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맨을 모르는 머글 친구와 있었던 일
우선 제 스탠스를 먼저 밝히자면 축구는 중요한 국대 경기나 가끔 뉴스만 좀 챙겨볼 정도로 마이너한 레벨의 팬입니다.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때만 좀 아쉽고 그만인 수준이죠. 반면, 침착맨의 경우 잠자리에 들 적엔 꼭 방장 영상을 틀고 자고 침하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둘러 보는 평범한 수준의 개청자입니다.
'침하하 포인트 67090점, 나처럼 살지 마시오…'
평소 같았으면 개청자면 개청자답게 이런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가급적 침묵을 지키거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과거 침착맨에 대해 이름만 아는 수준의 일반인 친구와 설전(?)을 나눴던 경험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흠칫하게 되더라구요.
(TMI지만 지금도 그 친구 만나고 귀가하며 이걸 작성중입니다)
사건은 몇 달 전이었습니다. 방장은 물론 많은 팬분들을 아쉽고 마음 쓰게 했던 ‘그 사건’의 1차 판결 이후, 무타구치 렌야스럽게 수염을 기른 주 작가님의 입장 방표 영상이 업로드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죠.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가듯 저는 주호민 작가님 역시 열렬히 좋아했었고 그렇기에 일방적인 거나 다름 없는 여론 공세에 온 미디어가 미쳐 날뛰던 시기에도 최대한 확실한 결론이 날 때까지는 일단은 기다려보자는 마인드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해당 영상을 풀로 다 시청한 뒤, 저는 이때까지의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낀 건 물론 그토록 좋아했던 주 작가님을 다시 마음 놓고 애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날아갈 듯이 기뻤고, 이제까지의 가슴 속의 응어리가 다 씻겨 내려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저는 평소 자주 보는 그 머글 친구와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었죠. 위의 일이 있었던 게 얼마 안 되었던 터라 저는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화두를 먼저 꺼냈고 그 친구도 주 작가님이 휘말린 사건에 대해 알고는 있었기에 저는 연이어 제 기쁨과 다행의 감정을 마음껏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설명하는 와중에도 필수적인 논리와 인과 관계는 빠짐없이 다 가미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을 무렵, 그 친구는 제게 상당히 뜻밖의 반응을 보여왔죠.
“엥?! 그거 주호민이 처음부터 잘못한 거 아니었어?”
“지금까지 대체 뭘 들은 거야!”라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며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괴모 씨가 가 그랬듯, 이미 각인되고 만 잘못 알려진 정보를 바로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저 되새긴 저는 ‘그래, 내 설명이 많이 미진했구나.’하고 속으로 되뇌이곤 디시 침착하게 관련 뉴스 내용과 유튜브 반응들까지 찾아가며 그 친구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동안 주 작가님이 겪은 고초와 억울함을 그 친구가 조금이나마 알아주길 바라면서요…
“음… ㅁㅁ, 그냥 니가 주호민을 좋아해서 그런 거 아냐?”
숨이 턱 막히더라구요. 해명 영상 댓글창에 달린 요약본까지 찾아 그 친구 눈 앞에 들이밀어봤지만, 이 사건을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서만 간간이 들었을 그 친구는 제가 보기엔 이미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실상 확정된 거나 다름 없는 사건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각을 고수하더군요
말문이 막힌 저는 몇 차례 더 변호의 말을 덧붙였지만 친구의 입장은 그 이후에도 딱히 변함이 없었고 그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갈 거라 생각한 그 주제에 대한 결론은 풀리지 않는 찝찝함만 남긴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침착맨 님, 그리고 주펄 님의 팬이라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는 상황이었죠.
처음에는 내심 이 일에 대해 깊은 공감을 못해주는 그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의 입장도 조금씩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한테야 주 작가님은 팬심과 애정의 대상이지 그 친구에게 있어선 좀 유명한 만화 작가이자 논란의 중심에 선 제3자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날 있었던 둘 간의 설전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끝난 논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주 작가님에 대해 잘 모르고 팬도 아니었지만 제가 (대중적으론 아직까진 논란의 인물로 알려져 있던) 그 분의 팬이라고 해서 딱히 인신 공격 수준의 발언을 내뱉지도 않았고 저 역시 그 친구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고 매정하다, 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느냐며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으니까요.
사실 이 일은 처음부터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기호를 정립하는 건 죄가 아니라 타고난 권리에 가까우니까요. 그리고 각자의 선호가 교차하는 그 필연적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모욕과 갈등이 태동하는 걸 어느 때보다 관찰하기 쉬워진 요즘 세상에 빗대어 본다면 이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수준이었죠.
아무튼 그 일이 있고 제가 느낀 점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같은 사안이라 하더라도 애정과 관심의 유무가 판단에 있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돌아가고 있는 객관적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요. 결국 흥분한 마음에 더 막나갈지도 몰랐던 저를 막았던 건 오랜 숙고 끝에 이성에 기반하여 도출한 결론이 아닌 결국은 주 작가님의 무고가 밝혀지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갈 거란 믿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제가 주 작가님에 대해 가진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었겠죠.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으로 잊혀졌던 이 일이 갑자기 오늘 떠오른 것도 어쩌면 오늘 생방송 도중 있었던 방장님과 축구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팬분들 간의 갈등이 저와 제 친구 사이에 있었던,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던 작은 소동처럼 마무리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 아쉬움에서 비롯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명보를 그냥 싫어하는 거 아니야?”
정몽균이 스스로 물러나고 자정 작용을 약속한 축협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적법한 절차를 겨쳐 그를 선임한 상황이었다면 축알못의 농담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
데시벨 없이 몰아치는 질타와 반응들이 조금 더 유했다면 방장이 직접 나서서 사안에 대해 좀 더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부터 축구 관련하여 요즘 이슈가 많은 편이니 적당히 모른다고 하고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상황이 파국에 가깝게 치닫은 와중에 던져보는 의미 없는 가정들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불과 몇 달 전, 축구 팬분들에 좀 더 가까운 입장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저의 시각에선 해피 엔딩스러운, 최소한 노말 엔딩은 보장되는 분기점을 방장이 그냥 지나쳐버린 게 여러모로 아깝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달까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팬이길 자처했으니까. 다음 번엔 더 잘할 거라 믿어줄 수밖에요.
아,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있었던 게 처음은 아니었군요. 궁금하신 분은 아래 영상을 꼭 시청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