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시에 관한 생각.

음악 이렇게 하는거 아닌데…
위플래시를 보면 드는 생각이다.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왜인지 모르지만 자꾸 위플래시 리뷰 같은 것들을 띄워줘서 이 영화에 관해 또 생각해 보게 되었고,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여라도 이 영화에 꽂혀서 음악을 시작하면서 “사마외도”로 빠져드는 뉴비가 있을까 염려되어 글을 써본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플래쳐 교수의 음악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비판하겠다. 그의 인성 같은건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인성 개차반이라도 음악적으로 뛰어나면 뮤지션으로 그를 리스펙트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플래쳐 교수는 내 기준으로는 음알못이고, 그는 나의 음악적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우선 철학적인 방향에서 접근해서 살펴보자. 음악이란 무엇일까?
나는 음악을, 소리를 사용하여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아티스트의 의도와 다른 감정을 청자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음악의 재미있는 점이다.
음악이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이라면, 음악가는 자신의 곡에 감정을 담으려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연주와 노래에 감정이 묻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청중이 음악을 들어서 감정을 느끼고 음악가와 교감할 수 있다면 그 예술작품은 성공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플래처의 교수법을 살펴보자.
뺨을 맞고, 호통당고, 압박당하고, 모욕당하는 과정을 통해 연주자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분노, 공포, 불안, 긴장 등등 주로 부정적인 감정일 것이다.
뺨을 맞고 모욕당하며 기뻐하는 변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논외로 하자.
그런 감정을 가진 상태로는 신나는 음악, 슬픈 음악, 아름다운 음악, 섹시한 음악 등등에 진정한 감정을 담아 연주할 수 없다.
분노, 공포, 불안, 긴장을 표현하는 음악은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음악은 주로 데스메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데스메탈의 모든 악기는 음악 내내 강약 없이 풀파워로 빠르게 후려갈기며 보컬은 분노에 찬 한마리 괴물같은 소리로 포효한다.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연주를 할 수 있다.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은 그렇게 음악으로 표현하여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플래쳐가 지휘하고 있는 것은 재즈 밴드이다.
재즈는 분노나 공포 같은 과격한 감정을 주로 표현하는 음악은 아니다. 재즈는 그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주로 다룬다.
작중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도 분노 공포 불안 긴장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들이다.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 상황에서 자기 밴드의 연주자들을 분노 공포 불안 긴장의 감정상태로 유도하는 것은 잘못된 디렉팅이다.
연주테크닉적으로도 경직된 근육으로는 난이도 있는 연주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근육의 이완, 릴렉스는 연주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뺨을 때리거나 호통치고 압박하고 모욕하면서 연주자의 근육이 릴렉스되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런 근육상태로는 강약없이 후려갈기는 연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래처 교수는 그의 재즈밴드 연주자들을 데스메탈 연주에 최적화된 상태로 세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재즈 음악이 나오는 것은 이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템포가 안 맞아.”
“느렸어, 빨랐어?”
밴드 앙상블의 리듬적 측면에 관한 그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나는 의문을 가진다.
물론 템포가 누가 들어도 차이날 만큼 아주 크게 차이 나면 템포에 관해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작중에서와 같이 매 비트의 미세한 차이는 그런 방식으로 지적하여 딱 맞추는게 아니다.
세계에서 제일 드럼 잘 치는 드러머도 필인 돌리고 나면 메트로놈에서 어긋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세계 제일의 드러머가 속하지 않은 여러 훌륭한 밴드들의 라이브 연주를 들어보아도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다른 멤버들이 드럼을 들으면서 드럼에 맞추어 연주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들으면서 서로를 보완해 주어서, 타이밍 나간 것이 느껴지지도 않게 가려주는 것이 훌륭한 앙상블이다.
서로 자기가 재는 박자가 칼박이라고, 다른 사람 듣지도 않고 각자가 머릿속에서 재고 있는 "옳은 타이밍"에 연주해 버리면, 틀릴 때마다 틀린 티가 난다.
보통은 그렇게 연주하는게 아니라
드럼이 밀면 밀리고, 드럼이 당기면 당겨지면서, 드럼을 들으면서 드럼 비트에 자기 연주를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루브는 정확한 타이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루브는 정확한 강약에서 나온다.
강약이 엉망이면 정박에 연주해도 어색하고 딱딱하게 들린다.
반대로 강약이 정확하고 밴드가 협조하면 미세한 타이밍 오차는 독특한 그루브가 된다.
그러므로 미세한 타이밍 차이를 두고 “템포가 안 맞아”, “느렸어, 빨랐어?” 하는 것은
밴드 앙상블의 리듬적 측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꼴이다.
드럼의 미세한 타이밍 차이는 그대로 놔두고 다른 멤버들이 드럼을 들으며 드럼에 맞추는지 드럼 듣지 않고 자기 머릿속 박자로 연주하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강약을 모니터 하며 강약이 잘못되면 지적해야 한다.
어디서 누가 플래쳐 교수 흉내내는 거 보면
“아 사이코패스 음알못이 가스라이팅 시전중이구나”
하고 도망쳐나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