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문학) 예전에 썼던, 옾카페 얘기에 PTSD 온 전무님 이야기


한창 월드컵하고 있을 때 쓴 글입니다. 그 때 옾카페 뇌절이 너무 많아서 전무님이 속상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쓴 글인데, 침하핫에 올라온 팬픽을 보고 불현듯 생각나서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전무님 사랑해~
최근, 김풍은 고민이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화가 많아졌다. 아끼는 후배인 말년이 침하하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고구마언덕의 추억이 떠올라 행복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말년이 침하하 내 자치구역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절친한 후배 호민과 함께 가장 먼저 신청하였다. 그는 이 공간을 무라카미 하루키와 햏자수햏, 라면꼰대 이야기로 가득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옾카페 이야기 밖에 안 해! 젠장!”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코로나 등 여러 악재가 겹쳐 결국 심각한 적자를 감내하고 폐업해야했던 그의 아픈 손가락 옾카페. 되도록이면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아끼려고 했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커뮤니티의 망령들은 그의 치부를 거침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간혹 선을 넘지 말자는 글을 부계정으로 올려봤지만 잠시뿐, 미래전략실의 사원들은 온통 옾으로 가득 찬 미래에서 살고 있는 듯 했다.
“옾, 옾, 옾… 말년이만 아니었어도 영상을 그렇게 많이 찍지는 않았을텐데… 후… 호민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겠지…”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는 함께 자주 방송하는 호민을 생각했다. 탈모나 통풍, 대머리라는 주제는 누군가 놀려대면 뒤질 때까지 패도 무죄가 나올 법도 하지만 호민은 대인배처럼 그런 놀림들을 하나의 밈으로 승화시켜 소인배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방송 짬밥이 제법 있는 김풍도 그런 점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포르쉐 한 대 값 정도야 그 동안 호민이 입었을 정신적 스트레스의 값어치와 비교해보면 택도 없이 적을 것이다.
“펄튜브에 단독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네… 나가서 힐링을 좀 하고 올까.”
오늘은 침착맨 없이 펄풍 단 둘이서 방송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같이 하기로 한 건 없었고 그냥 소소한 토크였기 때문에 그가 부담을 가지거나 준비할 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펄풍 픽션 대작전’이라니 너무 아재스러운 방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타이어에 낄 스노우체인, 비상식량, 부싯돌, 섬광탄, 스키, 나침반, 사스콰치 퇴치 스프레이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다행히 사스콰치 퇴치 스프레이 3통만 쓰고 고기동 아방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민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풍이 형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반쪽이 되셨어?”
“ 어휴 말도 마 요즘 침하하 미래전략실 보는데 글들이 가관도 아니야~”
“설마 혹시 혐오발언이라던지…"
“이..이걸 혐오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너도 알잖아 그… 상수동…”
“아… 힘내 형… 그 분들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 형 좋아하니까 그런 드립도 치는 거지~”
“아니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엑기스째로 들이켜 마시려니까 좀 텁텁하고 그래~ 너는 괜찮아?”
“나는 인스타그램 DM이나 심지어는 면전에 대놓고 탈모 드립이나 파괴왕 드립 치는 사람도 봐서 이제는 익숙혀~ 다 털털하게 웃어넘기는 거지~"
“다 털털 웃어넘겨서 털이 없나보다!”
호민의 진심어린 위로에 긴장과 울분이 좀 풀어진 풍은 그 한 마디를 내뱉고 아차! 했다. 순간 호민의 낯빛이 살짝 변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평소의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풍은 곧바로 실언을 사과했고 호민은 껄껄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옾카페 따위는 잊고 호민이의 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됐다.
“오늘은~ 반가운 얼굴이죠~ 영원한 전무님 우리 김풍 작가님 모셨습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김풍입니다! 반갑습니다!”
역시 가장 먼저 나온 화두는 월드컵이었다. 둘 다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포르투갈을 꺾고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기적절한 주제였다. 한창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호민이 물었다.
“옾 사이드메뉴 샌드위치 많았죠?”
순간 풍은 할 말을 잃었다. 한창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옾카페 이야기가 왜 나온다는 말인가. 물론 질풍샌드위치를 팔긴 했지만 그 종류가 많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고 호민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당혹에 가득 찬, 턱 막힌 숨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엨? 뭐라고…"
“호날두가 오프사이드에 걸릴 위치에 많이 있었다고요~”
“아, 아~! 아하하하.. 오프사이드 위치... 그렇네요..”
아 이런. 오프사이드와 위치를 섞어서 멋대로 해석한 모양이다. 오늘은 좋아하는 후배와 수다 떨러 나온 것인만큼 옾카페에 대한 잔념을 버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깊게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옾 어림잡아 100억은 깨졌겠는데요?”
“옾… 어림…?"
다시 한 번 충격적인 말이 풍의 뇌리에 꽂혔다. 당장에라도 면전에 대놓고 니네 집 아방궁을 10채 갖다 팔아도 100억 나올까말까 하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오퍼링이요. 조규성 선수 너무 잘해서 오퍼링으로 100억은 챙겼을 것 같다고요.”
“아, 오퍼링… 그.. 오퍼링… 그쵸…”
“형 괜찮아요? 식은 땀이 막 줄줄 흐르는데?”
“어휴 사실 어제 밤 늦게까지 포르투갈 경기 골 영상 찾아보고 그러느라 잠을 못 자서~ 조규성 선수 꼭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든 넘겼다. 트라우마를 트수들에게 들키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길 것이다. 이렇게까지 PTSD가 심할 줄은 몰랐다. 이래서 커뮤니티를 멀리 해야 하는건데. 미래전략실을 더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그가 생각하고 있던 찰나,
“옾, 보는대로 망했죠?”
이건 빼박이다. 무조건 놀리는 거다. 침착맨처럼 대놓고 꼽주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은근하게 돌려까는게 더 화가 난다. 풍의 얼굴이 굳어졌다. 채팅창의 분위기를 살피려 모니터를 보자,
“이것 봐 업보대로 망했다니까, 우루과이는~ 이 수아레즈 손 쓴 거 봐봐요.. 엇! 형! 그렇게까지 화났어요?”
호민은 침하하에 올려진 수아레즈의 신의손 사건을 보고 있었다. 호민이 이렇게까지 축구를 좋아했던가? 그는 순간 의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루과이가 12년 전 했던 반칙의 업보로 떨어졌다는 의미로 말했다는 것이 문맥상 명확했다. 풍은 일그러진 얼굴을 억지로 가다듬었다.
“어.. 나 나 화 안 났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나는 비겁한 건 참을 수가 없어요!”
그날 축구 토크는 몇 시간 더 이어졌고, 옾의 망령에 빠진 풍은 그날 최악의 토크 드리블과 드립 성공률을 선보였다.
“오늘 컨디션 너무 안 좋아보이는데 불러내서 미안해 형”
“아냐 아냐 니 방송인데 제대로 못 받아준 내가 더 미안하지. 다음에는 진짜 잘 할게.”
“ 많이 아픈 거 아니지?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
“걱정해줘서 고맙다 호민아. 먼저 들어가볼게.”
“아! 형! 잠깐만!”
“응?”
“형수님이랑 옾해라! 꼭!”
눈앞이 노래졌다. 풍의 귓가에는 옾카페 라디오 광고가 늘어진 테이프 되감기듯 재생되었다. 부신수질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가장 가까이 있는 對 사스콰치 무기를 찾고 있었다. 그 때 호민이 티켓 2장을 내밀었다.
“이거 오페라 형수님이랑 꼭 보러 가. 형수님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 우리 수자씨는 오페라는 별로 안 좋아해서… 부담갖지 말고 가서 힐링 좀 하고 와. 형 건강도 생각해야지.”
풍은 떨리는 손으로 티켓을 받아들었다. 아아- 이렇게 착하고 사려깊은 동생을 그는 하루종일 의심하고 오해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그는 호민에 대한 미안함과 왠지 모를 억울함이 북받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호민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그는 생각했다. 두 남자는 한 동안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