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잠기는 방
괴담 낭독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저도 하나 적어봅니다.
올해로 서른을 조금 넘은 필자는 여지껏 그 흔한 가위눌림 한 번 겪어본 적이 없을만큼
귀신이니 유령이니하는 불가해한 것들과는 연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필자에게도 딱 하나 떠올리면 으슬으슬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경험담이 하나 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건 분명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당시 우리 동네엔 산이 하나 있었는데.
개발이 진행된 산 건너편과는 달리 우리 동네에는 그저 작은 아파트 단지 몇 개가 넓직한 논밭을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
피시방같은 놀거리라곤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당시 동네 친구들과 나는 곧 찾아올 졸업이라는 일대사를 앞두고 묘하게 마음이 들떠있는 상태였기 때문일까.
겨울 방학의 끄트머리에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피시방에 가기위해 헥헥거리며 산을 넘어가던 우리는 도중에 계획을 바꿔
산기슭에 있다는 흉가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심심해빠진 동네의 흉가라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흔히 흉가하면 떠오르는 귀신이 나온다느니하는 소문보다는 동네 불량배들이 모여드는 일탈의 현장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근데. 거기 예전에 경찰들이 몰려온적이 있었어.’
흉가 근처의 낡은 빌라에 살고있던 친구만이 사실이 불명확한 목격담을 주장할 뿐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사이 어느새 늦겨울의 하늘은 어둡게 물들어 있었고.
우리는 마지막 가로등을 뒤로한채 잡초가 무성히 자라난 흙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는 곧 목적지에 다다랐다.
건드리면 무너질것같은 담장의 안팎으론 이미 발길이 끊긴지 오래인듯 정원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이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은 입구가 굳게 잠겨 있었지만.
우리는 게의치 않고 깨진 샷시문을 건너 건물의 거실로 보임직한 공간에 들어섰다.
분명 실내로 들어섰지만, 어째선지 주변을 맴도는 공기는 1, 2도 정도 낮은듯 느껴졌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약간 경직되어 있던 우리는 곧 천천히 주변을 설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경향은 조금씩 관성을 받는듯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이층으로 올라갈 정도로 대담해졌으나.
역시는 역시였다. 흉가는 으스스하고 불가사의한 무언가보단 그냥 지저분하고 더러운, 버려진 집에 불과했다.
‘야! 계단으로 와봐!’
맥빠지는 기분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친구 하나가 우리를 불렀다.
녀석이 발견한건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그림자 아래에 가려져있던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지금 떠올리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또 내려갔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후 우린 지하실에 들어섰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 등이 있던 일층과는 달리 지하실의 구조는 심플했다.
공간 중간을 가로지르는 벽 그리고 살짝 열린 문 하나.
가까이 다가가본 문에는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었는데.
바로 잠금장치가 방 안이 아닌 밖에서 걸리도록 되어있었다는 것이었다.
여튼 다시 돌아와, 두리번거리며 문 앞에 접근한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잠깐만.’
친구 한놈이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우리를 멈춰세웠다.
녀석의 말은 이러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보니까 여기에도 별 거 없을듯 싶은데. 차라리 게임을 하나 하자는.
가위바위보해서 지는 사람이 혼자 들어갔다 나오면 어떻냐는 이야기였다.
참 평범한 초딩 머리에서 튀어나오기에는 상당히 독한 내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린 응~ 나만 아니면 되~라는 생각으로 그 놀이를 수락했다.
가위 바위 보 한 번 한 번 구령에 맞춰 주먹을 내지를때마다 어찌나 짜릿하던지.
그렇게 몇번 희비가 엇갈린 끝에 결국 한 녀석이 문제의 벌칙을 받게 되었다.
녀석은 울상이 되어서 우리에게 그냥 안하면 안되냐고 몇번이고 찡얼거렸지만.
우린 잔혹하게도 녀석에게 약속의 이행을 강요했고.
결국 친구는 하다못해 빨리 벽을 찍고 돌아오려는듯 방에 뛰어들어갔고.
바로 그 순간 내기를 제안했던 녀석이 활짝 열려있던 문을 닫고는 그대로 잠궈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곧 그게 재밌는 장난이라도 된다는듯 숨죽인채 상대편의 반응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무언가 이상하단걸 깨닫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하실 문 너머에선 빨리 이거 열라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커녕 우리 세 명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반복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우리는 곧 문을 열었고.
동시에 갇혀있던 친구가 정말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우리를 밀치며 달려나갔다.
왜그러냐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우리의 목소리에도 녀석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채로 건물을 빠져나가 가로등이 있는 도로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마침내 숨이 가쁜듯 가로등 아래에 멈춰선 녀석을 겨우겨우 따라잡은 우리는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도 뭔가 큰일이 난게 아닌가 두려움에 계속해서 녀석의 안색을 살폈고
친구는 곧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로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우리에게 진빠진 주먹질을 날렸다.
내가 그렇게 문 열라고 소리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우린 당황해서 아니다, 열어주려고 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녀석은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더더욱 격분할 뿐이었다.
못내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와서 다시 그 지하실에 돌아갈 생각을 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고.
결국 우리는 친구가 조금 진정했을즘 미안하다고 진지하게 사과를 했고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담으로 필자는 비슷하게 밖에서 잠구는 문을 딱 한 번 더 본 일이 있는데. 중학교 수련회로 갔던 꽃동네의 정신 장애인들이 생활하던 방이 그러했다.
방 안으로 우리를 집어넣은 순간 직원이 무슨 생각인지 그대로 문을 잠궈버린 것이다.
어린 마음에 무섭게만 느껴지는 성인 정신 장애인들 한가운데에 빠져나갈 길 없이 고립된게 진짜 완전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장애인 분들의 올챙이 쏭을 부르라는 요구(다소 투박함)에 그 후 약 삼십분간 쉴틈없이 율동과 노래를 불러야했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