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문학) 마지막 숨결

2123년 12월 5일, 오늘도 이름없는 어느 행성의 궤도를 하염없이 돌고 있는 침투부 사옥
침착맨의 141세 생일을 맞아 라이브 방송을 마친 침착맨은 어느덧 우리 은하 곳곳에 10억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초거대 유튜버가 되었다.
10만의 침투부수호자가 항시 채널을 편집하고 하루에 20000개의 영상이 20000개의 채널에서 쉼없이 업로드 된다.
사실 침착맨의 뇌를 본떠 만들어 그 기억과 성격을 복제한 수많은 사이버 침착맨들이 연령별로 온라인에서 방송을 시작한 후로 본인이 직접 방송을 한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기도 했다.
이제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교체한 침착맨은 그 시절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역시 본체의 인기는 엄청나서 라이브 당시에는 무려 1억에 가까운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성공적으로 라이브를 마친 침착맨은 이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사령실로 돌아왔다.
현대의 과학이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려줬지만 서서히 몸의 동력이 꺼져가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 침착맨이었다.
“어서 그게 와야 할텐데…..”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때마침 그곳에는 차원택배로 그가 일생을 기다려 온 물건이 도착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유튜브 구독자 1억을 넘었을 때 건립한 회사에서 만든 그의 일생의 역작이었다.
혹자는 그것은 담배, 또는 시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침착맨은 자신을 위해서 그것의 성분부터 네이밍, 포장, 구성요소까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그것은 담배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엄연히 따지면 담배는 아닌, 그런 물질이었던 것이다.
몸이 움직이며 내는 기분 나쁜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와 인조 호흡기가 내는 거친 숨소리가 끔찍한 조화를 이루며 포장을 뜯어가고 있었고 뒤에선 98765호 침투부수호자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포장을 뜯은 침착맨은 그 물질을 보며 환하게 웃었고 이내 그 물질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영롱한 불길을 따라 새빨갛게 타오르는 물체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까맣게 타들어가며 드디어 그의 심신에 안정을 주었다.
이내 자신의 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기계덩어리 안으로 몽롱하고 매캐한 연기가 부드럽게 구름의 파도처럼 흘러 들어왔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침착맨은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때는 2022년 1월 1일, 금연을 선언하며 '담배피는 장면을 걸리면 천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건 침착맨은 이제는 더 이상 이를 기억하는 개청자가 존재하지도 않고, 우주에 대제국을 건설한 대부호가 되어 천만원은 그저 지나가는 돌멩이보다 값싼 금액이 되었지만 그저 개청자들에게 천만원을 주기 싫다는 심보하나로 홀로 이 지독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100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이렇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쭉 빨아들인 연기가 온몸을 돌아 다시 몸 밖으로 '후욱-'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익숙한 감각이 살아났고 죽어가던 몸이 오랜만에 느끼는 한순간의 쾌락에 몸을 맡기며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모금 깊게 그 물질을 빨아들인 침착맨, 행복감도 잠시… 이내 각혈을 하며 쓰러지고 만다.
놀라 달려오는 98765호 침투부수호자를 멈춰세우고 연기를 내뿜던 침착맨은 고통도 잊어가며 가쁜 호흡으로 그 물질을 더욱 음미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내뿜는 연기에 피가 섞여나오면서 이내 새빨간 피안개처럼 눈앞에 흩뿌려지자, 2014년 작은 작업실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방송인생이 아지랑이처럼 어지러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한 침착맨
이윽고 생명을 태우듯이 마지막 필터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물질을 바닥에 내팽개친 침착맨의 몸에서 이제는 온몸을 타고 돈 마지막 숨결이 그의 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후에 98765호 침투부수호자가 말하기를 '마치 영혼이 몸에서 실제로 빠져나간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이내 바닥에 드러누운 침착맨은 달려 온 98765호 수호자의 품에서 나지막히 숨이 끊어지듯이 한마디를 내뱉고 140여년의 긴 삶을 마감했다.
"내..가... 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