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 블로그 수필 감상 후기

-짤은 임의로 넣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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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서 ‘이말년 수필’이라고 칭하는 것은 만화 ‘이말년 수필’이 아니라, 방장이 블로그에 올렸던 수필을 편의상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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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이말년 시리즈를 간간히 보았다. 그의 만화는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글까지 훌륭할까? 그렇게 생각했다. 레전드 축구선수가 반드시 레전드 감독이 되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나는 그의 ‘수필’을 정독했다. 짜임새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원래 수필이란 그렇게 진지하게 쓰는 글이 아니다. 신변잡기 내용도 훌륭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잘 쓴 수필’에 속하는 글이 ‘이말년 수필’이다.
그의 수필은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이태준의 ‘파초’를 연상시킨다. 교과서에서 수필의 개념에 대해 배울 때 읽은 작품이다. 나는 그 글이 퍽이나 담백해서 내용은 기억은 못하더라도 ‘잘 쓴 글 하나만 대봐라' 하면 ‘이태준의 파초요'라고 하고는 했다. 이말년 수필을 보고 파초가 생각난 것은 각 글의 수준이 동일하다는 것일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이태준의 ‘수필’이나 침착맨의 ‘수필’이나 모두 문장 구성이 간결하다. 긴 호흡의 문장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점은 명백하고 독자들에게 울림까지 준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큰 파초는 처음 봤군!” 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다. 나는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情調)를 명상한다. - 이태준, 파초
아기천사 두두는 기본적으로 천사이기 때문에 초능력을 능수능란하게 써댔는데 그 초능력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린 마음에 나에게도 아기천사 두두가 와서 죠스바랑 게임기를 선물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빌려온 만화가 끝나면 너무 슬펐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 이말년, 아기천사 두두
마지막 문장이 내가 이말년에게서 이태준을 상상하게 했던 부분이다. 나는 수필이란 ‘일상의 여운’을 공유하는 글이라 생각하는데, 위 문장들은 그 정의에 부합한다.
요즘 인스타그램 등에서 많은 이들이 짧은 글을 감성글 혹은 명문이라고 올리고는 한다.(물론 그 중에도 귀한 글은 있기 마련이다.) SNS 시대, 우리가 훌륭한 수필들을 잊거나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럴듯한 단어를 짧게 나열한다고 모두에게 큰 감명을 주지 않는다. 진솔한 이야기가 사람에게 진정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이말년 수필은 그런 호감형 글 영역 안에 있다. 이는 그의 글에 대한 칭찬이라기 보다, 마치 오래 전 잊고 있던 친구를 정겹게 만났을 때 느끼는 반가움과 같다.
한국인들이야 그의 문체(정확히는 어투)를 ‘웃음’으로 소비하지만(사실 나도 그렇다), 나는 세심함도 느낀다.
어제 집 근처 커피숍에서 아이디어를 짜는데 옆 자리에 조폭 3명이 앉았다. 조폭이란 조직폭력배의 준말이다. 조직폭력배는 무리지어 폭력을 행사하고 검은 돈을 수집하는 깡패라는 뜻. 아무튼 이 조직폭력배 3명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감방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 이말년, 초겨울 일상
침착맨은 단어 하나하나를 짧지만 굵게 설명한다. 이런 문장은 ‘Baby, 아기라는 뜻’과 같은 문장이기에 웃음을 한국인들에게 유발한다. 그러나, 이렇게 쓴 글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예를 들어 우리집 막내 동생은 ‘조폭’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볼 수 있다. 중학생이라지만 조폭을 일상생활에서 밥먹듯이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 들어볼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이 글을 썼다면 막내는 ‘조폭이 뭐냐’라고 먼저 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말년 수필에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말년 수필은 그런 점이 참 돋보이는 글이다.
침착맨에 대한 팬심으로 수필을 읽었다가 오묘한 문체에 반했다. 만화와는 다른 맛이 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같다. 그의 소설과 잡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후자를 좋아한다. 침착맨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오늘 침하하에 이말년 수필 모음(https://chimhaha.net/best/155389?page=1)이 올라와 우연히 봤는데 보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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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감상에 젖어 몇 자 끄적였으니 혹시 ‘호들갑’이라고 생각하셔도 흰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