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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취미

돌이마
24.10.29
·
조회 802

“네가 어떻게 이 시간에 불러내냐?”

내 물음에 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유정이 오늘 회식이거든. 언제 끝날지 몰라서 기다리는 중이야.

마침 너 퇴근 시간 된거 같아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불렀지.”
 


“하여튼 이 새끼는 유정이 남친이 아니라 노예 같어. 매번 데려오고, 데릴러 가고. 기다리고.

이제 유정이가 오지 말라 했다면서 왜 굳이 그러냐?”

시답잖은 소리를 내뱉은 뒤 국밥 국물을 몇 번 떠먹고는 물었다.

“저번에 면접 본건?”
 


진수는 기운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상할 정도로 취업운이 나쁜 진수는 면접만 가면 칼같이 떨어져 버리곤 했다.
 


“너 설마 면접에서도 우리 유정이. 우리 유정이 하면서 이상한 소리 하는 건 아니지?”

“...아냐...”

눈을 내리깔며 맥아리 없이 대답하는 꼴을 보니 아닌 게 아닌 모양이었다.
 


“진짜 거짓말도 참 못한다...”

7년째 연애 중인 둘. 

그쯤 되면 적당히 편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진수는 과할 정도로 유정을 챙겼다.

취준생 때는 자신보다 유정의 공부를 우선시했고, 자신은 굶을지언정 유정이 끼니는 푸짐하게 챙겼다.

그 덕인지 유정은 제법 괜찮은 중견 회사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지만 진수는 여태 백수인 채였다.

문제는 유정이가 그런 진수에게 슬슬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유정이도 좋고 다 좋은데 이제 너 좀 챙겨라. 잠자는 것도 쪼개서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뭔 놈의 유정이 출퇴근 기사까지 하고 앉았냐?

네 성격에 유정이가 집안일 시키지도 않을 거고. 엔간히 해. 일단 네 앞길부터 가리고 내조를 하는 거지. 유정이도 이제 너 할 일부터 챙기라고 잔소리한다며.”
 


진수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응. 자기 신경 쓸 시간에 면접이라도 한번 더 보래. 자꾸 그러면 진짜 나 다시 안 본다고. 헤어질 거라고 막 그랬어.”

진수의 눈이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 마냥 탁해졌다.
 


“알면 정신 차리고 취업해야지. 내가 뭐라고 그랬어? 취업이란게.…"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오랜만에 만나서 할 얘기가 그런거 밖에 없냐?”

어차피 잔소리밖에 안 될걸 알기에 그만하기로 하고 주제를 돌렸다.
 

 


“그래. 요새는 뭐 어떤데? 근황 얘기 좀 해봐.”

“똑같지 뭐. 공부하고 유정이 챙기고 나름 취미생활도 즐기고. 요새 새롭게 재미 붙인 게 네일 쪽이거든?

이게 그냥 멋이 아니라 케어 방식으로 해서 내가 요샌 유정이 손 관리하면서....”

죽은 눈에 생기가 돌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진수를 보니 화낼 기분도 나지 않았다.
 

 


유정이. 확실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몇 년 전 진수가 자랑스레 소개해 주었을 때는 혹시 몰래카메라가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로 예쁜 모습이었다.

청순하면서도 섹시했고 몸매 역시 귀여움과 육감적인 느낌을 함께 주는 그야말로 마성의 여자.

지금도 그런 여자친구를 가진 진수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혹시 헤어지면 나한테도 기회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결국 네일이 취미가 아닌 거네. 네 취미는 그거다. 유정이한테 봉사하는 거.”

조금은 심술 맞게 이야기했지만 진수는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심각해진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너.. 혹시 그거 아직도 해? 그... 취미라는 그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뻔히 알지만 난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며 되물었다.

“뭐? 뭘 말하는지 난 모르겠네.”

진수가 주저하다가 다시 말하려던 그때, 진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유정이다! 끝났나 봐! 나 간다.”

진수는 이미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지 금세 웃는 얼굴로 바뀌어서는 튀어 나갔다.

즐거워 보이는 그 얼굴을 보니 문득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 여시 같은년... 뭘 어떻게 홀렸길래 사람이 저따위가 되지? 하여튼 그놈의 얼굴값 진짜....”

이래저래 오늘도 취미생활을 하며 이 꿉꿉한 기분을 떨쳐내야 할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멍하니 앉아있자니 벌써 11시.

슬슬 괜찮은 시간이었다.

검은 옷에 깊은 후드. 마스크를 쓰고는 밖으로 나와 자주 가던 공원으로 향했다.

큰 공원이지만 상당히 한산한 곳이라 내 취미생활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차분히 기다리며 적당한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내 눈에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대략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야근하고 늦게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공원이 시내버스 정류장과 주거지역 사이에 있어, 가끔 이렇게 지름길로 이용하곤 했다.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피곤함에 절은 얼굴이지만 얼굴도 제법 괜찮고 몸매도 봐줄 만했다.

“유정이보단 한참 아래긴 하지만 뭐.”

작게 중얼거리고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천천히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얼마간 뒤를 쫓다 보니 여자가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여자의 구두 소리가 점차 빨라지자,

내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성급해 하면 안 된다. 

소리는 죽이고 아주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질 듯 멀어지지 않게 잘 조절하며 뒤를 쫓는다.

그 미묘한 거리감 덕에 여자는 혼란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바로 지금!

난 곧바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여자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꺄악!!!”
 

 


여자는 내 다급한 발소리에 놀라 앞으로 뛰어나가다 넘어져 버렸다.

그 모습에 머릿속으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여자를 지나쳐 달려 나갔다.

여자는 잔뜩 겁먹고 있다가 허무하게 지나가는 내 모습에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다시금 짜릿함을 느끼며 그저 평범하게 운동 나온 사람이 그러하듯 페이스를 바꾸어 가며 달리고 걷고. 또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여자가 몹시도 부끄러워하며 재빨리 수습해 도망치듯 떠나는 모습을 보니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악취미라면 악취미지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혹여나 누가 경찰에 신고해도 그냥 평범하게 운동했다고 하면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도 빈약하다.

개운함을 느끼며 또 다음 대상을 물색했다.
 


“좀 이쁘고 괜찮은 애 없나? 유정이 급 되는 그런 애.”

기대감을 가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뒤 경찰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많이 쫄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론상 내가 법을 어긴 건 아니니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왜요? 왜 오셨는데요?”


경찰 둘은 단호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어젯밤에 인근 공원에서 사건이 좀 있었습니다. 조사가 필요하니까 잠시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더듬더듬 되물었다.

“사건이요? 사건이라면 무슨....”

“살인 사건입니다. 공원에서 직장인 여성 한 명이 살해당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하시죠.”

최대한 당당히 마주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위축되며 거의 끌려가듯 경찰들과 동행했다.

난 죄가 없다. 난 아무 잘못도 없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면서도 등줄기를 타고는 식은땀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







끔찍이도 오랜 시간 동안 취조를 받은 뒤 경찰서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진수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내었다.

“어디야...”

‘나? 유정이가 감자전 먹고 싶어 해서 마트에 장 보러...’

“나와. 나랑 얘기 좀 해.”

아무래도 진정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누가 와서 날 붙잡아 다시 경찰서 안으로 끌고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아무 잘못 없어....”

나 자신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윽고 약속장소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기다리는 진수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나 유정이 끝나기 전에 이거 만들어야 하는...”

“네가 나 신고했냐?”

진수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졌다.

잠시 고민하던 진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왜?”

“아니 들어봐. 내가 몇 번 말했잖아. 너 하는 그런 거 안 좋으니까 하지 말라고. 근데 넌 듣지도 않고 그냥 재미있어하니까.”

화가 났지만 이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었기에 한번 참고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내가 말했지. 내가 뭐 어떻게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친 거라고. 그냥 그게 다라고.

근데 넌 뭐 사람을 무슨 살인범쯤 되는 거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거네. 뉴스에 살인 사건 뉴스 뜨자마자 나한테 말도 없이 바로 경찰에 전화한 거 보면.”
 
“아니 솔직히 네가 한 것만 해도 범죄는 맞지. 그래서...”

난 더 참지 못하고 진수의 멱살을 틀어쥐며 소리쳤다.

“그래서 의심했냐? 내가 사람이라도 죽였을까 봐?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그 죽은 년. 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제는 야근이라 그 공원 간 적도 없고. 알아? 내가 안 그랬단 말이야.”

진수는 가만히 날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유정이는 이제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내 일 하라면서 데리러 오지 말라고 하고.

근데 그놈의 회사는 회식도 자주 하고. 저번에도 몰래 데리러 갔더니 유정이가 엄청나게 화냈단 말이야.

걱정되고 불안하니까 내가 뭐라도 해야 했다고.”

“너 내가 그런.....”

힘껏 소리치려던 난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부터 공원에서 여자들 뒤를 쫓을 때 그 뒷모습을 유정이에 접목하곤 했다.

그리고 혹여나 진짜 유정이가 지나가지는 않나 하며 괜스레 비슷한 모습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였기에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니라고. 안 그랬는데 네가 누명 씌운 거 아니야?”

진수 역시 침착하게 반문했다.

“아니야. 난 그냥 경찰들한테 내가 아는 거 말한 게 다야. 네가 그런 행동 하는 거. 그거 말해준 게 다라고.

널 범인으로 지목한 게 아니라서 네가 금방 풀려난 거야.”

배신감이 들었지만 나 역시 찔리는 게 있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난 진수를 밀쳐내듯 놔주며 말했다.

“하... 됐다. 결국 오해도 풀렸고. 아무 일 없었으니까. 어쨌건 내가 이번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만 알아라.”

진수는 조금 부드러워진 어투로 달래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대신 내가 괜찮은 분 소개해 줄게. 유정이 직장 동기인데 유정이만큼은 아니지만, 엄청 미인이셔.

내가 생각했거든 그런 취미가 너 맘 기댈 곳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 해서. 넌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당연히 소개해 줘야지.”

우습게도 기분이 빠르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새끼 쳐달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 미안하긴 미안한 모양이었다.
 

 

 


“...언제.”

나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는지 진수는 한층 더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다다음주에! 소개팅 이런 딱딱한 거 말고 내가 괜찮은 풀펜션 하나 알아놨으니까 넷이 놀러 가서 편하게 놀자. 수영복 있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자 비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새끼... 은근히 사람 잘 가지고 놀아. 약속 깨지 마라.”

“당연하지! 아무튼 나중에 얘기하자. 나 빨리 반죽 해놓고 유정이 데리러 가야 해. 그런 일 있었단 소리 들으니까 무서웠나 봐. 나한테 꼭 데리러 오래.

아마 당분간 회식도 없을걸? 당연하지! 망치 살인마가 돌아다니는데, 회식한다고 그럼 진짜 미친 거지.”
 

 

 

 


신나서 떠드는 진수를 돌려보내려던 그때.

‘잠깐. 망치?’

분명 공원 사건이 뉴스에 나오긴 했지만, 그 어디에도 망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나 역시 취조받으면서 알게 되었을 뿐.

난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진수에게 물었다.
 


“너... 어젯밤에는 뭐했냐?”

진수는 멈칫하더니 눈을 내리깔며 맥아리 없이 대답했다.

“...그냥. 집에...”

그리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난 멍청하게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이번 살인 사건이 진수에게 좋게 작용한 것이 맞다.

취업에 집중하는 대신 겁먹은 유정이를 케어해 줄 명문이 생긴다.

회식도 사라지고 당당하게 유정이를 픽업 갈 수도 있다.

이별까지 언급했던 유정이였기에 진수는 절실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어쩌면 은근히 유정이를 생각하는 날 눈치채고 조금 과격하게 혼을 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거면 모를까 유정이만 연관되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또라이가 되는 진수니 결코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다.

심증이 확증으로 넘어가려던 그때, 난 그만 생각을 멈추었다.

진실이 뭐든 간에 풀펜션이 먼저다.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취미생활 접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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