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2005년 12월 5일, 대전, 대한민국

내 방 침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23년 12월 5일, 프랑크푸르트, 독일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아버지 기일’

벌써 18년이 되었구나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내 나이의 2배가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2명, 막내아들인 나는 5인 가족이었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사이셨다가 육아를 위해 그만두시고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시는 어머니

3,4살 터울 나는 누나들을 둔 난 막내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새벽 5시에 항상 일어나셔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시는 분이었다

항상 산을 타시고, 주말엔 4시 30분에 나와 같이 목욕탕을 갔다가 올갱이 해장국을 먹으러 가는게 일상이었다

청양, 온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시고 7형제 집에서 홀로 대전 국립대 대학교까지 그 당시에 나오셨다

그리고 도청 공무원이 되셨다

어머니는 조치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시고 중학교 교사를 하시다 아버지를 만났고, 자녀가 3명이 되자 그만두셨다

우린 온양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고, 난 그때 나이가 3살이어서 온양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과묵하셨고, 똑똑하셨다

성질이 욱하시는게 흠이었지만, 자식들에게 엄하긴 해도 간섭을 하시진 않았다

항상 업무가 많으셨고, 못하는 술을 업무상 억지로 마실 때가 많았다

안면도로 잠시 발령을 받으셔서 2년간 주말부부를 하기도 했고, 안면도 꽃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셔서 대통령 훈장까지 받으셨다

때는 2005년, 난 고1이었다

작은 누나를 따라 외고에 진학한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공부는 단순히 자신과의 도전으로 생각하는 단계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나에게 유학파인 외고 동급생들은 경쟁하기 만만치 않았다

정규교육 과정에서만 영어를 배웠고, 그래도 동네에선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인데

막상 고등학교를 가보니 동급생들은 모두가 원어민 발음에 부자 동네 출신이었다

전공이 영어였지만 나는 최하위였던 것이다

때떄로 좌절할 떄 마다 아버지는 응원보다는 엄하게 더 타박하시는 편이었다

2005년 12월 5일,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밤 11시경, 나는 거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고, 누나들은 안방에서 어머니와 수다 중이었다

김서린 안경과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

‘아들내미 공부하냐?’

‘네 아빠 저 언어 1등급 받았어요!’(외고 내신에서 1등급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 장하다, 너네 때문에 내가 버티면서 산다’

‘아빠, 안방에선 누나들과 어머니가 얘기 중이니까 제 방에서 주무세요, 전 아마 밤새서 공부할 것 같아요 거실에서’

‘그래 그럴게’

욕실로 향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셨다

‘괜찮으세요?’

‘잠깐 빈혈이 와서 그래, 괜찮다’

샤워 후 아버지는 내 방으로 들어가셔서 잠을 청하셨다

약 30분 후, 갑자기 짜증스런 목소리로

‘송빈아, 물 좀 다오’

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물을 갖다 드렸다

약 10분 후, 내 방 창문 블라인더를 돌돌돌 마는 소리가 들렸다

필요 이상으로 더 감기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무심코 ‘밖에 불빛이 센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약 20분 후, 큰 누나는

‘너 방에서 음악 CD 좀 가지러 갈게~’ 라고 했고

나는 ‘아버지 주무시니까 조심해’ 라고 답했다

1분 후, 갑자기 불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아버지 주무시는데 왜 불을 켜’ 라고 물었고

누나는 ‘숨소리가 안들려’라며 당황했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갔고, 이미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으며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다

간호대생이었던 큰 누나는 CPR을 했고, 어머니와 작은 누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는 바로 119에 신고를 했고, 이윽고 구조대가 왔다

구급차에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사망신고를 들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나는 학교에 새벽 2시에 전화한 후, 경찰서로 동행했다

마지막으로 드신 물과 컵을 제출하고, 경위서를 작성한 후

장례식장 준비를 했다

사망원인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사’였다

당시 국정감사 요구자료를 준비하시느라 스트레스가 심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7살 이후부터 한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고2, 고3 때도 1주일에 한번, 금 혹은 토에 대한통운을 찾아가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택배 상하차를 했다

그러면 현찰 6만원 정도를 줬는데, 그걸로 문제집을 샀다

수능을 생각보다 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에 좋은 학교에 진학했고, 원하는 공부를 했다

석사과정까지 마쳤지만 취업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일 저일 하다가 현재는 독일 프랑크프르트에 거주하며 일하는 중이다

누나 둘은 모두 결혼을 했고, 난 조카가 4명이나 된다

어머니는 조카들 보는 재미에, 그리고 내 걱정에 잘 지내신다

매형들도 다 좋은 분들이라 앞으로 나만 남았다고 꾸중을 듣는다

그렇게 오늘, 23년 12월 5일, 독일에서 아버지 기일 알람을 봤다

참 묘하더라

항상 아버지 나이보다 오래 사는게 목표였고

어느덧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았는데, 기일이라고 하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블라인더를 감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심장마비로 인해 알리려고 하셨을텐데, 못난 아들이 그걸 그냥 지나쳤다는 죄책감이 날 계속 따라다닌다

05년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만 있었고, 스마트폰은 없었다

그래서 남은 사진이나 영상이 없다(디지털)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참 아쉬운게

이제는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유대관계가 깊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가보다

항상 막연하게 내가 성인이 되고 나이가 좀 먹으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더 친해지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결국 못했다

난 아예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런 영향인지 나는 운전이고, 군대고, 넥타이 매는 법이고 다 혼자 독학으로 배워야만 했다

막내지만 집안에 혼자 남자라는 사실이 쉽진 않았다

지금 날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사실 감이 오지도 않는다

막내 아들이 다 커서 독일에 혼자 킹차갓무직 현지채용으로 일한다고 하시면 좋아하실까

아니면 행시를 안봤다고 뭐라 하실까

남들이 가족과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절대 훈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난 엄마와 누나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었기에 부던히 노력했고

쪽팔리지 않고 지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악바리로 살았다

그만큼 자립심을 키웠지만, 그만큼 또 아집이 세졌다고 할까

이것도 근데 30대 초반이 넘어가니 좀 무뎌지긴 하더라

이제 18년이 지났다

벌써

그때 나는 17살이었는데, 이제는 만 나이 34살이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알림을 보고 뭔가 띵 왔는데

일이 바빠 최대한 못본 척 지나갔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울적해졌다

내일은 또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겠지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