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산문집 쓸 만한 인간
독후감이라기엔 아직 다 읽고 든 감상이 아니니 독중감이라고 해야할텐데 읽으면서 그냥 제 마음속에 드는 여러 감상들이니 독후감이 맞는것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름붙이기 어려우니 독감이라 하겠습니다.
책 별로 읽지도 않는 나같은 인터넷에 망령된 사람이 책을 다시 잡은 이유는 그저 그놈의 마크때문이다. 벌써 작년의 일이지만 우원박이 사과몽에게 쓴 그 짧은 글과, 파김치갱에 남긴 경고장은 의외로 정말 멋있었다. 그래서 글쓰는 배우 우원박의 책을 샀다. 사실 사과몽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것을 309장 들이로 낭낭하게 읽고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산문집이라 하여 글 모르는 나는 부담이 있던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읽어보면 그냥 박배우의 자전적 이야기다. 화자의 심정을 분석하고 내용을 요약해야하는 고3이였다면 이책은 단터뷰나, 침착맨 채널에서 이미 여러번 들어본 소위말해 ‘안읽고 풀 수 있는 개꿀지문’이었겠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고3이 아니라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 이 책이 언제 나온 책인지 모르겠다. 우원박이 기록한 그의 시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라서.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배우 박정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도롱뇽 우원박의 목소리로 들어서 더 고맙다고. 솔직하게 이 책은 글이 좀 산만하다. 우리는 이제 알고있는 박정민 특유의 쑥스러움이 있다. 자전적 내용의 진지한 글을 쓰면서도 개초딩같이 빙빙 돌려서 진심을 포장한다. 한없이 가볍게 써내려간 그 표현속에서 무거운 진심이 읽힌다. 박배우보다는 우원박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다.
이 책을 혹시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카오톡의 우원박 낭독을 듣고 오면 더 좋다. 사과몽의 글을 읽어주는 우원박의 목소리를 듣고 이 글을 읽으면 이 책이 그 목소리로 들린다. 나는 이 책을 서점 베스트셀러 란에서 구입한게 아니라 검색해서 찾아 읽었기 때문에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한번 읽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셨다면 지금쯤 다시 한번 꺼내보시는 것도 좋다. 그때는 듣지못한 우원박의 담담한 목소리로 낭독을 다시 들을 수 있으니. 사실 책이라는게 인건비 장비료 수십억 쏟지않아도 내 머리속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영화가 아니던가. 마크 보시고 다시한번 보시면 참 좋다고 생각한다.
독후감도 독중감도 아니라 독감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흔한 인터넷 뻘글입니다. 다만 독감이라 한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마음속에 열병앓이 하듯 뜨겁고 답답한게 맺혔던 까닭이죠. 사람은 원래부터 말하기를 좋아하는 터라 누구와 대화하고싶어합니다. 단지 그럴 사람과 시간이 없거나 조금 피곤하기에 실상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가죠. 그래서 그 대화의 부채가 잠은행처럼 마음에 쌓여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정민이라는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하듯 편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에, 저도 신이 나 마음속으로 한참 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이지만 배부른 대화를 한 느낌이 듭니다.
오그라드는 뻘글이라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길게 쓸 생각 없었는데 길어졌네요. 그래도 매 장마다 마지막에 우원박이 ‘다 잘될거다.’ ‘행복하시라.’ 해주니까 침스라이팅 당한 짬뽕이형처럼 조금은 ‘어 그런가?’ 생각이 들어 덜 부끄럽게 글을 씁니다. 횐님들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주는 사람되십시오. 그리고 얼마 안하니까 우원박 책 읽어보십시오. 책을 읽는데 배도라지 타운을 떠도는 유령이 눈에 보이실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