많았던 기억이 나요.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또 사진을 찍고요.

저 멀리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서 제 여자친구(자전거) 사진도 찍어주고요.
서귀포에 도착해서는 아는 동생을 만났고, 근처에 유동커피 본점이 있어서 커피 한 잔씩 했어요.
너무 맛있어서 서귀포 머무는 동안 하루에 두번 세번씩 갔네요;

서귀포에는 며칠 머물렀는데요,
아는 동생을 만난 이유가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친구가 다이빙샵에서 일하거든요.
생각보다 무서웠고 생각보다 훨씬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횐님들도 꼭 해보십셔

숙소 근처에 있는 이중섭선생님 생가도 한번 가보고요, 근처에 기념품가게들이 많은데 구경도 해보고요.

다시 출발해봅니다.
빨간 공중전화박스 처럼 생긴 인증센터가 곳곳에 있어요.
저 안에 스탬프가 있는데, 그걸 인증 수첩에다가 찍습니다.
잉크가 마른 것을 대비해 보라색 사무용 잉크패드 하나쯤 구매해서 다니는걸 추천해요. 저도 서귀포가서 하나 샀어요

제주도의 검은 돌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하루죙일 바다를 보면서 라이딩을 해도 가는 곳 마다 매번 새롭고 신나요.
힘든점이라면 바람이 많이 붑니다.
정말 많이 불어요.
바람이 자꾸 차도쪽으로 밀어서 사고나는 상상 머릿속으로 수백번은 한 것 같아요.

서귀포에서 쇠소깍을 지나 표선해비치해변에 왔습니다.
표선해비치해변 이라니 이름이 특이하죠?
표선 바다 해변 해변??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표선의 해가 비치는 해변이라는 뜻이랩니다.

오후에 성산에 도착하였구요, 근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산책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저기는 광치기해변이에요. 숙소에서 한참을 걸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저기서 차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부럽다.. 난 자전거탄다고 옷도 며칠만에 빨아입는데..

다음날은 완전 관광객 모드로 놀았어요.
저기는 성산일출봉인데요, 등산은 별로 안좋아해서 그냥 앞에서 사진만 찍고 왔어요.
잔디가 펼쳐진 언덕이 윈도우xp 바탕화면을 떠올리게 했어요.

그리고 우도에 갔습니다.
우도 도착해서 처음 찍은 사진인데요, 물이 너무 맑아서 배가 공중에 떠있는 것 처럼 보여서 너무 신기했어요.
저는 면허도 없고 자전거도 숙소에 두고와서 전기자전거를 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많고 운전(전기스쿠터든 전기자동차든 자전거든 뭐든)도 개떡같이들 하시고…
저는 스트레스만 쌓여서 왔습니다.
예쁘긴한데, 너무 북적거려요.
일부러 사람없는곳 찾아다녀도 한두시간이면 섬을 충분히 구경하고,
어디 들어가서 뭐라도 마시려니 엄청엄청 비싸서.. 우도는 금방 나왔습니다.

근처에 있는 윌라라 라는 피시앤칩스 전문점인데요, 피시앤칩스 1.5에 맥주 0.9였던가? 로 기억합니다.
그닥 특별할건 없던..
이 이후로 숙소에 그냥 들어가서 씻었는데요,
같은 방(도미토리식 방이었음)을 쓰는 형이랑 친해져서 고기를 얻어먹었어요.
그 형은 경찰시험에 합격해서 발령받기 전 까지 제주도에서 여행다닌다 하시더라구요.
혼자라서 흑돼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잘 먹었습니다.

성산 이후로 또 자전거를 타고 달려서…

쉼터에서 계속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이랑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랑 같은 도시에 사는 분이시고,
연세가 70이 되셨는데 전국 자전거도로를 모두 돌았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오신건데요, 새벽에 일어나 밤까지 1박2일만에 완주한다고 하시네요.
괜히 정이 들어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었습니다.
연락처를 알았다면 나중에 육지에서 식사라도 한번 했으면 좋겠는데, 연락처가 없어서 슬프네요.
선생님 잘 지내시죠? 건강하세요

그렇게 저는 약 2주에 걸쳐서
가고싶은데 다 가고,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
천천히 제주도 한바퀴를 무사히 돌았습니다.
처음 시작한 장소인 용두암에 가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고요,
인증센터에 가서 스페샬 반짝이 스티커도 받았답니다.
심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았지만
혼자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혼자 깨달으면서
단순한 힐링이 아닌 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아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횐님들도 기회가 있다면 꼭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굉장히 길고, 재미도 없는 횡설수설한 글이지만
혹시만약에 끝까지 봐주신 횐님들이 있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이 여행 이후로 친구랑 제주도 한 바퀴 또 돌고, 다른친구랑 인천~부산 국토종주도 다녀왔는데요,
나중에 심심하고 할짓없으면 그때 이야기들도 한번 써보겠습니다?

커밍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