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팬픽] 여포 VS 의문의 장수
서주 어느 숲. 196년 늦봄.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적토(赤兎)의 붉은 갈기를 들썩인다. 모처럼 소란스런 전장을 벗어난 것에 들뜬 적토지만, 그 걸음은 여느 때보다도 조심스럽다. 등에 태운 주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심조심 오솔길을 벗어나 넓은 들판을 지난다.
쿨쿨.
적토의 등에 걸터앉아 꾸벅이는 사내의 표정은 지난 방랑의 고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편안해 보인다. 그 때.
히히힝.
“흠...?”
갑작스레 발걸음을 그친 적토가 우짖자 사내는 눈을 떴다. 백 보 정도 거리에서 칠흑같이 검은 말을 탄 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꾸밈없이 그 본질에 충실해 보이는 투구와 갑주,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는 듯한 흑마,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 수많은 전장에서 마주했던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쪽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네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대는 누구인가?”
“하하, 초면인데도 아랫사람을 대하듯이 말하는군. 나는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여포,자는 봉선이다.”
여포의 말을 들은 사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대가 이 곳을 다스린다는 말이 참으로 우습군. 그 허풍 가득한 모습을 보니 그대 또한 유가놈 밑에 있는 것인가?”
그의 말에 여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여포가 그깟 유가놈을 받들 것 같으냐!”
여포는 방천화극을 잡아 들고 빠르게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일격에 머리를 날려주마.’
적토도 주인의 분노를 느낀 듯 콧김을 내뿜으며 힘차게 땅을 찼다.
그러나 여포의 일격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사내는 놀라운 속도로 여포의 일격을 뒤로 누워 피한 후 다시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다.
“하핫, 그래도 유가놈 아랫것들 중에선 날래군! 여포라 했나?”
여포는 다시 방천화극을 고쳐 잡고 달려들었다. 이에 상대도 검을 뽑아 들고 맞섰다.
퍽.
이번에는 그가 여포의 참격을 몸을 숙여 피한 뒤, 칼집으로 여포의 턱을 후려쳤다.
여포는 순간 중심을 잃고 낙마할 뻔하였으나, 이내 적토가 몸을 기울여 주인의 추락을 막았다.
“하하하 그래도 네 놈 말은 쓸만하구나!”
그 말에 사내의 흑마가 푸르르 질투어린 숨을 내뿜었다.
여포는 지금껏 당해본 적 없는 농락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느꼈다. 이토록 강한 자가 어째서 이제까지 이름을 날리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 놈 여포야, 너와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나도 가야할 길이 바쁘니 이번 공격은 그대로 맞받아쳐주마. 오너라!”
여포는 이를 악물고 다시 돌격했다.
이번에는 그의 심장을 꿰뚫으리라.
방천화극을 양손으로 잡은 채 몸을 숙여 신속히 거리를 좁혀나갔다. 이윽고 유효거리에 다다르자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을 향해 창 끝을 내질렀다.
하지만 상대의 칼날은 여포의 공격을 쳐냄과 동시에 곧바로 몸통을 향했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이..이렇게 가는가...!’
그 때 적토가 옆으로 몸을 던져 여포와 함께 쓰러졌다. 덕분에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좌측 옆구리에서 출혈이 일었다.
“오호! 엄청난 명마로다!”
으윽..
몸을 다시 일으켜 적토를 보았다. 적토는 쓰러질 때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듯 몸을 가누지 못했다. 여포는 주인을 다시 모시려 발버둥 치는 적토에게 다가가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좀 쉬거라. 고맙다.”
여포는 다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말 위에 올라타 미동 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성벽이 굳세게 버티어 서있는 듯했다.
‘이대로는 저 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여포는 갑주를 풀어헤쳐 벗어던졌다. 치명상을 허용하더라도 그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이것이 최선이다.
“네놈 말이 저 모양이니 나도 말에서 내려 상대해주지.”
봄바람이 하늘하늘 불어온다. 들판의 풀잎들이 바람을 따라 눕는다. 바람이 불어와 칼이 지나간 옆구리를 치고지나간다.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박동에 따라 상처가 욱신거린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의 몸을 꿰뚫고 치욕을 씻으리라.
여포는 힘껏 그에게로 내달려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팅. 팅. 팅.
필사의 결의가 무색하게 여포의 모든 공격은 그의 검에 막혔다. 창끝이 그의 검에 막힐 때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치는 듯하다. 힘에서도, 속도에서도 그를 넘어설 수 없다.
퍽.
연이은 공격을 쳐내며 거리를 좁힌 사내가 여포의 측면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그의 강력한 발길질에 여포는 초라하게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여포, 이제 너를 보내주마.”
성큼성큼 그가 다가와 검을 높게 세웠다. 여포는 가쁜 호흡을 내쉬며 그를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검을 힘껏 내리꽂는 순간, 돌연 사내가 꽃잎들로 변해 바람에 날아갔다.
여포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이내 정신을 잃었다.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살랑 봄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푸르르르.
적토의 콧바람에 여포는 눈을 떴다.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대자 상처는 온데간데없고 멀쩡했다. 꿈을 꾼 것인가?
주위를 둘러보자 웬 노인이 그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보시오.”
여포의 부름에 노인이 여포를 보며 말했다.
“꿈자리가 사나우신 듯하던데, 귀공께선 그 분을 만나 뵈신 거지요?”
“노인이 어찌 내 꿈을 아는 것이오? 사나운 꿈이었소. 감히 넘볼 수 없는 강자였고 나는 그 앞에 무기력했소..”
“껄껄 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노인은 여포가 꿈에서 만난 그 자를 아는 듯했다.
그는 여포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분이 누군지 궁금하시거든 저를 따라오시지요.”
여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노인을 따라나섰다. 울창한 숲 사이로 오가는 이 없는 듯 잡초가 무성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자 다 쓰러져가는 작은 지붕이 보였다.
그 앞에 당도하자 노인이 지붕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옛날에 그분을 신으로 모시던 사당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잊혀져 주변 마을에서도 이곳을 아는 이가 없지요.”
여포는 걸음을 옮겨 지붕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그 안을 들여다보던 여포는 흠칫 놀라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들어 인사를 올렸다.
“이 여포가 감히 서초 패왕(西楚 覇王) 전하를 몰라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멋지게 만화로 막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캐치마인드에서도 욕 먹는 그림 실력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재밌게 보신 분이 있다면, 그리고 그 분이 그림 능력자라면 그려주세여..
사실은 이 두 사람의 대결보다 이 두 사람 아내의 미모 대결이 더 기대됩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