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올 블루 침하하의 익명화(장문, 네 줄 요약 있음)
오올 블루란 원피스에 존재하는, 동서남북의 모든 바다 생물이 모여드는 이른바 ‘조경 수역’을 부르는 용어인데요
침하하가 침착맨 짤 도서관 겸 팬 커뮤니티로 출범했지만
결국 거기 모이는 사람들은 기존에 인터넷을 이용하던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오로지 침착맨 때문에 생전 안 하던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트위터, 인스타 등의 SNS가 됐든 기타 여러 커뮤니티가 됐든 다른 곳에서 눈팅이라도 하다 온 분들이란 말입니다?
근데 침하하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대개 이미 ‘분위기’라는 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SNS처럼 신변잡기가 주류인 곳도 있고
게임이 주류인 곳도 있고
아이돌, 케이팝이 주류인 곳도 있지만
그 주제들과는 별개로, ‘이곳에서 A는 금기고, B는 허용된다. C는 악의 소굴이며, D는 이미지가 좋다.' 같은
그 사이트의 이용자들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관습들이 있어요.
꼭 정치, 젠더 같은 굵직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이게 중요해요. 그런 예민한 주제만 포함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곳에서는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사소한 영역에 대한 생각 차이가 문제를 일으키거든요.
저 역시 20년 전부터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돌아다녔고, 어렸을 때는 그런 관습들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견인 줄 알고 살았어요.
지금도 저도 모르는 사이 제가 들락거리는 사이트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나오는 의견들을 흡수하고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이게 그 사이트 내부에서만 소비될 때는 개인의 시야를 좁힐 뿐이지 타인과의 갈등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데
침하하는 오올 블루라는 게 문제예요. 이스트 블루, 웨스트 블루… 여기저기서 온갖 물고기들이 몰려옵니다.
‘어라? A는 금기인데?’
‘엥? D를 빨아준다고?’(제 언어가 아니라 예시입니다)
‘C에서 쓰는 말투인데 저거’
‘내가 저거 싫어서 저 사이트 안 가는데’
싶은 요소들이 계속해서 각자의 눈에 밟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건 침하하 비율로 구체화되고,
베스트 글과 베스트 댓글만 보는 사람들은 점점 이 사이트의 ‘분위기’를 파악해 갑니다.
‘아 침하하에서 X는 금기구나’
‘침하하에서 Y는 좋은 이미지네.’
‘음… Z까지 허용되는 건가?’
익명화 이후로 이런 현상이 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전에는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어 그런 주제를 아예 글로 쓰지 않았다면
익명화 이후로 좀 더 편하게 글을 쓰게 되었지만
반대로 그 글에 대한 침하하 비율로 인해 사람들은 침하하 유저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바람직하지 못한 유저’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닫고는,
“와ㅋㅋㅋ 침하하 이런 곳이었네”
라고 판단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침착맨 유튜브 시청층 성비가 75대 25라고 하죠?
침하하 유저층도 비슷한 비율이라고 했을 때, 분명한 남초지만 인터넷에서 이 정도 성비가 유지되는 사이트는 잘 없을 거예요.
보통은 목소리 크고 추천 잘 누르는 쪽에 밀려 반대쪽이 아예 사라지거든요. “에라이 더러워서 여기 안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침하하는 그래도 올라오는 글들이 부드럽고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존대를 하는 것도 잘 지켜지는 편이고
외부인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인터넷에서만 사용되는 은어(침착맨 방송 용어를 제외한)도 남발되지 않는 편이고
방장이 워낙 호들갑 좀 떨지 말라고 해둔 게 있어서 팬 커뮤니티임에도 전체주의적인 면 역시 덜하고.
하지만 전술한 대로 유저들이 자신의 의견, 아마 다른 사이트에서 배웠을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
침하하의 ‘분위기’가 형성될 테고
그건 온갖 바다에서 몰려온 침착맨 팬들이 어우러져서 가지는 고유의 것이 아닌, 그 ‘분위기’가 싫어서 떠나버린 사람들의 의견은 배제된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기적으로야 서로 싸우기라도 하겠지만, 이게 몇 달만 지속돼도 사람들은 지쳐서 입을 닫거든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거기서 먼저 포기하는 건 보통…. 좋은 사람들이더라고요. 제 기준에서요.
길게도 썼지만 이런 점에서라도 익명화를 재고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 익명화 이후로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 그런데 ‘솔직한’ 글에 달리는 침하하 개수로 다른 유저들은 이 사이트의 ‘분위기’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 그 ‘분위기’라는 것은 대개 외부 사이트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고, 해당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 다툼 끝에 반대쪽 계열이 지쳐 나가떨어지는 순간 침하하는 고유함을 잃게 될 것이다.
이상이 저의 짧은 글 초록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