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쓰는 글이 세상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도록."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불시에 집필을 그만두고 작업실 문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거란 사실에 전전긍긍 하면서도."
"거기서 비롯된 두려움을 원동력 삼아 앞으로도, 아주 먼 미래에도 세상과의 소통이 끊어지지 않기를 꿈꾸며 자신만의 역작을 남기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의 위대한 부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with 위의 문구를 프롬프트 삼아 DALL·E-3로 뽑아낸 이미지
안녕하세요. 예전에 썼던 단편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후 전공 수업 중 이뤄진 개별 발표에도 활용해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콕 짚어 인상적이었단 평가를 받았던 내용의 일부를 새해를 여는 오프닝으로 삼아봤는데 아무쪼록 마음에 드셨는지요.
해당 문구를 통해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올 한 해 저는 그동안 그림자 속에 고이 포개둔, 그렇기에 20대를 함께 한 전공과는 상당히 동떨어질 수밖에 없던 창작자로서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매달렸던 전공과 관련된 전문직 시험을 완전히 접으면서까지요.
자식으로서의 도리 때문인지, 아니면 인생의 큰 분기점 앞에 나름대로의 큰 결심을 내린 데 대한 값비싼 동정이 필요했던 탓인진 알 수 없지만, 저는 얼마 안 가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천리 길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격언을 스스로의 눈높이에만 맞추기 바빴던 대가를 부모님의 눈높이에서 치르게 되었죠.
필요한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허무함,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스무 살에 수렴하던 시절이라면 마음 속 깊숙히 뿌리내릴 뻔했던 그 감정들은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쌓아온 인생의 경험치에 가로막혀 금방 사라졌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제방마저 훌쩍 넘고 마음 한켠에 세를 들어 살고 있던 다른 무시무시한 감정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갔다에 가깝겠네요.
구상한 작품의 첫 글자를 뗀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자라고 있던 감정의 자양분은 다른 아닌 반쯤 억지로 내뱉던 자기합리화였습니다. ‘나는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났어.’ ‘내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이걸 하기 전까지의 모든 행위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 준비한 고백을 앞두고 저 스스로를 재차 고취시키기 위해 품었던 여러 생각과 감정들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방으로 도망치는 도적 떼처럼 퍼져나갔고 그럴 때마다 그들을 진압하기 위한 군관들 역시 제 의사와 상관 없이 파견되었죠. “너는 니가 실패한 인생을 살았던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뿐이야!” 고함을 지르고 비수를 던지며 달려드는 포졸들이 난입하며 와장창 엉망이 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경찰과 도둑 게임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내면의 진심과 외재적 사실이 충돌하는 상황,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경험과 지혜로도 매꿀 수 없을 정도로 저란 사람을 절벽 끝으로 몰고 갔죠. 그리고 본글이 신세 한탄만으로 범벅되는 걸 막기 위한 클리셰라면 클리셰겠지만, 하소연 할 데 없는 혼자만의 번민을 깨트린 건 늘 그렇듯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머릿 속을 부유하던 상상이 작품으로 이 땅 위에 피어닐 때까지, 더 나아가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 성공을 거둘 때까지 이러한 번민은 초대장을 지참한 흡혈귀처럼 언제라도 문을 열고 찾아와 저를 물어뜯을지도 모릅니다. '초심'이란 두 글자로도 쉽게 몰아낼 수 없는 이 녀석한테 맞설 방법은 오직 단 하나, 이 녀석과 함께 하며 지낸 인고의 시간과 그것이 남기고 간 기억뿐이겠죠.
세상의 모든 고민과 괴로움을 홀로 짊어진 듯 생활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다… 아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해당 데이터를 머리와 몸으로 체득한 이상 거기에 또 다시 얽매이는 건 매몰비용을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시키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에 불과하다…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 뒷편으로 밀려나 상황을 관망하기 바삤던 전공 지식이 보다 못해 비집고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유야 어떻든 간에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정해진 데서 오는 안정감은 상상 이상으로 심적인 안정감을 선사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준비중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것, 번민과 충동에 괴로워하던 와중에도 278일 동안 꼬박꼬박 소원의 돌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 마지막으로 실패라 명명되었을지도 모르는 현실을 내게 주어진 가능성으로 새로이 덧씌우는 것.
그러기 위해선 어림 잡아 수백 편은 필요할 분량의 5부작을 모두 작품으로 환원하진 못할지언정, 최소한 해가 지나 1년 만에 소원의 돌 앞에 섰을 때 1부는 물론, 2부까지 완성해낼 각오와 인내는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죠.
그렇게 성공적으로 먼저 1부가 완성된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제 안에서 비롯된 작은 울림을 더 널리 퍼트리기 위해 플랫폼이나 공모전과 같은 나름의 수단과 방도를 자연스레 모색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작은 결국 작가와 세상 간의 공명을 수반해야 한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제가 세운 목표가 혼자만의 레이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겠죠.
침하하의 규정상 제목을 직접적으로 밝힐 순 없겠지만 다가오는 새해, 저 스스로부터가 오프닝을 장식한 대사에 걸맞는 인간이었음을 증명해 낸다면, 가장 먼저 침하하에 그 소식을 잔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약속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행복할 새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