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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밤, 폐공장.

즉시굿타임
23.03.08
·
조회 694

 

 

 

하늘은 어느새 샛보랗게 물들었다.

달도 없고 별도 도시의 빛에 가려져 찾아보기 어려웠다.

 

.

.

.

 

일부러 소리나게 자동차가 멈춘 곳은 어느 외딴 폐공장.
아직 덜 탄 시가를 차 안 재떨이에 두고 내린, 가죽자켓을 입은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안주머니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두고 내린 것은 없는지, 휴대전화는 챙겼는지, 혹시 떨어뜨린 동전은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비싼 차 타보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런거 제 값 주고 타려면 1년에 얼마나 벌어야 하는걸까요?"
"유지비만 천오백에서 이천 정도 들어가더라고요."
"난 무서워서 이런거 못 타."

 

어으, 하면서 진저리를 치는 그가 먼저 육중한 철문을 열었다. 폐공장 특유의 정겨운 소리들이 오래간만이라며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 뒤를 약간 늦게 따라오는 정장 입은 남자는, 그 소리가 마냥 시끄럽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거, 윗선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이런 곳 올 일 있어요?"
"보통은 없죠. 저처럼 현장에서 뛰는 사람 말고는."
"근데 표정이 왜 그러신지?"
"소리에 좀 예민해서요."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고 푸념하는 사람을 뒤로한 채, 그는 익숙한 핏자국이 찍힌 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별 다른 감상은 없었다. 자신이 꽤나 아끼던 사람이 이렇게 볼썽사나운 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 또 보네."
“아는 놈이에요?”

 

그에 비해서 다른 남자에게 그 사람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떤 악연이 있는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것을 물어보기에는 둘은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보스랑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알 정도면 뭔가 엄청나게 큰 일을 치르고 도망친 것이겠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보스가 왜 날 보냈나 했더니."
"... 자리 비켜드릴까요."
"이탈리아어 들을 줄 아시면요."
"모르면 그냥 있어도 되는거죠?"

 

고개를 끄덕인 그 남성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곁에서' 듣고 있는 사람은 정작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한국인끼리 한국어를 해야지. 갑자기 이탈리아어를 하고 있다는 것도 웃기고.

 

"Ditemi chi è dietro di voi."
“... Pensi che lo farò?”

 

근데 둘 다 원어민급으로 유창하게 하는 걸보니 보통 인텔리들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때 같이 일하기라도 했었나, 싶을 정도로 험악한 말들을 이어가는 그 둘의 대화는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감정의 변화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실제 내용이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모르니 서로 짜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를 죽이려고 해도 일단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이래서 어른들이 '외국어 좀 해라' 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나.

 

"Cazzate."
“... Cosa mi farai?”

 

여기서 죽는거.

 

평소에는 전혀 들을 수 없던 낮은 목소리의 나즈막한 한국어에,

외국 드라마 보듯이 구경하던 그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었다.

목소리가 좋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위협적인 말도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아니다."

 

김빠지는 웃음과 함께, 무언가 떠오른 듯 옆에서 구경하던 그를 바라본다.

저요? 하고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킨 사람이 건네받은 것은,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개머리판의 묵직한 엽총이었다.

세공되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정교한 그림문자 모양의 조각이 멋을 더하고 있었다. 이런 비싼 총기는 분명 성능도 좋으리라.

 

“저보단 당신이 결정하는게 낫겠네요.”

“… 제가요?”

 

갑작스런 충격으로 입술을 깨물어 흐른 피에 적막이 감돌았다.

 

총을 건넨 자는 책임을 선언했다.

총을 받은 자는 의무를 수행해야한다.

묶여 있는 자에게 말할 권리는 없다.

 

그는 짧고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이익을 찾고, 자신의 안위를 꾀한다.

 

자신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처럼 위장하길 잘하는 이 사람이,

다시 마음을 돌릴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는 짧고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배신하기 전까지 이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인원이었다.

살려둔다면, 그래서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 그렇게 할 수 있다면.

…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입술을 깨물어 흐른 핏방울이 입 안으로 넘어가 흐른다.

 

묶여 있는 자에게 말할 권리는 없다.

총을 받은 자는 의무를 수행해야한다.

총을 건넨 자는 책임을 선언했다.

 

 

 

 

벤데타(Vendetta)입니까?”

 

그가 약간은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이것이 피할 수 있는 운명이라면 피했을 것이다.

본인이 ‘우리’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생각한 길을 선택 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말해주시죠.”

 

하지만 그는 좋든 싫든 이 집단에 묶여있다.

이 집단을 벗어나는 것은 발을 들여놓은 이상 불가능하다.

아니,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서 쌓은 업보들이 그를 짓누르고 파괴할 것이다.

 

인간은 이익을 찾고, 자신의 안위를 꾀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는다.

 

“… 벤데타죠.”

 

대답 한마디에, 그는 고민도 없이 자세를 고쳐 잡고 방아쇠를 당긴다.

 

반동으로 쾅 하고 밀려나는 의자가 벽에 부딪혀 쓰러진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두 사람은 그 광경을 목격한다.

 

그저 목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1초도 안 되는 그 사이에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운 나쁘게 그 총 안에 쇠구슬로 꽉 찬 쉘(Shell)이 하나 들어있었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흔하게 보는 일이다.

 

그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랬을 뿐이다.

 

떨어진 탄피는 챙겼는지, 혹시 불필요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방아쇠를 당긴 당사자는 자신의 안주머니를 다시 한 번 확인하다가, 문득 잡히는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일부러 잘 보이게 올려둔 의자 위의, 딱 한 대가 빈 담뱃갑.

 

.

.

.

 

 

하늘은 이미 보라색의 단계를 지나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달이 없어서, 별들은 더 반짝거리며 빈 곳을 작게나마 메우고 있었다.

 

“간만에 방아쇠 당기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

“한 두번 하신 것도 아니시면서.”

 

대답을 눈으로 얼버무린 채, 그는 가죽자켓을 벗고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입에 문 시가의 향미에 핏방울의 향이 섞여들어 혼란스러운 맛이 코 끝에 가득 퍼졌다.

 

한동안은 시가도 입에 못 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빈센*, 아이리시* 본 거 + 산책하다가 폐공장 부지 본 거 때문에 또 방장 생각나서 밤에 짧게 끄적여봤습니다.

문장을 골라서 쓴 게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대로 옮겨 적은 것에 가까운 서술 방식이라 혼돈의 카오스네요.

 

GIF 캡쳐한다고 본 것도 있지만… 3월 3일 라이브를 지금 몇 번을 보는지 모르겠는데 빠짐없이 존잘맨들입니다. 너무화난다.

내가 침투부 구독해서 한국인 된지 얼마 안됐지만 레전드 존잘 모먼트였다 말이야.

방장머리지금기장만유지해주면안돼?

 

이상 그림 못 그려서 글로 쓰는 특이케이스 느와르 쳐돌이었습니다.

 

 

댓글
손소독제
23.03.12
무친 대작이네요
즉시굿타임 글쓴이
23.03.12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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