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하게 된 침착맨

청계천을 지나다가 세운상가 앞에 있는 녹슨 가판대에서 라디오를 하나 집어온 적이 있다.
진짜배기 소니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조잡한 생김새.
그날 따라 햇빛을 보니 내심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내키는 대로 사본 셈이었다.
주말에도 창고에 나와 김밥 한 줄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일하는 내가
벌건 대낮에 유일하게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이놈 뿐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밋밋하게 살아가던 와중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혹은 하루아침에 달큰해진 봄밤에 마음이 넘어간 건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삼아 새벽 중에 라디오를 꺼내들었던 날이었다.
불경을 외우거나, 가스펠이 울리는 채널들을 지나서,
혹은 좌우를 논하는 격정적인 목소리들을 태연히 지나서,
‘아아- 미드나잇 침착맨의 이병건입니다.’
‘제가 살다보니 라디오도 해보게 되네요. 참 세상 일은 모릅니다. 그렇죠?’
침착맨인지, 이병건인지, 이말년인지,
이름도 세 개나 되던 그 사람이 돌연 은퇴를 말한 건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한창 잘 나가던 유튜버 생활, 방송 생활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아침에 접고는 사라졌었다.
그러고나서,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저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터.
오랜만에 혼자 떠드는 게 멋쩍다면서, 그리고는 이따금씩 이렇게 조용히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한다.
얼떨결에 그의 목소리를 보이지도 않는 전파로 잡아서 듣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한여름에 우연히 들려온 캐롤마냥, 반갑고도 어색했다.
‘제가 예전에도 음악방송을 이라는 걸 잠깐씩 했었어요.’
‘그때 듣던 노래들로 꾸며봤습니다. 시간 정말 빠르죠?’
이 사람이 사라진 시간 동안,
나는 아니, 우리 중 몇몇은 어른이 되거나,
본인만의 사랑을 찾기도 했고,
몇몇은 세상을 떠나거나, 어딘가 아프기도 했으며,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
화를 내기보다는 급히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되어있기도 했다.
나는 라디오를 베란다로 옮기고, 소리를 조금 줄였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는 나처럼 갑작스레 반가운 목소리를 찾은 이들이 있을 거라는,
옅은 친밀감으로 고요한 바깥을 내다봤다.
‘이어서 김제형의 ‘실패담’ 들려드리겠습니다.’
침착맨이 라디오 디제이가 되는 날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