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과학자들도 인정한 미신
1940년대 한 물리학 실험실. 연구에 열중하던 이들이 누군가의 등장에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였다. 그는 1945년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후계자로 인정받은 뛰어난 물리학자이기도 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쳐
하지만 그는 모든 물리학자들의 기피대상이었다. 그의 친한 동료이자 194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오토 슈테른은 그가 자신의 실험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파울리가 실험에 참여하기만 하면 망가지는 실험도구들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실험물리학자가 아닌 이론물리학자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손이 닿지 않아도 실험실의 도구들은 깨지고 기계가 고장나는 등의 현상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우연이겠지'하고 생각했지만 자주 실험도구를 망가뜨리던 파울리에게 장난을 치기로 했다.
그들은 파울리를 창고로 유인해 그가 문을 열면 물이 쏟아지도록 장치를 해뒀다. 그런데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파울리가 나타나자 해당 장치 역시 고장 났기 때문이다. 어느날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 있던 고가의 장비가 원인을 알 수 없이 고장 난 일이 있었다. 당시 실험자들은 "파울리가 근처에 있나?"하고 농담을 해지만, 당시 파울리는 근처가 아닌 취리히에 있었다.
하지만 파울리가 보낸 편지를 통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취리히에 가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파울리가 코펜하겐 행 기차를 타고가다, 기차가 고장 나 괴팅겐역에 머물렀다는 것이 편지에 들어가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실험에 실패할까 두려워 파울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파울리 주변의 실험장비가 망가지는 현상을 '파울리 효과'라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울리 효과'의 이유는 무엇일까는 파울리가 가장 궁금해했다. 급기야 그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구스타프 융을 찾아가기도 했다. 융은 파울리에게 대규모 염력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1942년 미국 최고 물리학자들에게 원자폭탄을 개발하게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그 과정에서 물리학자로써 명성을 떨치던 파울리는 제외된다. 해당 프로젝트의 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전쟁 중에도 순수이론 물리의 연구자는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2005년 수잔네 가이저의 책에는 '파울리 효과'를 언급하며 돌발상황이 발생할까 두려워 실험에서 배제했다고 적혀있다.