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건만 간단히, 움짤은 한 번 더 생각
금병영에 상의하세요
야생의 이벤트가 열렸다
즐겨찾기
최근방문

좋아하는 노래가 생겼다

돌이마
24.10.28
·
조회 933

 

즐거운 감상되시길 바랍니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게 중요하다.’

 

일하면서 수백 번은 들었던 말이다. 범법도 아니고 합법도 아닌 그 미묘한 줄타기.

그걸 지켜야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었다. 업계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그래봐야 결국 깍두기 짓이었다.

허름한 공공화장실이나 번화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명함.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로 시작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나마 내가 하는 일은 그리 험한 건 아니라 감사할 노릇이었다.

험한 일은 보통 저런 녀석들.

18살이나 되었음 직한 여고생의 팔뚝을 거칠게 잡아 내가 있는 투룸 오피스텔로 밀어 넣는 장 팀장의 역할이었다.

“학생 데려왔습니다. 선생님. 어린 게 반반하니 가르칠 맛 좀 나겠어. 그럼 욕보십쇼.”

장 팀장이 나가자 겁먹은 여학생은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영문도 모르고 다짜고짜 끌려왔으니 무리도 아니었기에 우선은 이 애를 안심시키고 상황 설명을 하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 나쁜 일은 없을 테니까. 저기 거실에 CCTV 보이지? 

저걸로 24시간 찍고 있으니까 불안해할 필요 없어. 아무 일 안 생겨.”

그럼에도 학생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일단 네가 여기 온 이유. 대충 들었겠지만, 저 험상궂은 아저씨가 하는 말 귀에 제대로 안 들어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희 아버지 때문이야. 너희 아버지가 사업으로 빚을 지고 있단 건 알 거고.

아, 그렇다고 뭐 너를 미끼로 채권추심 하려는 건 아니야.

너희 아버지가 빚 갚느라 너한테 소홀할 때 과외도 해주고 먹고 자는 거 챙겨주려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날 과외선생이라고 생각하면 돼.”

채권추심이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추심이 맞다.

쉽게 말해. ‘네 아빠가 돈 갚을 때까지 과외 명목으로 널 여기 가둬 두겠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아이도 자신의 상황을 알아챘다.

“아빠가 못 갚으면요?”

“갚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편하게 지내면서 공부나 배워.

집중해야 하니까 휴대폰이나 다른 전자기기 전부 압수. 

밖에는 못 나가는 거 알지? 열쇠 없으면 안에서도 못 나가.  대신 필요한 거는 말만 해. 사다 줄 테니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아이를 방으로 안내해 주고는 소파에 앉았다.

며칠이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오전 10시부터 점심까지는 인강 시청. 

점심 먹고 나서 오후 2시까지는 문제 풀이. 다음 4시까지 내가 간단한 과외 해줄 거고.

이후 저녁 먹기까지 자습. 그다음엔 자유시간이니까 티브이를 보건 잠을 자건 알아서 해.

대신 밖에는 못 나가니까 그리 알고.”

아직 불안함이 남아있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러한 것인지 이 학생은 별말 없이 잘 따랐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내가 해주는 과외라고 해 봐야

 

교과서를 읽어주는 수준의 명목뿐인 과외인지라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아무 대답 없이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보고 밥 먹는 것도 눈치를 봤지만, 며칠이 지나자 슬슬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책상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소파에 앉아 보고 있자니 그 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 아빠는 지금 어디 있어요?”

그다지 해줄 말도 없었고 해줄 필요도 없었기에 적당히 대답했다.

“난 모르지. 그냥 과외선생이니까.”

“아마도 아빠는 돈 안 갚을 거예요. 안 갚으면 평생 날 못 본다고 해도 절대 안 갚겠죠. 그런 사람이니까.”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씁쓸해서 내 기분까지 우울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해야 할 말을 해주었다.

“나랑은 관계없어. 내 일은 네 아빠 여유 생길 때까지 널 맡아두는 거니까.”

“아빠는 항상 자기밖에 몰랐어요. 나도 엄마도, 안중에도 없었다구요.

아무리 기다려도 전 여기서 못 나갈 거예요.”

갑자기 시작된 불평 어린 하소연이 내 맘을 움직였는지 어설픈 과외선생 흉내 따위 내기 싫어졌다.

CCTV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슬며시 말했다.

“너 좋아하는 노래가 뭐야?”

“네?”

“이쪽 보지 말고 그냥 대답해.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잠시 날 이상하게 바라보던 그 아이는 난 잘 모르는 아이돌 그룹을 이야기했다.

난 휴대폰을 만지작거려 노래를 찾아 재생시켰다.

“CCTV는 소리까진 안 들리니까. 보아하니 오늘 공부하긴 틀린 것 같고, 그렇다고 얘기 들어주기 시작하면 금세 울어버릴 테니까,


오늘은 좋아하는 노래나 들으면서 기분 전환이나 해. 저녁엔 먹고 싶은 거 시켜줄게.”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음악이 마음에 든 건지 잠자코 노래를 감상하며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다행히 나에 대한 경계가 완전히 버린 듯했다.




“진전은 좀 있습니까?”
‘음....’

수화기 너머로 장 팀장의 멍청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찾고는 있는데 이놈 이거 쥐새끼 같어요. 

그렇게 이쁘장한 딸내미 잡혀있다 생각하면 밥도 안 넘어갈 건데 뭐 하는 작자지?’

“말씀 조심하셔야지요. 팀장님. 과외입니다. 혹여나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세요?”

‘하! 거, 선생 양반 더럽게 깐깐하네. 누가 듣는다고 그렇게 팍팍하게 굽니까. 

솔직히 짭새건 뭐건 다 알면서도 골치 아파지니까 대충 뭉개 버리는 거 아닙니까?

아무튼 거지 년 치마 속까지 샅샅이 뒤져 볼 테니까, 애나 잘 보슈.

거참, 누구는 쌔빠지게 구르고 누군 영계 분내 맡으면서 꿀 빨고... 거참 내가...’

뚝.

쓸데없는 소리 따윈 무시한 채 전화기를 끊었다.

어느새 3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이 여자아이. 

혜정이는 마음을 놓았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함은 물론 내게도 제법 살갑게 굴었다.

처음엔 어디로 팔려 가나 싶었다가, 그런 게 아닌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어설픈 선생 노릇 따위 하고 싶지 않아, 적당히 보여주기식 과외만 하며 노래를 틀어주거나

별 의미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아빠 때문에 집도 없고 돈도 없이 엄청 힘들었거든요.

엄마 돌아가신 이후엔 밥 한 끼 먹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네요.”

“그래. 여기 있는 동안은 실컷 먹어. 오늘은 뭐 먹을래?”

“보쌈이요! 막국수 추가해서!”

몇 번이나 있었던 패턴이기에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비싼 거만 고르는 거 아니야? 어제도 이거저거 시켜줬잖아.”

“제가 좋은 노래도 가르쳐 드렸잖아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티 하나 없이 맑은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래. 그 노래 진짜 좋긴 하지. 대신 나도 오랜만에 소주 한 병 해야겠다.”

“전 사이다요! 짠 해드릴게요!”

혜정이가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이 시간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제는 나조차 즐기고 있는 혜정의 최애곡을 틀어놓고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노랫소리를 멈추는 벨 소리가 울려댔다.

“네. 팀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염병... 일이 좀 귀찮게 되었어요. 이놈 이거. 배 타고 뜬 거 같답디다.

돈 못 받으면 위약금 바가지로 문다면서 윗대가리가 지랄하니 어찌해야지 안 되겠어요.

그 어린년 있죠? 데리러 갈 테니 준비시키쇼.

내가 베트남 쪽에 아는 포주가 있는데, 아주 비싸게 사줄 테니까 일단 그걸로 급한 불부터 끄게.’

바로 옆에 있던 헤정이는 통화내용을 들은 듯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난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이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 그렇게 하면 진짜 일이 복잡해질 텐데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에서 아슬아슬...”

‘아, 미친년 좆 빠는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쇼. 

선생 나부랭이 주제에. 그나마 머리 좋아 자리 꿰찬 덕에 대우 해주는 거지.

안 그래도 급한데 그따위 소리 해대면 당신 대가리 먼저 깨질 줄 아쇼.

뒷감당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잔말 말고 준비시키라고,’

뚝.

이번엔 그놈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혜정의 눈치를 살피자 혼란스러운 듯 울먹거리고 있었다.

“저기...”

벌떡 일어나 저 멀리 물러나는 혜정을 보며 크게 한숨을 짓고는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고민하는데 그리 큰 시간을 들이지는 않았다.

“혜정아. 너 도망가자. 뒷수습은 내가 어떻게든 할게.

지금도 CCTV 돌아가고 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티 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방에 들어가서 짐 싸. 너 자는 방 장롱 서랍 아래 보면 현금 뭉치 있거든? 그거 챙겨.

여기서 나가면 버스 아무거나 잡아타고 어디든 멀리 가. 

 

한 3일쯤 여관방이든 모텔방이든 잡고 버티고 있으면 좀 잠잠해질 테니까. 내가 말해주는 주소 찾아가.

재즈바인데 거기 여사장이 나랑 친분이 있어서 내 이름 대면 도와줄 거야. 거기서 잔심부름이라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내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혜정이에게는 와닿았는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은요? 그러지 말고 선생님도 같이 가요.”

“난 안돼. 수습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해. 일이 잘되면 데리러 갈 거야.

혹시 한 달이 지나도 안 오면.... 거기서 어떻게든 살길 찾아. 그땐 진짜 너 밖에 없는 거야.

꼭꼭 숨어. 그 사장 밑에만 있으면 적어도 이놈들 눈엔 안 띌 거야.”

혜정이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준비 끝나면 내가 신호 줄 거야. 자연스럽게 현관문 열 테니까 날 확 밀치고 뛰어나가.

CCTV에 보여야 하니까 최대한 힘껏. 그래야 자연스럽지.

그러고 나서 내가 말한 대로 하는 거야 알겠지?”

혜정이가 완전히 이해한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깍두기답게 건들건들하며 들어온 장 팀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애는요?”

“도망갔죠.”

“하이고....”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앉은 장 팀장은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한층 정중해진 말투로 물었다.

“그냥 가져다 팔면 될걸 뭘 이렇게 복잡하게 하십니까? 들이는 시간에, 애 밥값에, 이거 본전치기는 하겠어요?”

역시나 튀어나오는 무식한 소리에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 더 설명했다.

“무식한 소리 마세요. 억지로 잡아넣은 거랑 살길인 줄 알고 찾아 들어간 거랑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바로 룸살롱에 던져진다 치면 이 애한테는 거길 제외한 모든 곳이 도망칠 곳이에요.

하지만 온 세상에서 살만한 유일한 곳이 거기라 생각하면 끄집어내려고 해도 못 하겠죠.

바에서 잔심부름하다가, 눈칫밥 좀 먹다가, 일은 해야 하는데 밖에는 못 나가고.

그러다 여사장 운영하는 룸살롱 언니들이랑 친해지고.

어쩌다 대타 몇 번 뛰다 보면 슬슬 돈맛도 볼 테고.

작은 투자로 평생 써먹을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그것도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장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툴툴거렸다.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뭐가 다른지. 선생이 하도 무식하다 해서 진짜 무식해 진 건가.”

“연기할 때마다 말투며, 욕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 같은데 그것도 무식하단 소리에 대한 복수입니까?”

“에이 설마요. 그게 다 리을리티를 위해서 아니겠어요. 예. 리을리티!”

쓸데없는 소리 따윈 무시한 채 다시 일 얘기로 돌아왔다.

“그 애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누굽니까? 장대동 빨판상어 장광목이 아닙니까?

당연히 잡아서 이자까지 전부 받아냈죠. 

딸년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던데, 이제 CCTV 저거 보여주면 뭐 할 수 있는 게 있겠습니까?

짭새 놈들이야 돈 기깔나게 발라 놨으니 뭐 어쩔 수 없단 소리만 해댈 거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에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소파에 기대고는 아까 멈춰둔 노래를 재생했다.

“선생님, 이런 거도 들으십니까?”

“예. 요새 이게 좋더라고요.”

적어도 노래가 좋다는 것 만은 진심이었다.
 

댓글

📖이야기&썰 전체글

캘리포니아, 트럼프 관세를 위해 다른 국가와 개별적으로 무역 협상 3
역사&사건
푸르로닝
·
조회수 160
·
9시간전
chatgpt로 삼국지 인물과 대화하기 (2) -조조-
삼국지
고기만두콘
·
조회수 98
·
1일전
chatgpt로 삼국지 인물과 대화하기 (1) -유비-
삼국지
고기만두콘
·
조회수 112
·
1일전
오늘 방송 보고 해본거
미스터리&공포
자동반사
·
조회수 285
·
1일전
챗지피티와 나눠본 "지브리 풍으로 그려줘~" 에 대한 대화
미스터리&공포
미야자키끼얏호
·
조회수 172
·
1일전
<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꿀물과 호랑이 [3부] 15
삼국지
병건하게
·
조회수 1284
·
2일전
포켓몬스터에 알수없는 포켓볼이 있다?! 2
미스터리&공포
깨팔이사료주인
·
조회수 303
·
3일전
싸늘한 제갈량, 어처구니 없는 유비 1
삼국지
참칭맨
·
조회수 318
·
3일전
만화가들 허리가 안좋아지면 그림체가 이상해지는 이유 5
역사&사건
국밥부장관
·
조회수 566
·
4일전
<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꿀물과 호랑이 [2부] 14
삼국지
병건하게
·
조회수 1702
·
4일전
한국 야쿠르트계 전설로 남은 분 1
역사&사건
라노링
·
조회수 399
·
4일전
슈퍼전대 50주년 기념 프로듀서 인터뷰
역사&사건
맵찌리찌릿삑궷츢
·
조회수 266
·
6일전
<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꿀물과 호랑이 [1부] 14
삼국지
병건하게
·
조회수 1934
·
6일전
일본, 대만 유사시 오키나와 대피계획 책정 2
역사&사건
푸르로닝
·
조회수 472
·
7일전
경북 산불로 국내산식품이 사라짐 17
미스터리&공포
침크빈
·
조회수 4055
·
7일전
어느 실업고교 선생님의 눈물 22
역사&사건
국밥부장관
·
조회수 4124
·
7일전
[속보] 경북 산불 모두 진화 완료 19
역사&사건
병건하게
·
조회수 4009
·
03.28
캐나다 총리 : 트럼프 관세로 캐나다와 미국의 '오래된 관계'는 '종료' 7
미스터리&공포
푸르로닝
·
조회수 447
·
03.28
현재 청송 휴게소 모습 22
역사&사건
라노링
·
조회수 5905
·
03.26
<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상방곡과 사공명 주생중달 23
삼국지
병건하게
·
조회수 1518
·
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